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시학 4호-신작시】 토란 외 9편 - 김보성

장소시학 승인 2024.08.21 17:55 의견 0

토란

김 보 성

형수 형수 하며 몇십 년
아들 장가들고 남편 저세상 가는 것까지 봤다
대문 맞댄 이웃
세찬 비로 피해 없나 살피다
밭두렁에 미끄러져
찢기고 속 옷까지 돌돌 말려 누가 볼까 벌떡 일어나니
앞집 우 씨
어느새 왔는지 손잡아줘
아이고 깜짝이야
괜찮소?

지난 새벽
아래채로 기어들어 온 소
왜 이라요? 아즈벰
취했네, 가서 자소
위채 아들 내외 자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벌벌 떨리는 팔다리
한번이 문제지 수시로 들이미는 뿔
문고리 매달리며 이러지 마소

앞발 안되니 뒷발로 쳐들어온다

도라지꽃

중 이학년
쉬는 시간이 되면 덕이 자리 모였다
어젯밤엔 어땠어?

방과 방 사이에 봉창
삼촌 취한 날
저 방에 아 있소
괜찮다 마
밤이면 이불 속 맹꽁이 뽁뽁뽁
찰지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숙모

같은 상에 밥 먹기 싫어
도라지밭에 침 뱉고
매점에서 도넛 먹었다

삼복

밤새 문대다가 벌린 입 풀풀 대며 늦잠이다
여든셋 영감
껍질 안 벗겨졌나 몰라
쇤들 배겨날까?
밖에선 안 그런 척 집에선 허덕허덕
사십 이후 어디서 매독 옮아
진물 오 년
그나마 숨 쉬었는데
늙어서도 줄어들지 않는 거 보면
씨부랄
백 년 된 더덕 힘인지
무시라
무시라
같이 육십 년
앉은자리 허연 비늘 꼬부랑 흰털
청소기든 김에
저리 비키소
에헤
이쪽으로 비키라카이
이제사 막 쫓는다

생각 따로 말 따로

찌그덕 새
찌그덕 새
끌게 끌고 하세월
오일장 보러 가는 점례할메

아이고 더버라
감자 파는 아저씨
반바지 러닝 차림 쩍 벌려 눈 둘 곳 마땅찮다

고, 고메 이 킬로만 주이소

그건 임자 있습니다

텃새

오늘도 걸렸다

낯선 여자
야쿠르트 회칠한 불룩한 배 얼굴은 비릿한 들깨가루범벅
음부,
샤워기 대고 삼십 분 이상 물 흘려보내니
벼락이다

그 보소 물 좀 아낍시더
부추 삶기것소 으이

팔십

초복 지나 중복으로 가는 한낮
이러나저러나 더운 날
벗고 누워 뒹굴다가 근육 없는 다리 근질거리는 등
붙어있는 시늉만 하는 거
쓸 수 있을까?

젊은 날
봉천동 지하 칸막이이발소
면도가 끝나갈 무렵 자꾸 스치며 힘 오르게 해놓고
오빠, 오천 원에 할래요?
명절이라 시골 가고 손님이 없네
그 후 단골 되어
에어컨 튼다며 그곳에 물파스 발라놓고
시원하지 응
뭐꼬, 아이고 따가버라
한창때였지

띠리리 띠띠
마누라 왔나?
대문 누르는 기척에
미리 죽었다

오빠 달려 노래주점

오후 여섯 시 출근
새벽 세 시 집에 온다
좋은 시절 다 가고 기린 목 빼는 금요일
작업복 청바지 남자 둘
들어서자마자
사장님, 둘이요
알죠?
예쁜이들로
두 시간 놀다 갈 거니까
맥주 주시고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마세요
옮긴 벌통 같더니
잠잠해져
한 쌍은 의자 돌려놓고
포개졌고
다른 쌍은 서서 부빈다

다음날 옥상에 소파 말렸다

하의 실종

서부산 고속도로 요금소
대답하랴
계산하랴
휴지 버려주세요, 펴보면 전화번호
당신 사랑하면 안 될까?
출근길 눈곱 안 떼고 들이대는
늙은 남자
누님, 밥 먹고 노래방 한번 가요
새파란 동생뻘

둥글납작한 얼굴
삼 년을 오가며 인사했다
낯이 익으니 농담까지 해
사람 괜찮네
비 오는 출근길
좋은 아침입니다
내려다보니

보여 줬다
지 꺼

오이소

자식 넷 혼자된 몸
아랫목에 시린 발 비좁아
소아마비 막내딸, 곪은 방바닥
뱁새 머리 당기며 마음 다졌다
다라이 이고
떡 장사
단속반 뜨면 숨바꼭질
잡숫고 가이소
어디든 앉으면 전이었다
닭 울기 전
팥 삶아 슬슬 달래며 설쿵설쿵 찧어
부산진시장 어귀
맛있어요
저녁이면 제법 불룩해진 돈주머니
큰아들 볼세라
눈은 먼 산에 두고 소매 밑으로 몇 장 감춘다
오늘도

서리 맞은 고추

점심시간
회사 앞 경비실
웬 여자가 자기 남편이랑 연애했다며 찾아왔다

서리하는 년
얼굴 좀 보자
너까지 네 명째야
시어른 계시고 제사 일곱
아들 둘이다
이 미친년

옥희
나이아가라 폭포 머리
좁은 입가엔 금방 쥐 뜯은 립스틱
걸음걸이 낭창낭창
가시나
많이 갈아탔네
하다 하다 가정 있는 놈 이가
맛보면 총각 시시하다 안 카더나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