기장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중심으로 한 당사리와 시랑리는 부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면서 날이 갈수록 많은 인구가 몰려들고 있다. 힐튼호텔과 아난티코브 앞 해안산책로는 갈맷길과 해파랑길이 겹치는 곳이다.
오시리아osiria는 외래어도 살려 쓸 우리말도 아닌 새롭게 만들어진 이름이다. 오시리아 어원의 뜻과 유래는 관광단지내 절경을 자랑하는 오랑대와 시랑대에서 첫머리글자 하나씩을 따와 장소를 나타내는 접미사 이아[ia]를 합성 조합한 단어다. 기장 앞바다의 오랑대와 시랑대를 합친 동부산 관광단지의 통합 브랜드명이 된 것이다. 그 이면에는 동부산관광단지로 놀러 오시라는 의미를 가졌다는 등의 여러 가지의 해석을 담았다는 뜻이다.
옛날 방식의 후리그물고기잡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수마을에서 동암마을을 지나 오시리아 해안산책로를 따라 시랑대로 가면 오랑대와 연결된다. 오랑대는 용녀와 미랑 스님의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미랑대’라고도 불렀는데, 지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설에도 정확히 알려진 설화는 없다.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다섯 명의 선비들이 이곳에 와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겼다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도 이곳에 오랑캐가 쳐들어와서 오랑대라고 불렀다는 설 등이다.
동암마을 옛 이름이 대내臺內였던 것도 해벽포라 한 것도 오랑대와 시랑대 사이에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주변 오시리아 관광단지는 대규모 개발사업 진행으로 연간 천만명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는 반면에 동암마을은 옛 포구 풍경이 고스란하다. 방파제 안쪽으로 어선들이 묶여있고 해녀복지관 주변 선착장 공터에는 멸치를 널어놓고 그물과 여러 어구들이 쌓여있는 여느 포구와 다르지 않다.
그동안 동암 원주민은 상대적 소외감이 있었던 만큼 해양수산부에서 어촌뉴딜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항, 포구를 중심으로 한 어촌마을의 해양관광활성화를 통해 주민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것인데, 사업대상지역이 된 동암항은 63명의 어촌계원과 19척의 어선과 현역해녀 오십여 명이 아직도 물질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오래된 옛 포구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기장군에서는 동암항 개발사업으로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느낄 수 있도록 노후 된 어항시설을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시랑대는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동암마을 남쪽 해변에 있는 해동용궁사 옆쪽에 있는 바위의 대臺를 말한다. 원래 이름은 원앙대로 기장 팔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이 곳을 원앙대라고도 했다. 오색찬란한 원앙새 같은 비오리[오리과의 새]가 바위 아래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큰 무리를 짓고 까마귀처럼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하여 비오포라고도 불렀다.
1733년[영조 9] 시랑[이조 참의]인 권적이 암행어사 박문수의 호남 관찰사 임명을 반대하다가 영조의 미움을 사 정3품 당상관에서 종6품의 기장 현감으로 좌천되었던 것인데, 마치 변방에 유배를 온 것처럼 생각했던 모양이다. 중앙에서 고위 관료를 역임하다가 남단의 지방관으로 좌천된 것을 귀양살이로 표현하며 울분과 서러움을 달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던 것이다. 이곳에 와서 자연석에 자신의 벼슬인 시랑(侍郞)을 따 ‘시랑대’라는 글과 자작시를 새기면서 원앙대가 시랑대로 불리게 되었다.
謫居猶得近蓬萊 귀양살이라 하지만 오히려 신선이 노는 봉래산에 가깝다
人自天曹二席來 이 사람은 천조[이조 참의]에서 여기에 왔구나
三字丹書明翠壁 석 자를 써서 푸른 바위에 밝혔으니
千秋留作侍郞臺 천추의 긴 세월 동안 시랑대로 남으리라
그러니까 시랑대는 권적의 관직이름에서 유래되었음이 분명해졌고, 시랑대 금석문이 새겨진 바위 근처에 엄신영 제우영 엄신영, 손경현, 이후서 등을 비롯한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남겨 놓았다.
1894년[고종 31] 홍문관 교리를 지낸 손경현이 이곳에 와서 학사암이라 부르기도 했다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시랑대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곳 경치를 보고 자기벼슬인 시랑을 따 시랑대란 세 글자를 바위에 새긴 뒤부터 북쪽은 원앙대[지금의 해광사 일대], 남쪽은 시랑대라 구분하였다.
바위 가운데가 평평하여 사오십 명이 앉아도 남을 만큼 널찍하고 바위 뒤쪽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푸른 바다와 절경을 이룬 이곳을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기장에 관한 주요 문헌에는 오랑대의 원래인 원앙대가 표기되어있다. ‘원앙대는 기장현에서 남쪽으로 10리, 시랑대는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라는 문헌대로면 오랑대가 아닌 원앙대라야 맞다. 기장 향토가사집 차성가[1860]의 주석에도 ‘원앙대는 연화리 서암마을에서 동남쪽에 있다’라고 했으니 오랑대는 기장8경에 속하지도 않는다.
오랑대는 원음이 와전된 것이며 공인된 명칭이 될 수 없음으로 문헌에는 원앙대이니 오시리아의 머리글자로는 부적절하다느니 처음처럼 ‘동부산’으로 하고, 오시리아 역명은 행정상 지명인 당사리를 따 ‘당사역’이라 해야 한다느니, 오랑대는 원앙대라는 지명에서 유래되었다는 증거도 없어 오시리아라는 브랜드에도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조합어라고 주장할 근거도 없다는 설도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거반 토착화된 모양새이다.
오시리아 오시려거든
오시리아 오시려면 먼저 당사로 오시라
대대손손 반농반어 민초들 바다와 지신을 섬기고
천년 소나무 당산나무에 왼새끼 금줄을 치고
정월달 열나흘 밤 조율이시주과포로
당산 할배 할매 신주로 모시고 살던
오래된 당사里로 먼저 오시라
청정 동해바닷물 끌어다 소금을 굽고, 미역 말리고 멸치를 말리던 너럭바위 천석바위 거북바위 널버리바위 물 좋은 동암 수리답 채전 밭 가을걷이 타작마당 짚불 곰장어 해거리 없이 주정발이 진 살구나무 감나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 아래위각단 오만사람 다 와 보고 즐기시라고 관광단지에 준 사람들, 조상선령까지 뿔뿔이 흩어진 그들이 되지 말자고 솔방, 신접 새살림 차린 곳
상전벽해 천지개벽에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기억 속으로
나무보다는 숲이 된 하나보다 한 무리가 된
아름답고 평화로운 신화가 된 사람들
시랑산 해동 용궁사 절집에 가려거든
오시리아 오시려거든
당사里에 먼저 오시라
- 박정애 졸시 <오시리아 오시려거든> 전문 -
당사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던 당사당집을 말하며 당사마을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2005년 동부산관광단지 지정고시가 된 후 기존 원주민 이주정착을 위해 자연친화적인 유럽형 고급 전원주택단지로 당사마을이 집단 이주를 했다. 지금은 용도 변경을 하여 펜션이나 레스토랑이 된 곳도 더러 보인다. 가장 뛰어난 문학은 자기 민족고유의 가락과 민요에서 출발한다는 말처럼 우리 문화는 우리다울 때 자존과 함께 더욱 빛날 것이다.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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