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지리산 화개골에서 남쪽인 화개장터 방향으로 보면 멀리 광양 백운산이 보입니다. 맑은 날씨에도 백운산 정상은 대부분 구름이나 산안개로 가려져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답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은 희뿜하게 실루엣처럼 보입니다. 산 정상은 좌우에 수많은 작은 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가까이 보이는 산은 봄을 지나 여름이 되니 거무스름하게 짙은 색을 드리우고 있답니다. 그렇지만 백운산을 바라보면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이 골짜기 사람들은 저 백운산이 보이는 자리에 앉은 터가 명당이라고 여기지요.
세월은 참 빨리도 지나가는군요. 그토록 바쁘던 봄이 어느 사이 지나가고 햇볕이 쨍쨍한 여름이 시작되더니 어느덧 장마철에 접어들었습니다.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반이 지났군요. 찻잎을 더 이상 따지 않고, 고사리 꺾는 일도 이제 마무리하였습니다.
올해 접어들면서 필자는 바빠졌습니다. 차산의 억새와 쇤 고사리를 비롯하여 잡초 제거와 차나무 관리 등으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날마다 낫 한 자루 들고 산에 올라갔지요. 물론 중간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잠시 입원한 것 외에는 찬 겨울바람 맞으며 산에서 살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고사리와 찻잎이 올라올 즈음에 날씨가 불순하여 영하로 내려가는 등 식물의 생장에 지장을 초래하였습니다. 제 차산은 마을 뒤 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같은 화개면의 섬진강변에 있는 부춘마을이나 영당마을 등에 비하여 찻잎이 올라오는 시기가 통상 1주일가량 늦은 편이지요. 그쪽 마을에서는 3월 말부터 찻잎을 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 차산은 4월 18일에 처음 억지로 한 움큼의 찻잎을 따 밤새 차를 만들어 다음날인 19일에 조상님들께 차를 올렸답니다. 곡우인 4월 20일을 지나 25일부터 소량이지만 제대로 채취하였습니다. 그런 상황에 기온이 내려가는 날이면 차나무가 싹틔우기를 멈추어 또 며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갈수록 차 소비가 늘어 올해는 차를 좀 넉넉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만 혼자 찻잎을 따서 만드는 작업이 녹녹하지 않았지요. 지난해는 친구들이 와서 찻잎 따기와 덖어 비비고 만드는 일을 좀 거들어주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상황 탓에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올해는 지난해보다 녹차는 적게 만들었지만 발효차를 좀 더 많이 만들었지요. 찻잎을 채반에 담아 돌담 위에 올려 햇볕에 발효를 시켰습니다. 차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은 잎이 큰 탓에 별로라고 생각하겠지만, 찻잎을 비벼보면 잎이 클수록 차의 액이 많이 나와 향이 더욱 진하지요. 그래서 발효차를 비빌 때면 차향이 온 집안에 진하게 풍겨난답니다. 게다가 잎이 큰 것은 며칠간이라도 햇볕을 더 쬐어 비타민 종류가 많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던데,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요즘도 매일 차산에 올라가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새까맣게 그을려 이 골짜기 원주민이 다 되었답니다. 제가 사는 목압마을에 이런저런 이유로 오시는 외지인들은 장화를 신은 채 작업복차림으로 낫을 들고 산에 가거나 내려오는 저를 만나면 불일폭포로 가는 길이나 어느 찻집의 차가 맛있는지 등에 대하여 묻습니다. 그럴 땐 저는 기분이 좋답니다. 제가 바라는 지리산 골짜기 사람이 다 되었다는 걸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지요.
요즘에는 산에 올라가 쇠어버린 고사리를 잘라내고, 봄에 잘랐는데 옆으로 더 번져 올라온 억새를 자르기도 하고, 웃자란 차나무 가지를 쳐주는 등의 일을 합니다.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 잡초 등을 베다가 햇살이 나기 시작하면 온 몸이 땀으로 젖는 것은 물론이고, 깔따구와 모기, 벌 등이 쏘아대어 모자를 썼다지만 온 얼굴과 머리가 불퉁불퉁해지지요. 산에서 이처럼 일을 하다 보니 글을 쓸 겨를이 많지 않아 글빚이 많아 밀려 있습니다. 진행하던 여러 작업도 중단되어 있지요. 농사일이란 때에 맞춰 해줘야만 한다는 걸 화개골에 들어와 4년 째 농사를 짓다보니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그리고 보름 전쯤에 암염소 두 마리가 저와 인연이 되어 여기서 가까운 피아골 중기마을에서 제 집으로 왔습니다. 차산 조금 아래에 별도로 있는 막사에 그것들을 묶어놓고 매일 아침에 차산에 올라가면서 풀을 베어 주었지요. 새끼를 밴 듯 배가 불룩한 염소를 ‘목자’, 날씬하지만 키가 좀 큰 염소를 ‘목순’이라고 이름 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저와의 인연이 그리 깊지 않은지 제가 베어다 주는 풀을 먹은 지 열 이틀째 되는 날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환경이 바뀐 염소들이 안정이 되면 조만간 염소젖을 짤 생각을 갖고 있었답니다. 제가 중국의 서쪽 지역인 서안에서부터 실크로드의 도시들, 중앙아시아, 유럽 등에서 아침에 염소젖을 짜 페트병 같은 용기에 넣어 파는 아주머니들을 심심찮게 보아온 터였습니다. 그리고 여행 도중 유목민들과 간간이 지내면서 염소젖을 함께 짜본 경험도 있었답니다.
다들 마찬가지로 생각하겠지만 사람이든, 짐승이든, 물건이든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인연이란 좋은 인연도 있지만, 악연도 있을 수 있고, 평생을 함께 가는 긴 인연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인연도 있더군요.
어제 저녁부터 내리는 비의 양이 제법 많은지 지리산 저 위쪽 영신사에서 발원되어 화개동천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내려가는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립니다. 장마철 비의 양이 엄청날 때는 계곡 물속의 큰 바위들이 천둥소리를 내며 구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처음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무섬증이 들기도 하지만, 저는 그 소리를 통하여 비로소 지리산에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올해는 큰 비가 내리지 않고 적당한 양의 비가 내려 지리산의 모든 생명체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자연이 이치대로 운용해갈 수 있도록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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