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백두대간의 꽃 진달래

신종석(소설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

한반도 백두대간을 따라 피고 지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고 약에도 쓸 수 있어 참꽃이라고 한다.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아이들은 봄이면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사슴처럼 참꽃을 따 먹었다. 어른들은 꽃으로 삼월삼짇날 무렵에 화전을 만들어 먹거나 진달래술 두견주를 담그기도 했다.

두견새가 밤새 울어 피를 토해 꽃 색깔이 붉다는 전설 때문에 한자로 두견화杜鵑花라고 하는데, 사실 두견새가 울 때쯤 백두대간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꽃이 진달래다.

만주의 동포들은 진달래를 천지꽃·천지화라고도 부르고 동포사회에서 국화로 통한다. 북한은 한때 진달래를 국화로 지정했다는 말도 있었으나, 김일성이 어느 날 함박꽃나무를 보고 감탄하여,

“동무, 저 꽃 이름이 뭐요?”

하고 묻자, 수행원이 함박꽃나무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나무를 그저 함박꽃나무라고 부른다는 것은. 쯔쯔!“

라고 혼잣말로 하자,

다음날부터 함박꽃나무 목란은 공식적으로 북한의 국화가 되어버렸다.

남쪽 한라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 아니 좀 더 올라가 북간도 일대까지 양지쪽이면 해안가나 산이나, 봄이면 남풍을 타고 백두대간 낮은 곳부터 높은 개마고원까지 전체를 물들이는 꽃이 바로 진달래다.

백두대간을 오르내리며 필자가 본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진달래는 낙동정맥 영남알프스 가지산 중봉 해발 1,100미터 고지에 펴, 멀리까지 아스라이 영남알프스 마루금을 조망하고 있다. 원래 진달래 나무는 그리 크지 않으나 왕벚나무만 한 게 눈짐작으로도 큰 집채만 했다. 필자는 군복무를 중부 전선 비무장지대 GP에서 근무했는데, 진달래 하나가 2층 건물만 한 것이 있었다. 아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봄이면 올해도 화려하게 만개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누군가가 그 진달래 밑에 발목지뢰를 묻어놓아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었다. 지뢰 매설을 한 적은 오래전인데 뇌관이 밖으로 드러나 있고 앞에 주의 지뢰 매설이란 표시기가 꽂혀있었다.

진달래보다 뒤에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것이 산철쭉이다. 산철쭉은 진달래꽃보다는 크고 화관의 윗부분에 진한 자주 반점이 뚜렷하여 바로 구별된다. 꽃 밑에서 끈끈한 점액물이 나와 있는 점도 진달래와 다르다. 산철쭉은 독성이 강해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개꽃이라 부른다. 영남알프스 주변에서는 진달래꽃이 진 뒤에 연달아서 핀다고 하여 연달래라고 부른다.

반륜산 정상에
서 있는 철쭉은
언제나 필라고 -
딴 나무는 다 팻는데
인제 피고 있나- 〈정선 아리랑〉중에서 한 구절이다.

산철쭉에 비하여 더 분홍빛의 꽃이 피는 것은 철쭉이다. 진달래· 철쭉· 산철쭉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분명한 듯하다.

진달래는 일반적으로 황폐해진 곳· 민둥산· 소나무 숲같이 토양이 척박하고 산성을 띠는 곳에서 잘 자란다. 정남향보다는 약간 비켜난 동남향을 더 좋아하는 것까지 우리 민족을 닮았다. 진달래가 한반도 전역의 산지에 잘 자라는 것은 진달래가 살기에 좋은 땅과 환경 그리고 억척같은 자생력 때문이 아닐까?

뜻있는 사람들은 무궁화 대신 새 국화로 진달래를 제정하자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백두대간 전역에서 자생하는 데다, 영어로 Korean rosebay라 부르기도 하고, 또 민족적으로도 높이 평가되어 온 꽃이란 이유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뭐니 뭐니 해도 한마디로 우리 민족과 많이 닮았다.

조선 후기의 문신 박해조朴海朝는 가장 붉은 달래는 진달래인데 이는 처녀를 상징하고, 분홍달래는 번달래인데 이는 중년 부인을 가리키고 보랏빛 달래는 막달래인데 할머니를 상징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를 빗대어 한국 최고의 논객 중 한 분이 진달래에 대해서 재미있는 이름 풀이를 한 것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진달래 가운데 하얀빛 도는 연한 진달래를 연달래라 하고, 자줏빛 도는 진한 진달래를 난달래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연하고 진한 진달래 빛은 처녀들의 젖꼭지 빛깔을 빗댔다. 젖꼭지가 연하게 붉어 오르는 앳된 사춘기 가시내를 연달래라 속칭하고, 젖꼭지가 진하게 붉어 오르는 성숙한 아가씨를 진달래. 젖꼭지가 난초 빛깔로 검붉어 오르는 젖먹이 여인을 난달래라 했는데, 아직 나이 어린 처녀에게 "난달래" 하면 젖꼭지가 새까만 노처녀나 그 이상의 여자를 뜻하게 되어 놀림이 된다는 것이다.

신선들이 머문다는 낙동정맥 청송 주왕산에서는 5월 초순쯤에 피는 철쭉을 수달래라고 부른다. 주로 물가에서 군락을 이루며 꽃이 피는데, 이 꽃은 옛날 신라 때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한을 품고 죽은 중국 진나라의 후예 주왕周王의 넋이라는 전설이 있다.


신라 향가 수로부인의 헌화가獻花歌에는 척촉躑躅이란 꽃이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척촉을 보통 철쭉으로 번역하고 있으나, 이를 진달래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여인들이 좋아했던 꽃은 철쭉이 아니라 진달래이다. 지금도 진달래를 꺾어 머리에 꽂거나 꽃병에 꽂는 일이 있지만 철쭉은 사람 머리나 꽃병에 꽂지 않는다. 따라서 수로부인이 꺾어 주기를 바랐던 꽃은 철쭉이 아니라 진달래라고 필자도 생각한다.

여기서 신라 향가 헌화가를 한번 들어보고 가자.

헌화가는 34자의 짧은 글이지만 매우 감동적이다. 수로부인은 절벽에 핀 진달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 저렇게 아름다운 꽃은 처음 본다. 누가 저 꽃을 꺾어 줄 사람이 없을까?”

하며 주변 일행들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늘 주변 남자들뿐만 아니고 귀신이나 혼령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은 수로 부인의 행동인 듯했다. 하지만 일행 모두는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으므로 불가능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때 마침 수로부인 일행 곁으로 암소를 끌고 가던 늙은 할아버지가 수로부인의 말을 듣고, 수로 부인의 미모에 감탄하며 한동안 바위 꽃을 바라보더니, 꽃을 갖고 싶다는 수로부인에게 벼랑 끝 꽃을 따 바치고 싶어졌다. 노인은 암소를 끌고 가던 고삐를 놓고 다람쥐같이 절벽으로 기어 올라가 단숨에 꽃을 따 왔다. 그리고 헌화가를 지어서 꽃과 함께 바치고 홀연히 자신이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그 헌화가는 34자의 짧은 글이지만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紫布岩乎过希/執音乎手母牛放敎遣/吾肸不喩慚肸伊賜等/花肸折叱可獻乎理音如

붉은 바위 끝에/ 암소 잡은 손을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정연찬 풀이)

세종 때 양화소록의 저자 강희안姜希顔은 화품을 매기면서 빛이 붉은 홍진달래를 6품, 빛이 하얀 백진달래는 더 높은 5품을 매겼다. 이유는 백진달래가 홍진달래보다 메마르고 각박한 땅에 자라면서도 마치 두견새가 촉나라가 있는 북쪽을 향해 울 듯이 백진달래도 북쪽을 향해 잘 피기에 일편단심의 절조를 가상히 여겨 화격을 높였다고 했다.

조선의 화가 신윤복은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에 봄의 정경을 많이 담았는데, 특히 진달래를 많이 그렸다. 술집 주변에 핀 진달래. 꽃놀이하는 뒷동산에 핀 진달래, 뒤편 바위에도, 꽃놀이 다녀오는 여인의 머리에도 꼭 진달래를 그렸다.

이러하듯 진달래는 백두대간을 타고 오르내리는 우리 민족 꽃이 분명하다.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에서 신라 향가 헌화가 고려 가시리 그리고 아리랑과 진달래꽃으로 이어진다.

들머리에 읊은 김소월의 진달래를 이어령은 이렇게 해석했다.

시 전체는 미래시제에 가까운 가정법이다. 즉, 시의 화자는 현재의 님과 이별한 상태가 아니라, 미래에 님과 이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또 진달래꽃을 가시는 길에 뿌린다는 3연의 의미가 님이 화자에게 이별을 말하고 돌아서는 길에도 손수 진달래꽃을 뿌려놓아 님을 축복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에 따르면 '미래에 님이 화자에게 이별을 말하고 걸음을 옮기면 마치 님이 화자의 피를 밟는 것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내용이며, 마지막 4연 역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쓰여 있지만 이것은 반어법이고 사실 눈물을 많이 흘리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이제 곧 겨울 계엄의 시간은 가고 두견새가 울면 진달래가 필 것이다. 그럼 우리는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의 보물을 분명 다시 볼 것이다.

신종석 소설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