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62)- 불에 탄 아래채 지붕에 천막을 덮고
비 소식에 아래채 지붕 위 천막 2장 덮어
지난 16일 돌풍에 아궁이 불씨 튀어 화재
저녁에 잔불로 다시 발생, 하루 두 번 불
조해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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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1 13:00 | 최종 수정 2021.03.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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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아래채 지붕에 올라가 천막(흔히 말하는 ‘갑바’)을 덮었다. 오늘 낮부터 비가 온다고 예보돼 어제 오후에 화개면소재지에 있는 경남철물점에서 갑바와 줄 한 묶음을 샀다. 기와지붕이어서 생각보다 미끄러웠다. 아래채 옥상을 통해 지붕에 올라가 반대쪽 끝부분에 갑바를 덮었다. 덮은 후 깨진 기와조각을 겨우 주워 갑바가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줄 양쪽에 묶어 매달았다.
내려와 아래채 뒤쪽으로 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보니 구멍이 나 방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큰 비닐봉투를 찾아 막았는데 완전히 덮이지 않아 다시 비닐포대를 가져와 비닐 위에 덧댔다. 그건 그렇고 지붕 뒤쪽으로 기와를 깬 면적이 넓은 데다 서까래가 갑바에 다 가려지지 않았다. 철물점에 가 갑바를 하나 더 구입해 와서 이들 부위에 덮었다. 그런 다음 줄을 잘라 이쪽 끝과 저쪽 끝에 기와조각을 묶어 갑바가 역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여러 개를 매달았다.
아래채 지붕이 이렇게 파손이 된 것은 지난 16일 오후 2시 조금 넘어 집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날 기온이 내려가 ‘할매’가 추울 것 같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할매는 늙은 들고양이로 항상 아궁이 안으로 들어가 그것도 고래에서 잠을 잔다. 전날도 좀 추웠는데 이날 아침에 보니 입에 침을 질질 흘리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지 자신의 지정 의자에 힘없이 누워 있어 마음이 애처로웠다. 그리하여 불을 조금 지펴주고 아궁이를 잘 정리한 후 면소재지에 있는 화개치과에 이를 뽑으러 갔다. 막 도착하니 집에 불이 났다는 전화가 왔다. 집에서 출발한지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급하게 집에 도착하니 소방대원들이 막 도착하여 불을 끄기 시작했다. 이날따라 보기 드물게 바람이 산 쪽에서 세차게 불었다. 하필이면 필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아궁이의 불씨가 바람에 바깥으로 날려나와 옮겨 붙었던 모양이다.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산불감시원들과 의용소방대원들이 도왔다. 마을 주민들도 모여들어 걱정스런 모습으로 구경하였다.
한 분이 아래채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걷어 아래로 던졌다. 서까래에 붙은 불은 잡았지만 더 이상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창고 쪽도 다 탔다. 녹차 덖는 솥과 녹차 솎는 기계 등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마당으로 옮겼다.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화개파출소에서 나온 경찰들이 화재 원인에 대해 조사를 했다. 하동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들도 마찬가지로 또 조사를 했다. 소방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있는 그대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옛 사람들은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또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도 했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좋은 일보다 걱정거리와 좋지 않은 일이 많은 게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본채에도 불길이 번졌지만 창고 쪽에서 보면 벽돌이어서 불이 다행히도 창문틀을 녹이고 창유리를 깨는 등 외부에만 피해를 입히고 집 안으로 옮겨 붙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쨌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마무리를 하고 소방대원들 등 모든 사람이 철수했다.
집안에 매캐한 냄새가 꽉 차 창문을 열었다. 환기를 시킬 동안 저녁이라도 먹을 겸 식당에 와 앉으니 또 “불이 났다”는 마을 사람의 전화가 왔다. ‘이게 뭔 조화인가?’ 싶었다. ‘잠시 집을 비우면 불이 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니 막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창고 쪽에 불을 잡고 있었다.
하필이면 식당에 잠시 간 사이에 또 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고에 불씨가 남아있었던지 불이 났던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태어나 환갑이 지나도록 살아도 집에 불이 나기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났으니 말이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거의 정리를 마쳤다. 면장님은 그날 세 번이나 다녀가셨다. 파출소장님도 오시어 격려를 해주셨다. 집 옆의 RG펜션 사장님이 가장 많이 도와주셨다. 이장님도 끝까지 도와주셨다.
그래서 비록 화재는 있었지만 마을 주민들과 여러 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집수리하고 손보는 것은 천천히 할 계획이다. 돈만 많으면 일꾼들 불러 수일 내로 할 수 있겠지만 그럴 형편도 아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녹차 덖는 솥은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한 달여 있으면 녹차 잎을 따 마실 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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