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못 들은 척
이 영 자
숨소리까지 기댄다
통화 중에는
몇 차례 울린다 싶으면
먼저 집으려 하고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내 것 네 것 터지는 소리 다른데
두고 나가질 못한다
남 전화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나이 들면 바뀌려나 했더니
믿었는데
저녁 시간이면
답답해
먼저 자리를 일어난다
둘이서
같이 있는 것이 좋다니
자전거 탁구 걷기도
친구들 모임도 같이 다니다
혼자 나가는 것 싫어
나들이가 줄어든다
늦는다는 전화에 문까지 잠갔네
어두운 담벼락 넘다
헛짚은 다리
하지 않아도 된다고
면허 따려면
이혼이다 이혼
운전하고 다니면 얼마나 위험한데
사고 나면 다칠 수도
그러면 할 일도 못하지
손해가 엄청 크다니까
그렇기도 하지만
같이 다녀야 좋지
친구 만나도 시장을 갈 때도
어디든 가자는 곳 다 데려다주고
오라고 하면 언제든 달려갈 건데
해 준다니까
모두
졸혼
삐걱찌걱 울다가
기울어지니
부러진 상다리면 맞추어
동여매어 보겠는데
여태까지
터진 속을 꿰매고 다듬어
쓸데없는 이야기
쓸데 있는 이야기
맞장구치다가도
다람쥐 띠라면 몰라도
어제나 오늘이나
고쳐 살기 힘들다
나이 더 들어 별생각을 다 하고
가계부까지 뺏어간다
소리 지르는 것까지는 그렇다 해도
마지막 선을 넘으려 하네
입에서 뭐가 나올까
강아지가 안기면 손뼉을 치고 좋아하고
내가 안기려면 덥다 더워
뒤끝은 없는데
가족끼리 왜 그러느냐고
같이 있으면
옷만 갈아입어도
어디 갈 건데
같이 가자
지갑만 들어도
뭐 살 건데
내가 들어 줄게
됐네요
그림자 같으면
귀찮게 하지 않지
움직일 때마다
정년 후
스물네 시간
혼자 있고 싶은데
거기가 아닌데
오른쪽 엉치뼈 욱신거리더니
옆으로 눕는데
뒤틀린 허리 찢어진다
아야야
다친 것도 아닌데
그러기를 며칠째
후끈 파스 한 장
혼자 붙이니
제 자리 못 찾아
손전화
검색창만 두드리기에
여기가 제일 아픈 자리
짚어주었더니
그 옆으로
한 바닥 갖다 붙이고는
주변이 더 풀어져야 한단다
잠자리
소쿠리 이고 가는 엄마 손
날개 떨어질 듯
잡고 가는 건지 끌려가는 건지
함안성당 골목길
한참 걸어도
손톱마다 하얀 꽃 탱자나무 울타리
알아서 어쩌려고
나이 들어 옆이 있으니
힘들다
잠자는 모양도 보기 싫고
코골이에
쩝쩝거리는 입까지
동창회 나갔다가
처진 볼이 복어 배 같이
궁시렁공시렁
실컷 잘 놀다 와서
왜 그러느냐고
꼭 말해야 하나
나만 아직도 남편 있더라
손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면 기분이 좋아
웃는 고양이 튀어나올 듯
물방울무늬 팡팡
알파벳 뒤뚱거리고
잘라 놓은 수박과 딸기
피아노 팔분음표 사분음표 춤추는데
그렇게 하면 숨 못 쉰다고
손톱도 숨통이 트여야지
걱정은 고마운데
염려 놓으셔요 괜찮으니
돈이 아까워서 그래
이영자 | 시인. 경남 함안 출생, 공동시집 『양파집』과『시사문단』신인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달리는 꼴찌』를 냈다. youngj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