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랜만에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회장 백경동) 차회를 갖기로 했다. 하동읍에서 화개면 화개장터 오기 전 오른편 도로가에 있는 ‘부춘다원’(사장 여봉호)에서 모이기로 했다. 코로나 탓에 그동안 차회가 소원했다.
이날 오후 5시에 부춘다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필자는 30분가량 늦게 도착했다. 차를 덖는 화덕이 지난 화재 때 일실돼 새로 설치하는 문제와 화개떡방앗간에서 차회에 떡이라도 한 되 해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날 낮 점심 무렵에 방앗간에 들러 “혹시 지금 떡 한 되 주문하면 오후 5시에 찾을 수 있습니까?” 물으니, 사장님이 “하루 전에 주문해야 된다”고 했다.
차산에 올라갔다가 오후 4시20분쯤 내려왔는데, 갑자기 화덕 문제로 왔다 갔다 하느라 좀 바빴다. 어쨌든 부춘다원에 가니 백경동 회장님이 먼저 와 계셨다. 서울에서 차 만들러 오셨다는 분이 팽주(烹主)를 하고 계셨다. 그 분은 20여 년째 화개에 오시어 차를 만드신다고 하셨다.
좀 있으니 악양에 계시는 신판곤 대표님이 오셨다. 이어 다원 사장님이신 여봉호 명장님이 오셨다. “차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고 하셨다. 여 명장님도 같은 차회 회원이다. 차회 회원 6명 중 4명이 모인 것이다. 다른 두 분은 멀리 계신 데다 사정이 있어 참석이 어려웠다.
여 명장님이 만드신 여러 가지 햇차를 맛보았다. 그는 “주문 받은 게 많아 벌써 몇 백통을 만들었다“고 하셨다. 필자는 오늘 밤에 처음 차를 덖을 계획이었다.
여 명장님은 “차 마다 맛이 다 다르다”면서 “그래서 누가 만든 차가 가장 맛있네, 라고 말 하는 것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필자도 그 말에 동감을 한다.
차의 맛을 좌우하는 데는 수많은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산차(山茶)인가, 밭차인가 △차밭을 손으로 가꾸는가, 기계로 가꾸는가 △같은 차밭에서 채취한 잎인가, 여러 밭에서 채취한 잎인가 △찻잎을 채취한 날의 기후, 즉 습도는 어떠했는가 △녹차솥으로 덖었는가, 살청기로 덖었는가 △온도 조절을 잘 하였는가 △덖은 후 손으로 비볐는가, 유념기로 비볐는가 △채취한 날 덖었는가, 하루 뒤에 덖었는가 △마지막 단계인 맛내기를 하였는가 △건조는 어떠한 방법으로 하였는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상황에 따라 차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아는 필자의 차회 회원들은 어느 특정 사람이 만든 차가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 명장님 같은 경우도 “내 차가 가장 맛있다‘라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여 명장님은 차 명장으로 인정을 받으신 분이다. 그리고 다양한 차를 맛있게 잘 만들기로 소문이 나 있다.
여 명장님은 두 번 덖은 차, 네 번 덖은 차, 맛내기를 하지 않은 차 등 여러 차를 계속 우려내시며 “맛을 다양하게 보시라”고 하셨다. 그러다 손님들이 오시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백 회장님이 팽주를 했다. 백 회장님이 가져오신 떡을 다식으로 먹었다. 쑥이 떡 중간에 들어가 맛이 특이하면서 좋았다.
신 대표님은 “정원의 장미꽃이 피면 한 번 놀러 오시라”고 하셨다. 그러자 백 회장님이 “그러면 다음 차회를 장미도 볼 겸 신 대표님 댁에서 하는 것도 좋겠다”라고 하셨다. 신 대표님은 지난 해 정원에 유럽종 장미를 수 백 포기 심으신 것이다. 필자는 그런 종류의 장미를 다른 곳에서 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안다.
신 대표님은 얼마 전에 방글라데시에 사업차 다녀오셨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시는데, 그곳에 만든 제품을 방글라데시에 납품하게 됐다고 하셨다. 그는 차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용인에서 일부러 차를 몰고 오신다.
여 명장님의 사모님이 잠시 오시어 인사를 했다. 사모님은 필자와 갑장인 부춘마을의 토담펜션을 운영하는 공상균 사장의 여동생이다. 공 사장은 매실 등 여러 종류의 농사를 짓기도 하며 ‘달빛강정’을 만들어 판매를 하는 데 유명하다.
필자는 화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데다 차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6시 40분쯤 먼저 자리를 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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