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는 원래 천혜의 경관을 지녔으나 개항이 되고 물류 중심의 항만정책에 따라 매립 매축이 일어나고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해안은 변형되었다. 도시 속에서도 공장건물들 사이나 아파트 단지에 가려진 초라한 모습의 항구나 포구가 잊기거나 사라지는 곳들도 있다.
삶의 터전인 항구와 포구의 지명이 같은 곳이 전국에서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 해안선 전역에 있는 수많은 포구 가운데 삼포(三浦)란 이름은 여러 곳에서 보인다. 해양도시인 부산만 하여도 60여 개의 항구와 포구를 가졌고 해운대의 삼포는 미포, 구덕포, 청사포를 이르는 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육로관문인 부산 유라리광장에서 7번 국도를 타고 해파랑길을 따라 오르면 47코스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삼포해수욕장이 있다. 삼포해변은 해당화가 유명한 곳으로 이곳은 <우는 모래>라는 뜻의 명사십리로 불리는 삼포해변이다. 삼포해변은 해안선을 따라 흰 모래가 푸른 소나무 사이로 빛나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옛날부터 이름난 큰 산과 강, 바다로 둘러싸인 곳을 삼포지향(三抱之鄕)이라 하여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왔다. 해운대는 삼포에 온천 하나를 더한 사포지향으로 불린다.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해운대 백사장과 동백섬에 해운대 온천까지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 관광특구 지역이다. 호텔과 관광 위락 시설이 갖추어져 접근성과 편리성이 높은 곳인데 여기에 온천을 더한 사포지향(四抱之鄕)이 된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무질서하게 난입하는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포는 내이포(진해), 부산포(동래), 염포(울산)를 일러 삼포라고 했던 것인데, 여기에 왜관을 설치하여 물자교역과 접대 장소로 이용했던 과거 역사 속의 삼포는 그렇다 치고,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이 있고, 이혜민 작사 작곡 가수 강은철이 노래한 ‘삼포 가는 길’이 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노래 ‘삼포 가는 길’은 이상향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포구다. 진해 바다 칠십 리에 해당하는 삼포항 마을이 그곳이다. 삼포마을 해안관광 도로변에 근접한 곳에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밤길을 걷다 보면 한발 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하, 뜬구름 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임 소식 좀 전해 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 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은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길을 걸으면서 일어나는 각자의 사연과 함께 눈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197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고달픈 민중들에 관한 이야기로 감옥에서 출감한 한 사내는 가족해체의 고통을, 다른 또 한 사내는 공사판을 떠돌아다니는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젊은 여자는 술집 작부로 술집을 탈출한 여성이다. 이들은 농경사회가 몰락하고 도시근대화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길 위에 선 고단한 떠돌이들이다.
제목에 쓰인 삼포(森浦)는 바닷가에 숲이 울창한 마을로 실제 존재하는 지명이 아닌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이상적 공간임에도 정신적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고향이지만 정작 개발로 인해 사라지고 없다.
부산이 큰 항만만 있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항구와 포구들이 해안선을 따라 포도송이처럼 송알송알 즐비하다. 해항 도시 부산에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등대, 해안산책로 등 다양한 친수 공간들이 산재해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 해수욕장 사이에 있는 미포, 청사포, 구덕포를 묶어 삼포(三浦)라 하는데, 푸른 바다와 솔 향기 그윽한 해변 길을 체험할 수 있는 해운대 삼포 길은 도심 속에서도 오래된 어촌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와우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소가 누워있는데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갯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 미포이다. 해운대 동쪽 끝에 있는 외우산 끝자락이라는 꼬리 미자를 딴 미포는 해수욕장 끝에 있다. 해운대 횟집 밀집 지역인 미포 회 거리는 일찍부터 어업인들이 포구에 자리한 어촌 마을이었다. 횟집 50여 곳이 늘어서 있는 구역으로 출어한 어선이 잡은 신선한 고기를 판매하는 횟집이 자연스레 미포 회 거리로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확인할 순 없지만 국내에서 가장 먼저 횟집들이 생겨났다는 곳이기도 하다.
미포에서 송정으로 향하는 철로가 아치형 터널을 통과하는 지점에 해안선이 툭 불거져 나온 곳이 고두백이[고두말]다. 소나무 숲 사이로 청사포로 가는 해안산책로에는 장군 바위, 대밭 끝, 문둥이 골짜기 등이 있다. 미포항에서 출발하는 오륙도 간 관광 유람선은 해운대 앞바다를 지나 동백섬을 지나 이기대를 거쳐 신선대와 오륙도를 돌아볼 수 있는 코스이다.
미포의 초기 원주민은 인동 장씨와 파평 윤씨, 경주 김씨, 단양 전씨가 처음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동래군 동하면에 속하였고, 1914년 남면 중동리 미포 마을이 되었다. 1942년 부산부 수영출장소에 편입되었고, 1953년 해운대출장소 관할이었다가 1957년 동래구 해운대출장소로 개편되었다. 1980년 동래구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하였고, 19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미포 마을이 된 것이다.
청사포 마을은 푸른 구렁이의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새색시였던 김씨 부인은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매일 해안가의 바위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수십 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는 김씨 부인을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청사, 푸른 구렁이를 보내 용궁에서 남편과 상봉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렇게 푸른 뱀이 나타났다는 사건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1920년경 ‘뱀 사(蛇)’를 ‘모래 사(砂)’로 바꾸어 청사포로 개칭했다고 한다.
청사포에는 당산나무로 모시는 망부송이 있고, 이곳에서 바다로 바라보는 일출은 아름답기로 이미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고, 청사포 저녁달은 부산 팔경으로 꼽힌다.
구덕포에는 3백 년 된 곰솔은 누워있는 와룡송이다. 이 마을 곰솔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지가 뒤틀린 곱사등이 체위로 마치 돌기둥을 쓸어안은 듯, 어떻게 보면 거대한 이무기 한 마리가 용트림을 하는 듯이 누워있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해풍 탓이거나 지질의 문제로 형태가 땅바닥에서부터 가지와 줄기가 바닥을 기는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 보호수로 지정되어 구덕포 주민들이 관리하고 있다.
구덕포는 구 동래군 원남면에 속했던 포구에 함안 조씨가 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기장현읍지에는 기장현 남면 송정방으로 기록되어 있고, 양산군의 일부가 동래군으로 편입되어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 구덕포 마을이 되었다가 1963년 부산시가 부산직할시로 승격되면서 해운대출장소에 편입되어 송정리 구덕포마을이 되었고, 1966년 송정리가 송정동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 해운대출장소가 해운대구로 승격되고 1995년 직할시가 광역시로 승격하여 해운대구 송정동 구덕포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덕포는 송정과 청사포 사이에 있는 포구로 원래 해안가에 접한 마을이었다. 현재는 외지인이 들어와 횟집과 레스토랑 등 상가가 자리한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송정 해수욕장은 수질이 맑고 수심이 얕아서 파도가 잔잔하다. 관광 레저 특구에 포함됨에 따라 각종 해양 레포츠 관련된 시설들이 조성되어 있다.
해운대에서 기장 9포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해안은 곰솔이라 부르는 해송이 주를 이룬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사람과 자연을 연결시키는 것은 길이다. 공공이 긴밀하게 연결된 운명의 탯줄인 길은 인류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정복의 방식으로는 대처하기보다 오직 적응하는 방식만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일상을 슬기롭게 회복시켜주는 길에게 감사할 일이다. 길은 세상을 향해 열려있고 자연을 사랑하고 다양한 문화와 상호경계를 초월한 공통분모를 이루는 연대 관계는 길의 몫인 까닭에 바람에 감사하며 비에 감사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계절에 감사할 일이다.
자연 속에서 재생의 힘을 얻고 일하는 일상을 활기차게 하는 산과 바다에 감사하고 동식물에 감사하며 인간의 만행에도 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연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생태회복력을 돕는 건 자연의 힘만으론 힘들 것이다. 인간은 가해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고 공공선을 지켜야 할 것이다. 사람들의 발밑에서 견디어 준 토양의 온갖 식생들에 감사하며 길이 가진 다양성과 개방성, 그 넓은 포용을 존중하는 것이 길 위에 선 사람들의 도리일 것이다. 크고 작은 항구와 포구들이 각기 고립되지 않고 연계하듯이.
동해안 어디서건 아침 해돋이 장면이 장관인 도심과 아름다운 어촌들이 고적한 마을 풍경이 조화로운 곳, 해변열차 길옆으로 철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조성돼있다 해변 열차를 타고 미포에서 송정까지 왕복할 수도 있지만 소나무 숲길을 걸어서 왕복할 수도 있다. 아침이 좋은 도시, 동해안의 아침 해는 참, 가볍다.
◇ 박정애 시인 : ▷기장 출생 ▷1993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199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개운포에서》, 《바다악사》 외 8권. ▷이주홍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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