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노란 잠수함
정 유 미

엄마가 부르면 따라 부른 조미미
바다가 육지라 굴리기 좋았다
학교 가면 박인희
나를 두고 저만치 끝이 없는 남동생 죽고 버스 타는 중1
산은 도망치는 산 강만 보고 걸었다
할 말 있어도 할 말 없어도 노래하면 잊혔다
대구 밤고개 기타학원 노총각 샘
코드 대신 플랫 위 내 손가락 짚고
내 님의 사랑은 외로움도 깊어라 끝에 가서 꼭 한숨 쉬었다
졸업하고 경리 보던 지하 경양식 노란잠수함
노랑 잠망경에 폭 빠진 소파
노래 베끼다 시 베꼈다
글자들은 간질댔다 사랑은 쿡 쓰렸다
그래 나는
소리 질러 소리쳐
날 앗아가.

남정탕

새벽 네 시 남정탕 간다 별 총총
젖어도 좋을 잡지 들고

뚱한 머리 물 들어간다
사타구니 귀때기 물 들이켠다
푸르릉 살아난다

옥산할메 나오셨습니꺼?
뭐 재밌는 거 보노?
문무학 시인 ‘호미로 그은 밑줄’
“한평생 흙 읽으며 사셨던 울 어머니 꼿꼿하던 허리가 몇 번이나 꺾여도 떨어질 수 없어서 팽개칠 수 없어서 어머닌 그냥 그대로 호미가 되셨다.”

참말이네 내 말이네
온탕 참방참방.

백마산성

소쿠리 장수 엄마
새벽잠 지게 얹어
오가리 정류소 바래드리고
탱자 울타리 학교 종
갈까 말까 배는 고파 와
삐삐 뽁뽁 빼먹고
묏등 벌러덩

어디 어디 떴나
엄마.

긁어주는 여자

긁어야 자는 남자를 만났다
긁혀야 잠이 든다고 했다
10층 1003호 불 꺼졌다
등 긁어 밤샘 긁은 등줄기 야금야금 아이 하나 아이 둘
긁히는 남자를 사랑해서
긁어주는 여자를 사랑할 거라 해서
긁는 게 뭐 어려운 일 시소를 타다가도
잽싸게 긁어주었다
남은 묵찌빠가 끝나면 잠은 영 달아나
저만치 가는 달을 뒹굴뒹굴
긁어야 잠드는 옆에서 말똥한 잠이 가려워
누구 내 잠 좀 내 밤 좀
뜨나 감으나 흰 벽 커튼을 열면
나 같은 잠이 촘촘 박힌 아파트촌
머 멀리 가고 싶어
10층 1003호 불 켜졌다
잘 자는 잠인 줄 알았는데
오래 뜬 밤 지친 미끄럼틀 매니큐어 바르고 후후
그림자 엿보다가
궁금한 엘리베이터 건너간다
출입문 닫히려다 열린다 어디서 본 듯
나와 꼭 닮은 엘리베이트 안 여자

긁어주고 싶은데.

황강가에서

바나나 달달이 사라지자
바닥에 던진 껍질에 밟혔다

가엾고도가엾구나가짜한테맘을뺏기다니*

강인 줄 알았는데 종지
어디 산을 감춘 그릇이 있다는데.


*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2016)

홍매 숲에서

누군 사랑해서 보낼 수 없었다는데
나는 사랑해서 얼른 보냈다
서두르면 뒤끝이 눈꼽이 낀다
자주 우두커니 된다

홍매 숲에 앉아
딱새가 발치


콕.

숨바꼭집

삐거럭 삐거럭 하루도 평평하면 안 되지
덜거럭 덜거럭 하루도 얌전하면 안 되지

찌거럭 찌거럭 맞춰보자
쩌거럭 쩌거럭 들춰보자

어디고?
걱정돼.

밥죠.
사랑해?

자나?
미안해.

못 찾겠다 찾았다
쏙 들어갔다 쑥 나왔다.

무릉

큰길에서 길쭉길쭉 오른다
푸스스 돌담 너머 할메
어데서 왔노
읍에서예
읍에 우리 큰딸이 공일에 안 빠지고 온다
장에 가고 목간 가고 큰딸이 다 해 준다
지팡이 손잡이 만지작 할메 손 위에 내 손
언제 적 코로나야 아직도 코로나야
어머니 좋으시겠어예 저도 큰 딸
나오려는 말 도로 말아 손 꼭 쥐는
똑 우리 큰 딸이라.

카페다온

외딴집 뒹구는 달
꿈꾸는 젖은 피식 웃는

설레게 해줘
살게 해줘

커피 한잔할까?
오전 아홉 시면 좋겠어

벵갈고무나무 막 책을 들고.

찔끔 운 시
안경 밟은 낮
수다콘서트
문턱 닳은 책
비밀 유자 레몬 레알
커피 조금만 더 주실 수
어떻게 지내
머리가 길어 벌써 11월
꽃 지누나
진지가 언젠데
가을 가누나
또 오세요
니가 올까
빼꼼.

그려라 목요일

서른하고 마흔은
방바닥 지고 도는 시계 같아서
시간아 가라 어서
오십 먹던 삼월에 학교 갔다
목요일 아침 합천 시외버스 터미널 두 시간 달려
경남대평생교육원 시창작 첫날 첫 시간
자기를 그리는 게 시
자기도 없는데 무슨 시?
꾹꾹 눌러 덮은 덧칠 노트 거울 앞에 앉혀
벗긴다 살살 뻘건 입 퍼런 눈두덩
앉을 때마다 조금조금
니 맞나 니 맞나
누군 꽃 그리나 새 그리나 멀리까지 그리나
나는 내 그린다
내 잘 그리러 간다.

정유미 시인

정유미 |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9살 때부터 합천 사람으로 살고 있다. 합천문인협회 사무국장을 11년 동안 맡았고, 합천예총사무국장을 지냈다. 2011년『경남문학』신인상을 거쳐 2022년 『장소시학』제2회 신인상을 받아 문학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방송통신대학 재학. hayandoe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