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66) - 차산에서 살다시피하는 요즘

오늘 오랜만에 루나카페 가 백운산 풍광 감삼
움막 위서 엄나무 순, 차밭서 두릅 순 뜯어 옴
아래채 기와지붕 다시 이는 등 여러 일 많았음

조해훈1 승인 2021.04.04 22:37 | 최종 수정 2021.04.06 17:11 의견 0

4월 4일 오늘 오전 9시 조금 못되어 오랜만에 가탄리 백혜마을의 루나카페에 들렀다. 어제 종일 비가 내린 뒤라 카페에서 바라보는 광양 백운산은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네팔의 포카라에서 산으로 올라가 바라본 안나푸르나봉의 거대한 풍광 못잖았다. 구름이 백운산과 주위의 산들을 에워싼 가운데 백운산 정상과 허리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어제 비 내려 루나카페서 바라 보는 운무 낀 광양 백운산 풍광이 아름답다. 사진=조해훈
어제 비 내려 루나카페서 바라 보는 운무 낀 광양 백운산 풍광이 아름답다. 사진=조해훈

비가 내린 덕분에 화개동천에 물이 제법 많이 흘러 화개보건소가 있는 ‘땅끝번지’ 인근은 S자로 물길이 희뿜하게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어제 비 탓에 올해 유난히 화려하던 벚꽃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집으로 와 밥을 먹고 산으로 올라갔다.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움막 뒤쪽의 엄나무의 순이 하루 만에 쑤욱 올라와 있었다. 대나무를 하나 베어 움막 안에 밀어 넣었다. 요즘 대나무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 움막의 벽체를 만드는 중이었다. 대나무로 엉성하게 움막의 출입문도 만들었다.

어제 비 내려 벚꽃이 떨어지긴 전 화개십리벚꽃길 모습. 사진=조해훈
어제 비 내려 벚꽃이 떨어지긴 전 화개십리벚꽃길 모습. 사진=조해훈

엄나무 순 가운데 나무의 맨 위쪽 부분만 손으로 떼었다. 오른쪽 정강이뼈 엎 살점 부분이 따끔거려 옷을 걷어보니 낫으로 발에 걸리는 차나무를 쳐내다 낫에 스친 모양이었다. 산에만 올라오면 하루라도 몸에 상처가 생기지 않는 날이 없었다. 온 몸에 흉터투성이다. 엄나무 순을 따다보니 몸 앞쪽에 걸친 주머니가 크지 않아 금방 차버렸다. 게다가 빗물에 다 젖었다.

메인 차밭으로 올라갔다. 차밭 입구에 고사리가 군데군데 새로 올라와 있었다. 고사리를 몇 개 뜯으며 올라가니 두릅나무의 순이 또 올라와 있었다. 엊그제도 두릅나무의 순을 제법 땄다. 차밭을 둘러본 후 고사리를 더 따도 넣을 곳이 없어 그냥 내려왔다. 도재명차 뒤로 내려오는데 가파른 시멘트길이라 미끄러워 조심했는데,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필자가 차산 아래에 있는 움막의 벽체를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드는 도중에 엉성하게 출입문을 달았다.
필자가 차산 아래에 있는 움막의 벽체를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드는 도중에 엉성하게 출입문을 달았다. 사진=조해훈

집으로 와 젖은 속옷을 갈아입었다. 바지도 빗물에 젖었다. 추워 물을 끓여 한 잔 마시면서 가만히 생각하니 최근에 일이 많았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날씨가 포근해 차산의 식물들이 빨리 올라오고 피어났다. 지난 달 3월 19일에 첫 고사리를 꺾었다. 그 이후 2, 3일마다 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꺾고 낫으로 차밭을 정리했다. 이제는 숫돌에 낫을 잘 간다. 산에 올라갈 때마다 잠깐씩만 낫을 갈아도 잘 든다. 낫으로 차나무 옆으로 자라 차밭에 난 길을 막는 것들 잘라내고, 해마다 잘라내도 계속 올라오는 가시들도 자른다. 겨울에 자른 억새가 새로 잎을 올리는 것들도 자르고, 잡목 올라오는 것들도 쳐낸다. 기존의 제법 큰 잡목들 가지도 낫으로 잘라낸다. 올해는 유난히 갈근(칡)넝쿨이 많아 그걸 뿌리까지 잘라내느라 애를 먹는다. 멧돼지들이 칡뿌리를 캐 먹느라 차산 곳곳에 구덩이를 파놓았다.

그러다보니 양 손목과 팔목이 아파 늘 끙끙 앓는다. 파스를 붙이기도 하고 목욕탕에 가 온탕에 오래 있어보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며칠 쉬면 좀 나은데 차산에 일이 많으니 그럴 수도 없다.

차산에 멧돼지가 칡뿌리를 캐먹기 위해 판 구덩이. 사진=조해훈
차산에 멧돼지가 칡뿌리를 캐먹기 위해 판 구덩이. 사진=조해훈

얼마 전 대학 시절 문학회 친구들이 1박2일로 다녀갔다. 다행히 시기가 조금 맞아 친구들은 산에 올라가 머위를 채취하고 고사리도 좀 땄다.

화재로 파손된 아래채의 기와지붕을 엊그제 새로 올렸다. 구례에서 기와를 이는 전문가 세 명 한 팀이 오시어 고생을 하셨다. 그동안 지붕이 파손돼 ‘갑바’로 덮어놓아 주민들에게 많이 민망했었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산에서 내려오는데 집 앞쪽 사거리 모퉁이에 앉아 계시던 용원민박 할머니께서 “지붕 새로 올려놓으니 보기 좋소.”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지붕 때문에 동네 분들께 미안했는데 이제 마음이 좀 놓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요. 불이 산으로 번졌다면 어쩔 뻔 했소.”라고 다시 할머니께서 말씀하시자, 필자는 “그러게 말입니다. 천만다행이지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 마당에는 아직 화재로 인해 치우지 못한 여러 잔해물과 공사를 하던 도구 및 지붕을 일 때 쓰고 남은 황토무더기가 그대로 어지러이 늘려 있다.

며칠 전에는 낫으로 단단한 잡목 가지를 힘껏 내리치다 빗맞아 오른쪽 무릎을 찍었다. 너무 아파 구례병원 정형외과에 가 진료를 받고 파상풍 및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타 복용했다. 쉴 수 없어 매일 산에 올라가 살다시피 하니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계속 돼 아직 약간 절룩인다. 사흘 전에는 또 왼쪽 손가락 두 개를 낫으로 찍어 피범벅이 됐다.

공사중인 아래채 모습. 사진=조해훈
공사중인 아래채 모습. 사진=조해훈

엊그제는 1999년 마지막 동인지를 내고 해체된 ‘시와 인간’ 동인의 선배 시인인 이창희 형님이 부산에서 오시어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 후 차산에 함께 올라가 고사리를 조금 뜯었다. 형님은 울산에서 목사님으로 사목 일을 오래하시다가 은퇴하시고 현재 일광에서 생활하고 계시는데, 해마다 서너 차례 화개골을 방문하신다. 최근에 최영철 시인과 조명숙 작가가 서울에서 손주를 봐주다 일광에 내려온 덕에 종종 만난다고 하셨다. 정일근 시인이 마산으로 이주했다는 소식과 박병출 시인 근황도 들려주셨다.

조금 전에 우산을 쓰고 산책 삼아 목압다리로 가보니 먹구름에 달이 가려 깜깜했다.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만 요란스러웠다.

오늘 오전에 대구에 계시는 조순덕(72) 막내고모께서 전화를 하셨다. 전주에 계시는 고종사촌인 배정지(83) 형님 부부께서 다음 주쯤 필자의 집에 오시기로 되어 있다. 그때 고모님께서 고향인 대구 달성 논공에 계시는 숙모님(74)과 함께 겸사겸사 오신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오시면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렸다.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아침 6시쯤 또 산에 올라가 여러 일을 해야 한다.

<역사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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