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 17일 서울에서 지인 가족들이 구례 화엄사 앞 모 펜션에 1박2일로 놀러왔다가 일부러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목압서사(경남 하동군 화개면 목압마을)에 들렀다.
쌍계사 앞 식당에 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필자의 차밭에 올랐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인 이예희 양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땄다. 차산이 가팔라 예희는 아빠의 도움을 받았지만 얼마나 잘 따는지, 필자는 “고사리 따는 선수 같다. 내년 봄에도 고사리 따러 오너라.”라고 말했다. 예희는 찻잎도 잘 땄다.
그제인 16일에는 진주에 있는 필자의 벗이 와 함께 차산에 올라가 찻잎을 땄다. 필자는 찻잎을 따면서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억새와 가시 등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제거한다. 엊그제 낫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아픈 팔목이지만 손으로 억새 등을 보이는 대로 뽑았다. 연할 때 뽑아야 나중에 고생을 적게 한다.
지난 14일에도 친구 두 명이 녹차 따는 걸 도와주러 와 역시 함께 차산에 올라가 찻잎을 땄다. 그날 필자는 찻잎을 따지 않고 낫으로 차산에 올라오는 잡초 등을 제거하는 등 차밭 관리를 했다. 1년 내내 틈만 나면 차산에 올라가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야산인 탓에 엉망이 되어 버린다. 지난 9일에도 부산에서 친구 부부가 1박2일로 와 찻잎을 따주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벗들이 먼 화개골까지 일부러 찾아와 찻잎을 따준다.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기온이 빨리 올라 벚꽃을 포함해 꽃들이 빨리 피었다. 녹차도 필자는 지난해에 4월19일에 처음 땄다. 그런데 올해는 4월 9일에 첫 찻잎을 땄다.
필자의 차밭은 산에 위치해 섬진강변 상덕마을 등에 비해 찻잎이 늦게 올라온다. 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겨울 작업복을 입고 생활한다.
지난겨울에 차밭 사이에 다닐 수 있는 좁은 소로를 좀 넓혀놨는데, 그 사이에 차나무 가지가 옆으로 자라 길이 좁혀졌다. 차를 딸 때 다니기 수월하도록 낫으로 또 가지를 좀 쳐주어 길을 넓힌다. 그러면서 억새나 가시 등이 돋아나면 낫이든 손으로 잘라준다. 필자는 찻잎은 따지 못해도 차반 관리는 해준다. 그러면 ‘이제 완전히 차산의 일에 중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산에서 일을 하면 잡념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진다. 하루 종일 낫으로 차산에서 일을 해도 차밭 전체를 다 돌지 못한다. 차밭이 그다지 큰 것은 아니지만 워낙 야산이다 보니 잡목을 포함해 온갖 것들이 다 올라오기 때문이다. 허리를 펴고 맞은편 황장산을 바라보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다. 찻잎 따는 시기가 아니면 늘 그렇지만 차산에는 필자 혼자뿐이다.
1년 내내 차산에서 일을 하니 양팔목이 아프고 몸을 다쳐 병원에 다니기도 한다. 다리에는 다쳐 나은 흉터가 많다. 필자는 당뇨병 탓에 산에서 벌레에 물리면 그 자리에 물집이 잡혀 낫는데 시일이 오래 걸린다. 매일 저녁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심하면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 받는다.
실제 차는 많이 만들지 못한다. 찻잎 따는 양이 적기 때문이다. 티백을 만들거나 밭차는 냉해가 심한 편인데, 필자의 차밭은 올해도 냉해를 입지 않았다. 아마 아래 차밭에는 큰 매실 나무 10여 그루가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인지도 모른다. 위쪽 차밭은 햇볕이 잘 들어 차나무가 건강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해도 차밭 가꾸는 것이 목적인지, 찻잎 따는 것이 목적인지 구분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5년째 차밭을 가꾸어서인지 제법 차밭 모양이 난다. 물론 위쪽 부분은 야생차밭이고 너무 가팔라 관리 하는데 더 힘이 든다.
이번에 찻잎을 따던 한 지인은 “차밭을 보니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느껴진다”라는 말을 했다. 아직 일이 많이 남았다. 잘라낸 잡목들을 땔감으로 쓸 수 있도록 톱으로 잘게 잘라야 하는데 손목이 아파 아직 시도도 못하고 있다. 차밭 곳곳에 잘라낸 잡목들이 누어있어 볼썽사납다.
지난 10일에는 친구 부부와 딴 햇차로 올해 첫 차를 만들었다. 양은 적었지만 조상님들께 헌다례를 올렸다. 지난해에도 마찬가지로 조상님들께 첫 햇차를 올리는 예를 갖추었다. 그 전날인 9일에 올해 첫 찻잎을 딸 때 차밭 입구에서 “올해도 좋은 찻잎을 돋아나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라며, 산신과 차나무를 관장하는 신께 고(告)를 하고 찻잎을 수확했다.
오늘이 18일이지만 낮과 밤의 기온차가 너무 커 아직 찻잎에 본격적으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침에 필자의 집 뒤 김해 김씨 문중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용운민박 할머니께 “찻잎 많이 올라왔습니까?”라고 여쭈니, “날이 추워 아직 제대로 안 올라와”라는 답을 하셨다.
오늘도 저녁에 부산에서 벗 3명이 1박2일로 찻잎을 따준다며 온다는 연락이 왔다. 차밭이 평지가 아니고 가팔라서 찻잎 따는 게 쉽지 않다. 친구의 부인들께는 “찻잎 따는 게 쉽지 않으니 차밭에 올라온 고사리를 꺾으십시오”라고 말한다. 차밭에 고사리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손맛(?)을 느낄 만큼은 자라기 때문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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