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살고 있는 지리산도 코로나19의 사태를 피해갈 수 없다. 주민들 중 확진자는 없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각종 모임 등을 열기 힘들었다. 차인(茶人)들이 차를 마시며 모임을 갖는 차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고 국민들의 일상적 생활이 다소 안정을 찾는 가운데 7월 26일(일요일) 오후 4시에 하동군 악양면의 회남재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신판곤 선생(67)의 집에서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통칭 ‘차사모’)의 차회가 열렸다. 악양이 고향인 신 선생은 20년 전에 사두었던 산에 최근 집을 지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 차회는 그의 집 신축에 따른 일종의 ‘지신밟기’(?)의 의미도 있고, 필자가 최근 발간한 시집 『내가 낸 산길』(도서출판 역락)의 출판기념회의 성격도 있었다.
필자는 이날도 찻자리를 마련해 손님들에게 차를 내는 팽주(烹主) 역할을 했다. 이날 집에서 다구 등 찻자리 도구를 싣고 갈 차편이 없어 고민하는데 차회의 백경동 회장의 배려로 김도연 악단장이 주도하는 ‘야니악단’의 차를 얻어 타고 차회장소로 향했다. 1·2층 구조로 되어 있는 집이었다. 2층은 생활공간으로, 1층이 차회 장소였다. 이날은 광주와 김해 등 여러 지역의 차인들이 많이 참석했고, 야니악단 소속 단원도 5명이나 연주를 목적으로 와주었다.
백 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차회가 시작되었다. 백 회장이 필자의 시집 10여 권을 구입해 가지고 와 필자가 참석 회원들에게 서명을 해 주었다. 필자가 저자본으로 받은 시집은 이미 다 소진된 상태였다. 예약 없이 참석하신 차인들에게는 모두 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필자는 시집 발간에 따른 인사말을 했다.
이어 발효차의 명장인 부춘다원의 여봉호 선생이 색소폰으로 몇 곡의 음악을 연주했다. 연주 후 필자의 옆으로 와 발효차를 마시곤 “맛이 있다”라고 했다. 물론 발효차 명장인 그가 필자의 발효차 맛이 성에 찼을까마는 그렇게 덕담을 해주었다.
다음은 참석자들이 필자의 시를 낭송하는 순서가 마련됐다. 시를 낭송할 때마다 김 악단장이 거기에 맞는 잔잔한 음악을 연주했다.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애숙 시인도 필자의 시를 낭송했는데, 전문 시낭송가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낭송을 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어 필자도 낭송할 차례가 돼 <아, 지리산> 제목의 시를 낭송했다. 필자는 낭송이 아니라 책읽기 수준이었다.
필자는 이날 차회에 갈 때 녹차 한 팩과 발효차 한 팩을 준비해 갔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차를 우려 손님들에게 드렸다. 필자의 왼쪽에 통영에서 활동하는 조규만 선생이 앉아 필자와 이야기를 하며 차를 마셨다. 그는 차회에 참석할 때마다 통영의 특산품인 빵을 구입해 갖고 왔는데 이날도 많이 가지고 왔다. 그와 통영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차인 한 사람도 동행했다.
김도연 악단장이 지금은 전북 고창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전에 거제에서 오랫동안 음악 활동할 때 조규만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했다. 김 악단장은 노래도 탁월하게 잘 뿐더러 작사와 작곡은 말할 것도 없고, ‘기타의 신’으로 불릴 만큼 연주를 잘한다고 정평이 나있다. 이날 그에게서 기타를 배우는 제자 4명이 동행하여 노래를 하고 연주를 했다. 백 회장의 지인도 이날 참석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몇 곡 불렀다.
차회 장소 인근에 들어와 작업을 하고 있는 박현효 화백이 노래를 한 곡 끝내자 “앵콜”이 터져 나왔다. 콧수염을 기른 그는 멋있기도 하지만 가수 뺨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그리고 하동 출신의 장현주 가수도 이날 참석해 노래를 몇 곡 부르며 필자의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또한 성함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리꾼 장사익 스타일로 차와 관련한 노래를 불러주시고 특이한 악기로 장사익의 <찔레꽃>을 연주해주신 분도 있었다.
필자는 처음에 녹차를 우려내 대접하고, 그 다음에 발효차를 우려 대접했다. 참석자들이 발효차를 선호하는 것 같아 계속 우려내다보니 어느 새 한 팩을 다 써버렸다. 계속해서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다시 녹차를 우려내었다. 엄경희 차회 총무가 방앗간에서 찰밥과 떡 등을 준비해 온 덕에 차와 다식(茶食)이 푸짐하여 필자도 차를 우려내며 먹다보니 저녁을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배가 불렀다.
참석자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오후 6시 반쯤에 차회를 마무리 했다. 야니악단은 일정상 먼저 출발하고 이어 멀리서 온 차인들도 일어섰다. 필자도 마무리를 하면서 바깥쪽을 보니 진한 노란색의 나리꽃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정리한 다음 차사모 회원들은 주인장인 신 선생의 안내로 2층에 올라가 주위 풍광과 집 내부를 구경했다. 2층 난간에 서니 백두대간의 남쪽 끝 지점으로 불리는 수리등이 손에 잡힐 듯 바로 앞에 우뚝 서 있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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