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61)- 차산에서 일하며 매화를 보는 즐거움
낫으로 잡목 치고 쇤 고사리 등 걷어내
양 팔 아파 파스 붙이고 물리치료 받아
매화나무 한 그루, 필자 위무하러 피어
조해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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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1 13:57 | 최종 수정 2021.02.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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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이 날 때마다 차산에 올라가 일을 한다. 양 팔이 아파 파스를 붙이다가 그래도 너무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가 물리치료를 받곤 또 차산에 오른다. 어느덧 봄이 와 있다. 잡목을 자르다보면 얼마 전보다 톱이 잘 먹히지 않는다. 나무에 이미 물이 많이 올라와 있다.
팔이 너무 아파 톱을 사용하지 않고 낫으로 작은 잡목을 쳐내고 억새와 가시, 녹차나무를 덮고 있는 쇤 고사리를 걷어낸다. 몸에선 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래 차밭의 오래된 매화나무 15, 16 그루가 꽃을 조금씩 피우는 중이다.
산에 연장을 보관할 곳도, 쉴 공간도 없어 늘 빈 몸으로 올라오다보니 물을 마시지 못해 입에선 단내가 난다. “조금 평평한 저곳에 연장을 보관하고 의자 하나 놓을 공간을 나무로 엮어야지” 생각만 하곤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저 아래 대밭에서 대나무를 베어 메고 올라와 던져만 놓아 발에 걸리기만 한다.
그래도 이번 겨울에 일을 많이 했다. 정리를 해놓은 차나무들이 진한 녹색을 띠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차밭들은 반쯤 냉해를 입어 색깔이 흉한 편이다. 물론 그런 차밭들은 기계로 농사를 짓는 데다 티백을 만든다고 차나무를 너무 바닥까지 자르다보니 그렇다. 또한 평지밭에 심은 차나무는 비탈 산지보다 배수도 잘 안 되는 등 생육 조건이 불리하다. 여하튼 이번 봄이면 다섯 번째 차농사를 짓지만 필자의 차밭은 높은 산에 위치해 있어 한 번도 냉해를 입지 않았다.
앞 주인이 잡목도 베어내지 않은 야산에 차나무만 심어놓고 방치한 차밭이어서 필자가 해마다 정리를 해도 아직 깔끔하지 않다. 10년 정도는 관리를 해야 제대로 된 차밭 모양을 보여줄 것 같다.
문제는 고생스럽게 차밭을 관리하여도 혼자 찻잎을 따다보니 차 생산량이 적다. 그렇다고 차밭을 묵힐 수는 없어 해마다 이렇게 몸을 혹사시킨다. 차산 한 가운데 큰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있다. 저 아래 계곡 변 도로에서도 보일 정도로 나무가 크다. 일할 게 많아 금방 몇 시간이 지나간다.
차밭을 직접 가꾸지 않고 농협 등에서 찻잎을 구입하여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다. 차밭을 가꾸더라도 대부분 일꾼을 사 기계로 잘라버린다. 차나무는 기계를 싫어한다. 무작위로 사정보지 않고 잘라내기 때문이다. 반면 필자는 차나무를 먼저 어루만지며 낫으로 최소한 어쩔 수 없는 부분만 살살 잘라준다. 예쁜 아이 대하듯 한다. 나무도 생물이고 이것이 만들어내는 잎과 영양소가 사람 입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나무가 받을 스트레스를 줄이자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필자의 고집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너무 무식하게 차농사를 짓지 말라”고 조언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모든 차가 똑 같은 조건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차산에서 일을 하면 아주 좋은 점이 있다. 일에 몰두하다보면 아무런 잡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 차나무에는 고사리가 완전히 다 덮고 있네’라고 생각하며, 차나무 위를 걷어내고 나면 차나무 사이에 고사리의 아랫부분이 누렇게 남아 나무를 뒤져 하나도 남김없이 깔끔하게 자른다. 하는 일에 몰입하니 다른 상념이 들 겨를이 없는 것이다.
낫과 톱을 적당한 곳에 그대로 두고 어둑해져서야 산에서 내려온다. 잘라놓은 참나무 한 토막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향한다. 무겁다. 표고버섯 균을 참나무에 심어야하기 때문이다. 아마 설 쇠고 나면 산림조합에서 버섯 종균 나왔다고 가져가라 연학이 올 것이다. 지난해 종균 3판을 신청해 한 판은 다른 분께 드리고, 두 판을 심었다. 두 판인데도 일 년 내내 따 먹었다. 올해는 여유 있게 다섯 판을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차밭에 참나무와 두릅나무, 매화나무만 남겨두고 다른 잡목은 다 베어낸다. 참나무도 올해와 내년정도까지만 자르면 없어 아마 그 다음해부터는 버섯 재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난감하다. 그렇다고 남의 땅에서 참나무를 벨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인가? 오전까지만 해도 매화를 몇 개만 피운 나무 한 그루가 꽃을 거의 활짝 피웠다. 해마다 매화 보는 즐거움으로 인근 고사리밭 주인아저씨 내외분이 “매화나무 다 베어라”라고 필자를 볼 때마다 말하여도 견디고 있는 것이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 매실이 열렸다가 알이 굵어지지도 않고 누렇게 익다 저절로 다 떨어진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이 골짜기에 들어와 사는 큰 재미 가운데 하나가 해마다 혼자 산에서 매화 감상하는 즐거움이다. 매화가 다 피면 일은 하지 않고 매화나무 밑에 앉아 철없는 아이마냥 그냥 논다.
오늘 핀 이 매화나무는 성질이 아주 급한 녀석인가? 아니다. 혼자 산짐승처럼 일하느라 왔다 갔다 하는 필자가 애처로워 위무하려고 먼저 피어난 게 틀림없다. 어쨌든 고맙다. 날이 껌껌해지고 있어 얼른 내려가야 해 내일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참나무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산을 내려온다. 가파른 오솔길에 또 미끄러졌다. 집 근처까지 내려오려면 몇 번 미끄러지는 건 기본이다.
집으로 오면서 가까우면 밤에라도 올라가 물릴 정도로 매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부산에 살 때 반송 실로암공원묘지 아래에 있던 필자의 텃밭에 매화나무만 가득 심지 않았던가. 봄이면 바람에 한들거리는 매화가 나를 환하게 반긴다는 착각을 하지 않았던가.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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