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64)- 2021년 올해 첫 고사리 채취하다

지난해 3월 19일에 첫 고사리 한 두 개만 올라와
올해 같은 날은 날씨 포근해 지난해 보다 양 많아
하동십리벚꽃길도 벌써 벚꽃 1/3이나 피어 있어

조해훈1 승인 2021.03.19 22:09 | 최종 수정 2021.03.22 14:10 의견 0

3월 19일 점심으로 프라이팬에 김치볶음밥을 해먹고 차산에 올라갔다. 지난해인 2020년 3월 19일 첫 고사리가 올라온 날이었다. 지난해는 고사리가 한 두 개만 올라왔다. 올해는 날씨가 지난해보다 포근해 더 많이 올라와 있지는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오늘 낮에 화개십리벚꽃길의 벚꽃이 벌써 1/3가량 피어있을 만큼 기온이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차밭 위쪽으로 갔다. 지난 해 첫 고사리 올라온 자리쯤에 오늘도 한 개가 연초록색 고사리대가 보였다. 기뻤다. 휴대전화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점심 먹은 것 소화시킬 겸 맨손으로 그냥 올라왔다. 차밭 안쪽으로 걸어가니 고사리가 하나씩 보였다. 역시 날이 따뜻하니 지난해보다 빨리 고사리가 올라온 것이다.

필자의 차산에 올라온 올해 첫 고사리.
필자의 차산에 올라온 올해 첫 고사리.

남의 산과 경계지점까지 갔다. 다행히 잘라놓은 가시덤불 자리에 더 이상 다른 가시가 자라나지 않았다. 차밭 약간 위쪽 비탈이 심한 부분으로 되돌아 나오면서 고사리를 꺾었다. 고사리가 드문드문 올라오는 곳이어서 보이는 대로 채취하지 않으면 금방 피어버리기 때문이다. 모노레일 안쪽 고사리밭(?) 쪽으로 오니 고사리가 제법 많다. 따지 않으면 피어버릴 것 같은 것만 골라 왼손으로 따 오른 손에 모았다.

이 정도면 한 끼 나물은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내려와 양은 별로 안 되지만 바로 삶았다. 옥상에 그물망을 펴고 말릴 만큼 되지 않아 큰 채반에 담아 두었다. 햇볕이 좋았다.

오후 3시 반이 넘었다. 다른 일을 하기엔 시간이 어중간했다. 차를 한 잔 마시며 생각하다 내일 비가 온다고 하니 좀 따야 할 것 같았다. 대학 친구들인 황근희 선생 부부와 유인식 교감 부부, 이정희 선생이 내일 오기로 되어 있어 첫 고사리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날씨만 좋으면 함께 차산에 올라가 고사를 따면 될 터이다, 하지만 내일 100% 비가 내린다고 하니 내가 미리 따놓아야만 한다.

한 웅큼 따온 올해 첫 고사리.
한 움큼 따온 올해 첫 고사리.

아까 입었던 옷이 다 젖어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차산으로 올라갔다. 1년 내내 틈만 나면 산에 올라와 톱으로 잡목을 베고 낫으로 차나무 전지를 한 탓에 차산이 제법 깔끔했다. 누렇게 쇤 지난해 고사리가 차나무를 덮은 것도 모두 걷어냈으니 차나무 색이 좋았다.

일부러 온 차산을 누비며 키 큰 고사리만 채취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내일 토요일 하루만 비가 오니 그 다음날인 일요일에 친구들이 첫 고사리 꺾는 손맛을 느끼게 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친구들이 1박2일로 오니 말이다.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산에서 내려왔다. 비구름이 끼는 데다 더 이상 산에 있을 수가 없었다. 날파리들이 얼굴과 귀 등에 달려들어서 귀찮게 했다. 산에 올라갈 때 윤도현 어르신이 고추밭에 고랑을 만들고 계셨는데 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할머니가 넘어져 오른 손목에 금이 가 함께 일을 못하시어 어르신이 혼자 힘들게 하신 것이다. 참 부지런하신 노부부다.

담장 밖 개울 쪽으로 활짝 피어 있는 필자의 옆집 벚나무.
담장 밖 개울 쪽으로 활짝 피어 있는 필자의 옆집 벚나무.

내 옆집 담장 밖 개울 쪽으로 벚나무가 활짝 피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관아수제차 사모님은 호미로 집 앞 텃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내 집 화단의 수선화는 내일 비가 오면 모래쯤 꽃을 피울 것 같다. 어제 보니 꽃망울이 아래쪽에 있더니 오늘 위쪽으로 올라와 있다.

찻잎 딸 때 가슴에 걸치는 베주머니에 고사리가 반쯤 채워졌다. 제법 불룩하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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