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석이]

아라홍련
김석이

공기라곤 아예 없는 깡마른 진흙 층
엎드려 살아왔다 칠 백 년을 죽은 척
쉽사리 접을 수 없던 만개의 몸부림
함구한 그 세월에 꽃봉오리 길어지고
짧아진 꽃잎아래 뒤척이던 긴긴밤
담홍색 입술 사이로 어둠이 숨을 쉰다
그리움의 지층 위에 뿌려 놓은 메마른 말
아득한 물의 기억 화석으로 남았는데
애틋한 그대 입김에 꽃은 또 피어날까

『비브라토』(2014,시와소금)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씨앗의 꿈이 있다. 그리움의 지층에는 쉬 접을 수 없는 만개의 몸부림이 있다. 아득한 물의 기억으로 칠 백 년을 죽은 척 견뎌온 삶의 역사가 꽃 피우는 오늘이 있다.

김석이 시인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