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발 닿는 곳으로
백승휘(소설가)
땀에 밴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맞은 편 흰 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입 밖으로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나는 너를 끌고 가고 그대들은 나를 밀어내지.’
입 밖 노래와는 달리 감미로우면서도 우울한, 이어질 듯하다가도 한숨에 가려 더는 잇지 못하는 기억이 떠올랐다. 촛불이 거리를 뜨겁게 달구던 때 여행 삼아 가는 차 안에서 만난 한 여인이다.
한 여인이 그 옆에 앉았다. 살포시 눌러쓴 하얀 모자챙 아래 드러난 여자의 표정은 금속판같이 차가웠다. 쌍꺼풀 속 커다란 눈망울엔 새장에 방금 갇힌 새의 두려운 빛도 있었다. 선뜻 말 건네는 것이 무안할 정도로 그늘진 표정이었다. 그런 윤곽 없는 모습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입술 안쪽 하얀 이다. 그녀가 가졌던 차가운 인상이 달라 보였다.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미약한 존재들이 짓는 표정하곤 달랐다. 막연한 불안감에 싸인 사람들은 그 자신 표정에서 드러난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감정을 들떠 내보이지만, 그녀는 석고상처럼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먼 길 여행에서 말을 아끼며 간다는 것을 못내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낸 건 그였다. 그는 휴게소 주차장 주변에 심어진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단 나무를 보고 질문을 던졌다.
“저기요, 저 나무가 뭔지 아세요?”
어색한 분위기를 피해 보려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잠깐 미소를 지어 보이긴 했어도 이내 창가로 고갤 돌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창가만을 바라보는 그녈 보자 겸연쩍단 생각이 든 그는 질문을 도로 삼켰다. 그때 창가로 고정되어 있던 눈동자가 살짝 빛나면서 그런 질문을 왜 그렇게 오래 참았냐는 투로 건건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다.
“그래, 뭔 나무예요?”
“먼나무.”
“뭔 나무냐니까요?”
“그래요, 먼나무요.”
“아이참. 나무 이름이 뭐냐구요?”
“먼나무예요. 뮈엔 뭔이 아니라 먼 멀다 할 때 먼.”
“무슨 나무 이름이 그래요.”
그가 가리킨 나무는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나무였다. 나무껍질을 벗기면 까만 속살이 드러나 먹나무로 불렸다는 나문데 음운변화로 먼나무가 되었다는 설을 재미있게 풀고 싶어서 그녀에게 물은 것이다.
“하루는 박통이요, 제주도를 시찰하는데, 겨울 다 지나지 않았는데도 잎사귀는 파랗고 그 파란 잎사귀 속으로 루즈를 짓물러 이겨 놓은 것 같은 빨간 앵두 같은 열매를 단 나무를 봤더란 말입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북부 지방에선 좀체 보기 힘든 나무였겠죠. 그래 옆에 있는 부하한테 저게 뭔 나무냐고 물었더니 부하도 제주도에 와서 처음 본 나무라, 뭔 나무인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여서 또 제주 사람에게 물었드만 제주 사람 하는 말이, 멍낭이란 말씨 하더래요.”
제주 말투를 어쭙잖게 흉내 낸 그의 말이 재밌다고 여겼는지 여자는 살짝 웃었다.
“우린 나무라 하지만 제주도에선 나무를 낭이라 불러요. 팽나무를 퐁낭, 소나무를 소낭, 녹나무를 농낭 이렇게. 그래서 멍나무가 대통령의 입을 빌려 먼나무란 이름으로 정착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우스꽝스럽게 먼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죠.”
그가 먼나무에 얽힌 얘기를 그럴싸하게 풀어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호호 글쎄요. 제겐 오히려 멀리 멀다 할 때 먼으로 해석되는군요. 온통 검은 바위로 검은색 띠를 두른 제주에서 빨간색이란, 원망과 한의 대상으로 멀리 두어야만 해서 그 나무를 먼나무로 부르지 않았을까요. 가까이 두고도 빨간색이란 이유로 멀리 두어야만 하는 나무. 파란색 잎사귀가 덮을수록 더 빨갛게 보이니 숨을 수도, 숨길 수도 없었던 나무 먼나무.”
읊조리는 듯한 말로 끝을 맺는 그녀는 차창 너머로 아득한 눈길을 두었다. 어딘가 멀리 두고 싶은 뭔가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다만 웃음 속에 드러난 이는 너무도 가지런해서 그녀가 아무리 못난 얼굴이라 해도 하얗고 바르게 세워진 이 하나만으로도 족히 미인 소리를 들을 만했다. 모자챙을 걷어내고 드러난 얼굴은 이국적이었지만 그렇다고 서양 여인의 얼굴은 아니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썹은 짙었고, 그 아래 쌍꺼풀은 길고도 깊었다. 오뚝한 콧날을 옆으로 차분하게 앉은 눈이 껌벅일 때면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첫 여행지로 꼽은 곳은 무등산이었다. 차별이 없어 민주주의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산으로 오래전 광주에 빚진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 입을 통해 그런 의미가 붙었다. 사실 무등산은 백제 이전엔 무돌산, 무당산이었다. 무지개가 정상 돌기둥에 상서롭게 비친다고 해서 무돌산이었고, 샤먼 의식의 절대 권력자 무당을 받드는 산이라서 무당산이었다. 그러던 것이 불교를 받아들인 백제가 부처인 무등광불로 이 산을 부르면서 무등산이 되었다. 하지만 삼십여 년 전 광주의 참상을 똑똑히 봐온 산이고, 그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넉넉히 품어서 광주사람들은 이 산을 ‘광주의 어머니’라 불렀다.
이 산에 대한 광주시민의 애정은 남달랐다.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주상절리인 입석대, 서석대는 광주시민의 자랑이었고 최고봉인 천왕봉 인왕봉 지왕봉은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무등산 최고봉을 깎아 군사기지를 세우자, 맥이 끊겼고 길이 막혔다. 사람들은 광주의 아픔이 거기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직장인들이 흔히 매는 백팩이란 가방을 둘러메고 등산화도 아닌 워킹화를 신고, 산에 올랐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산이긴 하지만 산치고는 높았고, 만만히 보고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님에도 그녀는 준비 없이 올랐다.
그녀를 못내 안타깝게 바라보던 그는 곤죽 땅이라도 밟아 발걸음이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연신 뒤돌아봤다. 유난히 긴 챙모를 푹 눌러쓴 그녀다. 어른 키만 한 산죽 나무를 헤집고 잘도 걸었지만, 오히려 자기 머리를 조일 듯이 쓴 모자 때문에 돌부리에 차여 넘어질 뻔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가장 무난하게 무등산을 오르는 길은 문빈정사란 절을 시작으로 증심교와 증심사 그리고 보호수로 지켜지고 있는 당산나무, 영산강 발원지란 작은 샘을 거쳐 중머리재, 장불재, 입석대, 서석대를 끝으로 올라 중봉을 거쳐 내려오는 길이다. 하지만 무등산 탐방을 목적으로 한 일행은 임란 의병장 김덕룡 기림비가 있는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일행과 함께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를 거쳐 장쾌하게 솟은 서석대, 입석대를 보고 장불재에 이른 그는 생경한 풍경에 바라볼 곳을 찾지 못해 서성이는 그녀를 향해 노무현 대통령이 여기까지 올랐다는 말을 하였다. 그것은 그녀의 첫 관심을 끄는 말이었다.
“희한하죠.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란 광주시민의 바램을 그간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부가 광주시민이 무등산에 노무현 길을 만드니 서둘러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 영 석연찮죠.”
충분한 개연성을 두고 한 그의 말이었지만 어떤 사실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국립공원이 되면 탐방로1, 탐방로2. 이렇게만 쓸 수 있단 걸 이용해서 ‘노무현길’을 통해 노무현 정신이 살아나는 것을 막고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무등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전남도청을 리모델링 해준다는 구실로 광주 5.18 흔적 지우기에 나선 것을 봐서도 무등산 ‘노무현길’도 그것의 한 일환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잔뜩 들어요.”
이런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그녀는 그의 말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한마디 말을 던졌다.
“아무리 정신머리 없는 정부라도 국립공원 지정의 가부를 그런 식으로 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런 것에 대한 절차를 잘 모르지만 자기와 반대되는 역사의 한 인물을 위한 길이 광주 무등산에 있다고 하여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한 꼼수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는 것은 사실 수긍하기도 힘들고 이해도 잘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상상력을 발휘해 보려던 그는 그만 무르춤해서는 빈손을 허리 뒤쪽으로 옮겼다. 대신 드넓은 장불재에 머물 새도 없이 가버리는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왔던 길로 망연한 눈길을 주는 그녀에게 시선을 꽂았다. 바람 탄 긴 생머리가 얼굴을 찰거머리처럼 휘감는데도 무등산 정상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 그녀였다. 하염없이 무등산만을 바라보았다.
하산에 나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상당히 재발라졌다. 곧 어둠이 내릴 거란 걸 사람들은 알았다. 서쪽 하늘이 희붉게 물들고 있었다.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선 사람들의 꼬리가 보이지 않을 무렵에 그녀는 그제야 발걸음을 떼었다. 거침없이 내달리는 남자 발걸음보다 그녀의 걸음은 몹시 더뎠다. 워킹화로 비탈진 산길을 내려오는 건 쉽지 않았다.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가 아닌 탓에 약간 비탈진 미끄러운 길에도 쉽게 넘어졌다. 이미 어둠은 숲부터 삼키며 그늘을 몰아 점점 다가왔다. 그때 쳐진 일행이 없나 뒤를 살피며 아래로 내닫는 그의 귀에 짧지만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져 왔다.
일행을 따라 내려가던 길을 접고 토끼 뜀뛰듯 산길을 바삐 거슬러 올랐다. 그 손에 땀이 잡혔다. 등줄기는 흐른 땀으로 축축했다. 그때 흑! 흑! 대며 우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자신 옆자리에 앉았던, 무등산을 넘고 장불재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야무지게 되받았던 그 여성이었다.
등을 구부린 채 잔뜩 웅크려 울고 있는 여인의 몸은 너무도 작아 달랑 업고 산 밑으로 내달려도 일행을 따라잡을 것 같았다. 천천히 다가가는 그에게 잔뜩 경계심을 품은 그녀였지만 고립무원의 처지에 자기 몸 상태로는 도저히 내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몸을 그에게 맡겼다. 내려오면서 다친 무릎에 난 통증에서 생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그녀가 달리 선택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해주고는 고통을 잠시라도 완화할 수 있는 파스를 잔뜩 뿌려주었다. 사내 어깨에 기대어 무사히 산 아래 도착한 그녀는 좀 전에 가졌던 두려운 표정 대신 안도감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산행을 무사히 마쳤고 무등산 탐방 행사를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하는 사람들이 버스 뒤편에 조촐한 술판을 만들자, 세 시간을 맨정신으로 버티며 가기 힘들단 핑계로 사람들이 한둘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내가 술잔을 입에 톡 털어 넣으면서 말을 던졌다.
“뭐니 뭐니 해도 무등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무등산 타잔이라 불렸던 박흥숙이야. 공무 수행 중이던 공무원을 네 명이나 무등산으로 끌고 와 때려죽였으니, 정글 왕 타잔이 아니고 뭐야. 산을 원숭이처럼 잘 타고 싸움 실력도 대단해서 근동 어깨 근골에 못이 박힌 불량배들도 꼼짝 못 했다지.”
“그러면 뭐 하냐고. 사람 네 명을 죽인 살인자인데. 결국, 교수대에 목매달려 죽었잖아.”
두 사내가 주고받는 이 말에 함께 술을 먹던 사람들은 무척 구미가 당겼는지 턱을 끌어당기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술 몇 잔에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박흥숙이란 인물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80년‘화려한 휴가’란 작전명으로 광주시민을 무참히 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성탄절 전야 박흥숙을 교수대로 끌어내어 죽인 사건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 당시 굵직한 여러 사건에 가려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개발독재에 신음하던 민중의 마지막 저항이었다고 생각한 사건이었다.
일행은 박흥숙이란 인물에 대해 더는 얘기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떠도는 소문을 어디선가 듣고 옮겼기 때문이었다. 여독을 풀 생각으로 잠시 눈을 감은 그에게 흑! 하는 짧은 신음이 들려왔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낸 소리였다. 모자를 눌러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던 그는 단순한 재채기로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실 그녀 때문에 노심초사했던 몇 시간 전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고맙단 어떤 말도 하지 않은 그녀였다.
일상으로 돌아간 그는 평소 하던 대로 일 속에 파묻혀 살았다. 하루가 가고 내일이 와도 조금 전 지난 시간을 기억 못 할 만큼 일만 했다. 하지만 구심력이 작동하지 않고 외력으로만 튕겨 나가려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냐는 푸념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통의 생소한 문자가 핸드폰 창에 떴다. 메시지 아이콘을 눌렀다. 안부를 묻는 첫 문장은 낯설었지만 누가 보냈는지 금방 알만한 내용이었다. 잊을만하면 오던 그런 사람도 아닌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 가던 그녀였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로 시작한 문자는 통화가 가능한가요로 맺었다. 그는 메시지 함에 있던 전화번호를 우선 ‘그녀’로 저장해놓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그가 여보세요를 수화기 안으로 던져 넣자 꽤 길게 느껴질 만한 5초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똑같은 여보세요란 말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대화를 잇기도 전에 선생님 죄송합니다로 말문을 열었다. 상대의 의중이 어떤지 살펴보지도 않고 “저녁에 시간 되시죠. 저번 일을 사과하는 뜻에서 저녁을 대접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말을 던졌다. ‘사과?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녀의 말 사과와 그의 생각 고맙다는 것 사이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그는 잠시 어리둥절하기는 했으나 한편으론 거절치 못하게 하는 그녀의 당돌함에 마음이 끌렸다. ‘그럽시다’란 말로 그가 대답을 끝내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장소와 시간을 말했다.
그는 약속 시각에 맞춰 서둘러 길을 나섰다. 밤에만 내렸다 사라진 비 때문에 한증막으로 변한 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일찌감치 회사를 빠져나온 그를 향해 와락 달려든 것은 후끈 달아오른 열기였다. 더위를 식혀줄 커피집을 예상한 그에게 그녀는 배가 고프다며 국밥집으로 이끌었다.
“여기도 에어컨 빵빵하게 나와요. 거기다 민생고를 해결할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이면 뭐 남부러울 게 없는데 뭐 하러 그 비싸고 가성비도 낮은 커피점에 갈까요. 요즘은 입맛 까다로운 손님에 맞춰 원두커피를 비치해 놓은 곳도 많더라구요.”
남의 기분을 생각지 않고 자기 정한 대로 가는 그녀다. 도심의 음식점이란 게 그저 그래서 특별히 고를 만한 집이라고 해야 보쌈집이나 한정식집이고, 간혹 아구탕, 복국집이 눈에 띄었을 뿐 특별할 게 없었다.
가장 흔한 국밥집에 저녁을 얻어먹은 그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2차로 술집을 갔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술집이라며 그를 데려간 곳은 여느 술집과 하나 다를 곳 없는 평범한 술집이었다. 다만 안에 든 물건들은 조잡했고 허름했다. 벽 쪽으로 붙어 있는 탁자는 힘 좋은 사람이 누르면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보였고, 가장 좋아하는 자리라고 이끈 곳은 나무로 대충 못 박아 만든 조악하기 그지없는, 포장마차를 사 분의 일 크기로 줄여 흉내 낸 곳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곳에 앉자마자 그녀는 양팔을 벌려 기둥을 잡고 흔들며 무척 좋아했다.
“선생님 전 이 자리 이게 무척 좋아요. 선생님은 이해 못 하시겠지만, 그저 나무를 뚝딱뚝딱 못질해서 지붕을 만들고 그 위에 비닐 천막을 씌운, 이게 전 정말 맘에 들어요. 지붕을 일단 얹히면 복잡해지는 게 구조물인데, 그러나 단순하게 이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아무 생각 없이 만들긴 했어도 상대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탁자 위에 술잔과 안주를 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 마음에서 땡하고 종 치면 돌아설 공간이 있다는 거, 전 이게 맘에 들어요.”
그녀가 하는 말에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마음에서 종 치면 돌아설 공간이란 말에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공간이란 것이 지금 보이는 물리적 공간을 말하는 것인지 내키지 않은 상대를 배척할 심리적 공간이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각개목으로 불리는 나무로 만든 기둥과 그 위 지붕이 뭐 대단하다고 저리 말하나 싶어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선생님 감정 상하셨지요. 죄송합니다. 뭣도 모르는 게 아는 척하고 중뿔나게 나서서.”
소주 한잔을 입속으로 톡 털어 넣는 그녀다.
“선생님, 오늘은 선생님의 시간을 제가 좀 빌려 쓰면 안 될까요?”
“……?”
“선생님. 우리 걸어요.”
꽤 깊은 밤인데도 밤거리엔 지칠 줄 모르는 청춘남녀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도심 중심가를 벗어나 군부대가 버리고 간 폐선 적치장까지 와서야 소란하던 소리는 잦고 침묵으로 응결된 밤공기가 뱀 꼬리처럼 길게 이어졌다. 둘은 길이 나 있는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군부대쯤인 곳에서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돌아 하릴없이 졸고 있는 가로등 아래 놓여있는 벤치에서 다리쉼을 했다.
“선생님, 저번 무등산 갔다 오는 길 버스 안에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제가 운 것 기억하시는지요? 너무 서러워서 울긴 울었는데, 크게 울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한 그녀는 눈물 그렁한 눈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래요. 제 아버지 이름은 저번에 그네들이 말한 박흥숙이에요. 삼십 년이 훨씬 넘었죠.”
가로등 불빛을 받아 눈이 반짝 빛났다. 눈물이 비쳤다. 먼 빈 하늘로 눈길을 둔 그녀는 다음 말을 이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아버진 칡뿌리 하나 캐 먹기도 힘든 전라도 영광 어드메 깡촌에서 살다 왔다고 해요. 도저히 해먹을 게 없어서 광주로 이사를 했지만, 그곳도 별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굶기는 매일반이라 이러다간 홀어머니와 자기 밑 여동생 둘을 굶겨 죽일 수도 있겠다 싶어 무등산 덕산골에 들어와 일단 동생을 허드렛일이나 하는 부엌데기로 밥술이나 뜨라고 무당집으로 보내고 자기는 부산에서 악착같이 돈 벌어 오겠다는 다짐을 두고 무등산을 떠났다지요.”
그녀는 어둑한 밤하늘에 대고 지난 과거를 멍석처럼 풀어 놓았다.
박흥숙은 일요 근무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렸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일요 주간 근무까지 신청한 박흥숙을 보고 프레스 반 반장이 한마디 던졌다.
“어이, 박군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이가. 한두 달도 아이고, 그러다가 쓰러져뿐다.”
“염려 꽉 붙들어 매시랑께요. 아즉 끄떡 없구만요.”
“하기사 자네처럼 일요일 하루도 안 빼고 나와주면야 우리야 고맙지. 마, 공순이, 공돌이 놀려싸도 이 윽물고 돈 벌어 남보란 듯이 사는 게 이기는 거다, 알겠제?”
“예, 잘 알고 있구만요.”
박흥숙이 홀어머니를 무등산에 맡기고 내려온 게 한 해 전이다. 광주를 떠나 부산 사상이란 곳에 와서 취직한 게 일 년 전이지만 곰살궂은 성격에 낯선 곳에 와서도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잘 버텼고, 일에 대한 악바리 근성 때문에 작업반장들한테도 신임을 얻었다. 거기다 타고난 강골로 전라도 깽깽이라 나지리 보고 덤벼드는 소소리패들을 주먹다짐 놓아서인지 신발공장에서 박흥숙이를 함부로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박흥숙이 프레스에서 가다(몰드)를 바꿔가며 갑피를 찍어 2층에 올려주면 나염반 근무자가 상표 문양을 내고 그걸 받은 시다(보조)는 본드로 풀칠하여 미싱공에게 넘겨주는데, 쉴 틈 없이 일하는 미싱공들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신발 갑피는 사회 계층 한편에선 부를 축적하는 재화였지만 다른 한편은 고달픈 노동자의 피땀이기도 했다. 밤낮없이 일해도 물량은 줄긴커녕 더 늘어만 갔다. 작년에 느낄 새도 없이 보내버린 봄이 미싱기 노루발 속에서 드르륵 득득 갈기는 바늘에 찍혀 또 왔지만, 예년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접착제와 톨루엔과 욕설에 섞인 봄은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가버렸다.
그러나 시국은 어수선했다. 방송은 광주가 무법천지로 변했으며 북한의 사주를 받은 광주시민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연일 떠들어댔다. 거기다 전두환 장군이 용감한 특전사 군인들을 광주로 투입해 폭도들을 진압했으니, 국민은 염려 말고 생업에 종사하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박흥숙은 그런 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무등산에 홀로 두고 온 어머님과 누이동생이 걱정되어 매일같이 편지를 썼다. 하지만 제대로 날아온 답장은 없었다.
이틀 달아서 계속 야간 근무를 했다. 오후까지 철야 근무에 휴일 근무를 합치면 수당이 두둑해질 것을 계산하고 버텼다. 그러나 박흥숙은 점점 감겨 오는 눈꺼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찬물을 얼굴에 뿌려가면서 퇴근 시간까지 용케 참았다. 난생처음 피곤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만큼 통장에는 자그마한 점방 하나 차릴만한 돈이 쌓여가고 있었다. 광주 시내에 점방 하나 얻어 어머니 모시고 동생과 함께 살 꿈으로 공장 정문을 나섰다.
“박흥숙 씨!”
뒷덜미 채듯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박흥숙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미싱부 1라인에서 근무하는 양화라는 아가씨가 부르는 소리였다. 억척스럽고 야무져서 미싱 1라인 반장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꿰찬 아가씨였다.
“양화 씨 아니고라? 어쩐 일이다요. 다 늦은 시간에 공장 출근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박흥숙의 이러한 물음에 양화라 불리는 여자는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이 광주에 흔전만전하게 핀 배롱나무꽃과 닮았다. 배롱나무 몸통을 살짝 쓸어주면 가지 저쪽이 흔들리는데, 박흥숙의 앞에서 웃고 있는 양화가 마치 간지럼을 타는 배롱나무처럼 보였다.
“왜 말이 없소? 누구 찾아왔소? 공장 문 닫았고만.”
박흥숙의 거듭된 질문에도 양화는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고 대신 앞서 성큼성큼 대로변으로 나아갔다. 그런 양화를 박흥숙은 멀뚱히 쳐다보았다.
“빨리 안 따라오고 뭐하능교. 내 혼자 가게 내버려둘기라예.”
어리둥절한 상황에 판단을 주저하고 있던 박흥숙은 생각을 밀쳐두고 양화 뒤를 쫓아갔다. 공장지대라 고만고만한 안주를 값싸게 내다 파는 술집은 많았고, 술집 어디든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내일 출근 걱정에 시간을 애까와 하는 그들은 취기 오른 불콰한 얼굴로 앞에 앉은 자와 밑도 끝도 없는 말씨름을 하고 있었다. 양화에게 이끌려 골목 후미진 곳까지 따라간 박흥숙은 자기 눈에 들어온 광경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좀 전까지 양화를 보고 먼저 말 걸었던 박흥숙이었지만 낯선 분위기에 생전 와보지 못한 술집에서 그것도 여자랑 있다는 것이 사뭇 부끄러워 안절부절못했다.
“박 반장님, 언제까지 서 있을낍니꺼. 마, 고마 앉으소.”
박흥숙이를 반장으로 우대해 주는 양화였다. 반장이란 말에 놀란 박흥숙은 그런 양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정도면 반장 대접받을 만하다고 봐예. 지금에야 일개 공원에 불과하지만, 이제껏 해오던 대로 하믄 내년쯤 반장 달 거라고 봐집니더. 다들 보는 눈이 있고, 그렇게 알고 있고.”
뜻밖의 말이었지만 몇 년을 일해도 달까 말까 한 반장을 자신을 가리켜 충분히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들은 박흥숙은 기분이 좋았다. 박흥숙은 자신 앞에 술을 들이켜며 거리낌 없이 말하는 양화란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 이마 가운데를 두고 양옆으로 넘긴 긴 생머리는 윤기가 흘렀고, 반듯한 이마와 그 아래 살짝 들어간 눈, 오뚝한 콧날은 이국적이었다.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와 그 아래 반듯하게 깎인 볼은 예쁜 미소년 같아 보였다. 입술은 조청을 발라놓은 듯 매끄럽고 탄력이 있었다.
달리 할 말이 없던 박흥숙은 애꿎은 술잔만 들었다 놨다 했다. 그런 투명 술잔엔 양화의 얼굴이 비쳤다. 새끼손가락이 반쯤 구부러지는 게 보였고 거기에 박흥숙 자기 손가락이 고리처럼 감기는 것이 보였다.
박흥숙은 연거푸 들이켠 술 몇 잔에 의자 밖으로 자꾸 빠져나가려는 자기 몸을 겨우 가누고 앉았다. 지난 시간 먹을 거 못 먹고 이 악물고 버틴 체력이 바닥이 났고 잠 한숨 못 자고 철야를 밥 먹듯이 한 탓에 주럽증이 무너지는 산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결국, 술상 앞으로 쓰러졌다. 가뭇하게 들려오는 소리라곤 ‘박 반장님. 박 반장님! 이걸 우야꼬’ 하는 한 여성의 안타까워하는 소리였다.
맞춰 놓은 시계 알람처럼 본능적으로 일어난 박흥숙은 빙글 도는 천장에 애써 눈동자를 맞추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자취방 들창문이 보이지 않았고, 늘 마주했던 비키니 옷장은 없고 방문도 허연 창호지가 아닌 짙은 황색의 문이었다. 잃어버린 방향 감각을 되찾는 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요 위에 딱지처럼 접힌 종이를 발견한 박흥숙은 서둘러 펼쳐 읽어 내려갔다.
“박 반장님. 이제 적당히 일하고 쉬셔야겠어요. 술 몇 잔에 쓰러질 정도면 몸이 많이 축났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어떻게 여관까지 왔는지는 애써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몸 추스르시고 출근하세요. 아침은 드시고 가시라고 요 앞 해장국집에 미리 식사 주문해 놓았으니 드시고 가세요.”
박흥숙은 아득해졌다. 아무런 기억을 떠올릴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양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박흥숙은 고민에 빠졌다. 애써 태연한 척 굴어도 양화로 가는 자신의 마음이 종작할 수 없이 이리저리 떼굴떼굴 굴렀다.
그런 박흥숙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화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으로 동료 여공들과 어울려 지냈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굴면서도 시간은 몇 달을 훌쩍 넘겨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다. 공장 안에 이상한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양화에 대한 소문이었다.
“반장 언니가 그만 두었다카데.”
“아니 와? 그 어려븐 반장까지 올라가 놓고.”
“글씨 소문엔 임신했다카던데.”
“임신? 설마. 그 야물딱지고 웬만한 사내 쳐다도 안 보는 양화 언니가 어케 임신을 한다는 거고.”
“아냐. 눈치 빠른 언니들이 임신을 알아채서는 대체 누구 씨냐고 닦달을 했쌌는데도 입에 미싱밥 박아놓은 것처럼 아무 말도 안 하더라쿠데.”
“시간은 자꾸 가지, 배는 불러오지. 마, 그렇게 해서 그만 뒀다카데.”
사람들은 양화의 임신을 기정사실화 시켜놓고 임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거라고 못 박아 버렸다. 또 한편 그렇게 양화를 임신시키고 책임 못 지는 사내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어 댔다. 그러는 사이 양화를 임신시킬 정도의 남자가 누구일까? 같은 공장엘 다니는 남자일까? 각종 추측성 소문이 공장을 돌았다.
박흥숙은 심장이 벌떡거렸고, 자다 일어나면 등줄기에 땀이 찼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양화를 찾아야 했다. 박흥숙은 양화를 찾기 위해 공장을 그만두었다. 양화가 갈만한 곳이면 어디든 갔다. 삼 개월가량을 밤낮없이 찾아다녔지만,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박흥숙은 광주로 돌아왔다. 그러나 떠날 때 본 광주가 아니었다. 커다란 상처를 입었음에도 아프단 소리도 못 하고 숨죽여 사는 광주였다. 부산에서 본 광주는 폭도의 도시였지만 광주를 마주한 박흥숙의 눈에는 비탄에 빠진 도시였다. 그것을 밖으로 표현 못 하고 고통을 가슴에 꾹꾹 묻고 응어리를 삭이는 광주였다.
광주에 온 박흥숙은 가슴 한편에 못처럼 박혀있던 양화를 잠시 밀쳐두고 어머니와 동생을 건사하기로 나섰다. 그러나 꼬박 2년을 안 쓰고 안 입고 벌었어도 자그마한 점방 하나 얻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단 무등산 무당촌에 머물면서 내년 봄을 기약하기로 맘먹었다.
사흘 걸러 박흥숙이 살던 집을 집뒤짐하던 시 철거반원들이 느닷없이 아침나절에 들이닥쳤다. 임시 거처로 만든 까대기 같은 집이었으나 엄연한 살림살이를 갖춘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들이닥친 게 이번이 세 번째여서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살림살이만 바수고 물러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철거반원들은 식기와 옷, 이불 등을 마당 한가운데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러게 씨부랄 잡것들아. 빨리 방 빼라고 할 때 방 뺐어야지. 우리가 호구좆으로 보여.”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집 마루에 올라선 철거반원은 안방과 다락에다 불을 던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락바락 소리만 질러대던 박흥숙의 어머니는 자기 눈에 타들어 가는 집이 보이자 게거품을 물고 거의 반실성한 사람처럼 땅바닥을 뒹굴었다. 거기엔 박홍숙이 피땀 흘려 번 돈이 있었다. 번연히 뜬 눈 안으로 붉은 핏물이 일렁였다. 망연자실 바라보던 어머니는 급기야 말릴 새도 없이 흙무지 된 몸을 불구덩이 속으로 냅다 던졌다.
불 속에 너울거리며 춤을 추는 한 물체를 화마가 먹어버리자, 철거반원들이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새벽에 일 나갔다 무등산으로 돌아오는 박흥숙의 눈에 덕산골에서 시커멓게 타오르는 연기가 잡혔다. 이상한 예감이 든 박흥숙은 무등산 길로 빠르게 뛰쳐 올라갔다. 덕산골이 저만치서 보이는 것과 동시에 산 아래로 허겁지겁 내달리는 사내들이 도망치듯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얼마 전에 보았던 낯익은 철거반원들이었다.
박흥숙이 도착하자 여동생이 반미치광이처럼 오빠를 붙들고 울었다. 불구덩이에서 이미 시커멓게 타버린 어머니를 안고 나온 박흥숙은 하늘을 보고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것도 잠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잿더미로 변해버린 광 속을 헤집었다. 아직도 불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는 광이었다. 평소 운동 삼아 들고 돌리던 쇠 절굿공이를 손에 거머쥐었다. 박흥숙은 쏜살같이 내달렸다. 누구보다 무등산 지리를 손바닥처럼 잘 아는 박흥숙이었다. 아까 마주친 철거반원을 따라잡기 위해서 바위 많은 계곡으로 방향을 잡아 그들을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 돌리며 쉬고 있는 사내들을 발견한 박홍숙은 피할 겨를도 주지 않고 눈에 먼저 들어온 사내를 향해 쇠 절굿공이를 날리고 뒤이어 옆에 있던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을 해치운 박흥숙이었다. 박흥숙의 무자비한 행동에 오줌을 지린 나머지 두 사내는 벌벌 떨었다.
박흥숙이 제 발로 경찰서를 찾아간 다음 날 공무집행 중인 네 명의 공무원이 끔찍하게 살해됐다고 신문들은 연일 대서특필로 다루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법천지의 도시 광주, 폭동의 도시 광주로 알고 있던 국민이 이 사건으로 또 한 번 광주를 향해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국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고 체제전복을 꾀하던 광주 폭동 중 한 명이라고 언론은 박흥숙을 지명했다. 잔인한, 끔찍한 단어를 살인이란 글자 앞에 꼭 붙여 기사를 내보내던 신문과 방송이 어느 틈에 체제전복 잔존세력으로 기사를 바꿔 내보내고 있었다. 재판은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과정과 절차를 생략한 사형판결을 그해 내렸다.
양화는 아직 젖내가 가시지 않은 아기를 안고 박흥숙이 갇힌 교도소를 부지런히 찾았다. 투명 아크릴 칸막이에 자그맣게 뚫린 구멍으로 양화의 등에 업힌 아기를 부르는 박흥숙은 목소리가 떨렸다.
“이름이 뭐야?”
“연희. 인연 연 바랄 희.”
“연희. 이름이 참 예쁘네. 닮기도 양화를 닮았네.”
이렇게 말을 마친 그녀는 도심 속 불빛들을 바라보았다.
“그 길로 부산으로 다시 온 어머니는 참 모질게 살았죠. 나를 할머니에게 맡긴 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못 배운 공순이 주제라서 늘 허덕였죠. 애 딸린 공순이, 옴치고 뛸 재간이 없는, 그저 한곳에 머물다 썩고 마는 너겁 같은 인생이 돼버린 건 이렇게 선생님과 걷는 이 길에서 제 어미는 마지막을 보냈죠. 지금은 남부민동으로 바꿔 부르지만, 옛날엔 완월동이라 불리던 이곳은 몸 파는 여자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성을 유리 벽 넘어 뭇 사내와 흥정하던 꽤 큰 홍등가였죠. 그래요. 이곳은 내 어미의 마지막 흔적이 있었던 곳이에요.”
뜻밖에 완월동이란 곳으로 안내해 준 그녀의 행동이 놀랍기도 했지만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치부를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그녀 말에 그는 더 놀랐다. 길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그날의 일을 모두 기억한다는 듯 바람이 일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짝이 없으니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은행나무가 이곳에서 삶의 미련마저 부여잡지 못하고 떠난 그녀의 어미, 양화를 닮았다고 그는 생각했다.
은행나무 옆 길가에 그나마 제대로 모습을 갖춘 건 교회밖에 없었다. 충무교회엔 완월동 여자들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기 몸을 수단 삼아 삶을 영위한 것에 대한 회한의 눈물로 만든 성수가 있을 것 같고, 하얗게 센 머리칼을 손빗으로 쓸어 넘기는 목사의 손등에 솟은 힘줄은 결코 죄 사함이 아닌 죄 더함만 더해가는 이 사회에 대한 절망의 표현처럼 보였다.
제법 높은 고갯길에 와서야 걸음을 멈춘 그녀는 그의 등을 떠밀며 어여, 가라고 손짓했다. 밤이 늦었다는, 딴에 염려해서 한 그녀의 말에 그는 픽! 하고 웃었다. 이슥한 밤을 더 무서워할 사람은 그녀임에도 오히려 남자인 자기를 생각하는 그녀의 당찬 모습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일주일 시간을 두고 좀 시간이 길다 느낄 때쯤 문자 한 통이 왔다. 무턱대고 바다로 데려가 달라는 그녀였다.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럼없이 구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것이 더 놀라웠다. 차를 몰아 한갓진 바다로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서른 중 반의 나이를 가진 그녀였지만 바다를 보면 어린애처럼 굴었다.
“선생님. 전 바다가 좋아요. 산보다 바다. 더 슬픔이 짙게 깔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바다만 보면 막 슬퍼지는 게, 그래서 바다가 좋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 넓은 바닷속 깊은 곳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큰 슬픈, 그런 뭔가가 있을 거 같아요. 뭍으로 끊임없이 밀려들긴 해도 단 한 번도 받아주지 않는 육지를 야속하다고 할 만하건만 그래도 미련스럽게 또 구애하는 파도는 참 바보스럽죠. 육지도 못 이기는 척 한 번쯤 받아주면 파도도 성내지 않을 텐데. 그러고 보면 우리네 삶도 저 바다의 파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받아주면 좋을 것을, 때를 놓쳐 후회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알 듯 말 듯한 말로 바다에 대고 읊조리는 그녀였다. 아마 자신의 존재를 바다에 대입시켜 말하려는 것 같았다. 아버지 박홍숙과 어머니 배양화, 그리고 자신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바다 옆 저 쓰러져가는 폐가 있잖아요, 사 주세요. 허물어진 담장 그 위에 붉게 핀 해당화, 그림이 좋지 않아요? 그리고 주인 없는 마당에 버려진 돌들. 절 닮은 거 같아서 너무 맘에 들어요. 바람도 저 마당에 들면 쉬어 갈 것 같아요. 뭐 하나 거칠 게 없고 걸릴 게 없고 저런 집에서 아무것도 손 안 대고 그렇게 살다 흔적 없이 가고 싶어요.”
어딘가 쓸쓸함이 배었다. 그와 떨어져 반 발자국 앞서가던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
어디든 발 닿는 곳으로
아침부터 새벽까지
나는 나를 끌고 가고
그대들은 나를 밀어내지
어디든 발 닿는 곳으로
사나흘에 한 번꼴로 오던 문자가 끊겼다.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단 한 통의 문자도 없었다. 궁금함에 더해 조바심이 일긴 했으나 먼저 핸드폰을 들진 않았다. 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뜻밖에 문자 한 통이 배달되었다.
문자는 선생님 안녕하세요로 시작했다. 잠깐이었지만 선생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고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속 시원히 털어놓은 적도 처음이고 맺힌 게 많아서인지 풀기도 어려웠는데 속에 담아 두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 선생님이 고맙다고도 썼다. 또한, 끝에 이르러선 더는 도시에 살기 힘들었는데,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겠다는 말과 다시 태어난다면 구질구질한 도시 속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 않고 물고기로 태어나서 평생 바다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번에 봐두었던 바닷가 근처 해당화 잘 있는지 묻고는 바닷가 집 진짜 산 건 아니죠? 하며 우스갯말을 덧붙였다. 어딘가 모르게 진한 애잔함이 묻어났다. 만약 샀다면 훗날 한번 들르겠다는 기약 없는 말을 던지면서 어디 멀리 떠날 거란 말로 끝을 맺었다.
그 편지를 접하자 멍한 상태로 잠시 하늘을 쳐다본 그는 '발 닿는 곳으로' 가사처럼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바다, 그 어딘가로 그녀가 갔을 것만 같았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