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탐방>

부산 남성 감성 충만 박종철합창단을 소개합니다.

구수경 인본사회연구소 사무처장

우연찮게도 박종철합창단 인터뷰를 하는 날은 2025년을 맞아 합창단의 새 식구를 맞는 날이었다. 살 만큼 살아 머리끝마저 희끗희끗 올라오는 중장년이라도 ‘신입’은 설레고 긴장되나 보다. 여느 신입 오리엔테이션과 마찬가지로 점잖게 리더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새로 오신 분이 무려 여섯 분이다.

신입단원 오리엔테이션

합창단의 명성이 자자하다. ‘박종철’은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이다.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당시 강민창 치안 본부장이 말한 희대의 슬픈 희극장면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부산 서구 아미동에서 태어나 영주동 혜광고등학교 출신의 박종철이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던 날은 아버지 故박정기 님과 어머니 故정차순 여사의 생에서 가장 벅차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부산 촌뜨기 박종철이 묵던 하숙집에 영장도 없이 구둣발로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가던 박종철의 모습을 떠올리면 오금이 저린다. 불법으로 강제 연행하고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하고 급기야 그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전도양양한 젊은 청년의 죽음 앞에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뱉던 말 “탁, 억”. 그의 생명은 1987년 6월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박종철 열사

영화<1987> 중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라고 말하는 장면

살아남은 자들은 한시도 쉬지 않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청년, 노동자, 학생, 시민들의 땀과 피와 생명력에 힘입어 질곡의 산을 넘어 차곡차곡 다져졌다. 교육, 노동, 문화, 성, 종교 등 사회 전반 모든 분야에 ‘민주’를 열망하지 않는 곳이 없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7천 달러에 다가서고 이제 한국의 물질적 풍요는 세계 여느 나라들과도 어깨를 겨누며 심지어는 대한 침략국 일본에도 앞선다.

그렇게 30년의 세월 속에 민주주의를 세운 부산 사람들은 다시 머리를 든다. 부산의 아들 박종철, 민주주의의 화신 박종철. 대대로 시대정신을 알리고 역사를 기려내는 방안을 마련한다. ‘박종철합창단’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못하는 사람, 노래하고 싶은 사람, 박종철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스트레스 많은 사람, 소리치고 싶은 사람, 친구가 필요한 사람, 말이 필요한 사람, 요요 다 붙어라. 엄지손가락을 척 세웠다. 2016년 8월 16일 26명이 줄을 섰다. 직장인, 기업가, 퇴직자, 교수, 목사, 연금술사(연금으로 술을 사는 사람)까지 직업도 다양하다. 단, 단원의 성별은 남자. 그리고 그해 겨울 12월 3일 국민을 속이고 국정농단을 일삼던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기로 하였고, 모여서 노래하였다. 박종철합창단은 거리의 합창단이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기 위한 목소리가 필요한 곳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간다.

합창단은 박종철 열사 추모식에는 당연한 주축이다. 소녀상을 지키는 곳에도, 세월호 참사를 규탄하고 추모하는 데에도 합창단원의 장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87년 6월 항쟁과 79년 10월 부마항쟁 정신을 기념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열사들을 위한 추모의 노래를 부른다. 민주노동조합의 정당한 파업 농성을 지지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고, 효순이 미선이 평화 기금 마련에도, 미얀마 민주주의 투쟁을 지지하고, 낙동강을 지키는 일을 위해서도 합창단은 시민들의 심금을 울린다.

합창단은 점차 음계를 알아 음표를 읽고 소리에서 삑사리가 적어졌다. 이제 “전문노래단”이 되었다. 2019년부터 개최된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에 참여한다. 전국 축전은 민주, 평화, 인권, 희망을 염원하며 노래하는 전국의 합창단들이 모이는 자리이다. 서울의 6.15 시민합창단과 이소선 합창단, 인천 5.3합창단, 대구 평화합창단, 광주 1987합창단, 전북·전주 녹두꽃시민합창단, 경기·안산 4.16합창단, 울산의 더울림합창단 그리고 부산 박종철합창단이다. 전국 축전은 상상만 해도 웅장하고 거룩하기 그지없다. 합창단은 전국 축전뿐 아니라 지역 내 열린 음악제에도 참가하고 2019년부터는 격년으로 합창단의 독자적인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2024년 해운대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에선 관람객 500명이 넘는 쾌거를 자랑한다.

박종철합창단 연주 장면

성악가이며 부산대학교 음악대학에 재직하셨던 이민환 교수님의 지휘 아래 진행된다. 연습으로 선정되는 노래는 기존의 민중가요나 정서 충만 노래와 더불어 특히 지휘자께서 직접 박종철합창단의 정신에 맞춤형 작품들을 자작하여 선보인다. 이미 제목만으로도 시대의 고통과 아픔이 전해져오는 ‘인간답게 살고 싶어라’, ‘딸의 편지’, ‘꽃잎 편지’, ‘부르지 못한 노래‘, ‘불타는 도화선이 되어’ 등을 노래하며 희망을 전한다. 합창단은 거의 매주 연습이 있고 공연을 앞두고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또는 파트별로 따로 연습 시간을 갖는다. 직장이나 개인 사업이 있고 연령도 적지 않아 다른 사회적 관계도 만만찮을 터이다. 그런데도 연습 시간을 내고 40명의 단원들이 서로 간의 화음을 맞추고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은 확실하다.

박종철합창단 연습 장면

지난 9년 동안 단원들의 일정을 맞추고 외부 교섭을 하는 매니저 선생님의 숨은 노고는 입이 열 개라도 다 말할 수 없다. 김미경 선생님이시다. 본디 미술을 전공하고 공예 작품을 창작하는 예술가시라 그런지 말없이 표정에서 묻어나는 예술적 향기가 진하다.

김미경 매니저

그간 1기 백영제, 2기 김정곤, 3기 윤지형 단장님을 거쳐 푸근하신 4기 장길만 단장님을 뵈니 박종철합창단이 믿음직하다. 연습 장소는 단원이신 안하원 목사님의 부산진구 가야동 소재 교회당이다. 대로변이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부산대학교 음대 대학원생이 피아노 반주를 전담하고 있으니 반주가 화려하다. 단원으로 입단하게 되면 연속해서 4회 이상은 연습에 참여해야 준단원의 자격이 주어지고 여건이 여의치 않으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물론 휴식 이후에도 다시 참여할 수 있다. 연습 참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장길만 단장

합창단은 잘 지어진 집처럼 구조가 단단하고 편안하니 노래를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하는 이의 눈빛을 주고받고 나의 목소리를 조절하고 서로의 표정을 나누며 화음이 깃든 노래를 완성하는 묘미는 새로운 환희의 세계다. 박종철합창단에 가입하게 되면 실컷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의롭고 평등한 민주주의를 향한 평소의 열정을 노래할 수 있다. “젊음은 흘러가고 우리 점점 늙어간다 해도 우리 가슴 속 깊이 서려 있는 노래 잊지 말게” 제3회 박종철합창단 정기연주회의 앵콜곡 ‘당부’의 가사처럼 그들은 단원이자 동지였다. 박종철과 함께, 지금 편안하면서 활기찬 무엇인가가 필요하신 분은 박종철합창단의 집을 방문하시라.

구수경 처장

<인본사회연구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