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56) - 악양 화봉당에서 가진 ‘차사모’ 차회(茶會)
수백 평 한옥 3채 둘러싼 돌담 인상적 공간서 모임
화봉 잘 보이고, 전 집 주인 묘가 마당에 있어 특이
조해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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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12:44 | 최종 수정 2020.10.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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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7일, 악양면 소재지에서 회남재 넘어가는 길 따라 올라가 매계마을의 화봉당(花峯堂)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량 되었다. 수백 평의 집을 감싸고 있는 돌담이 아주 인상적이다.
‘차사모’ 백경동 회장님이 하동읍의 떡방앗간에서 맞춘 떡과 찰밥을 갖고 먼저 와 계셨다. 화봉당의 주인인 이상현 사장님과 사모님께 인사를 하고 준비해간 다구를 펼쳐 찻자리를 만들었다. 얼마 전 만든 추차(秋茶·가을차)를 우려냈다. 주인께 필자가 오늘 팽주(烹主·차를 우려내는 사람)임을 알렸다.
백 회장님이 손님 한 분을 모시고 오셨다. 하동성당에 함께 다니시는 분으로, 하동읍에서 농기계 등을 수리하는 업체인 ‘툴박스’ 사모님이셨다. 남편께서 교사로 퇴직하신 후 이 업체를 운영하시다 돌아가시어 현재는 공과대학을 나온 아들이 이어받아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화봉(花峯)을 등지고 앉은 필자의 등 뒤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악양 사람들은 화봉이 보이는 곳에 집을 앉히면 복이 들어온다고 이야기 한다”라고, 이 집의 주인장께서 말씀하셨다. 차를 마시며 서로 환하게 웃는 가운데 대전에 계시는 김시형 선생님이 오셨다. 김 선생님은 세종시의 한 국가기관에 국장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차 한 잔 마시기 위해 먼 길 달려오시는 것도 고마운데 참석하실 때마다 뭘 들고 오신다. 오늘은 호떡처럼 생긴 찰떡을 구입해 오셨다.
발효차로 만든 추차를 마시다 봄에 만든 녹차를 마셨다. 요즘 사람들은 녹차보다는 마시기에 부담이 덜하다고 발효차를 더 선호한다. 봄에 만든 녹차는 가을인 이때쯤이면 맛이 조금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마셔보니 좀 싱거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차례 우려내고 다른 차를 우려냈다.
그러는 사이 신판곤 대표님이 지인 몇 분과 함께 오셨다. 화봉당 위쪽인 평촌마을에 최근 집을 지어 관리를 하시는데 사업체가 있는 경기도 용인에 주로 계신다. “차회 참석을 위해 오늘 오전에 용인에서 출발했다”고 말씀하셨다. 악양이 고향으로 여기서 초등학교를 나오신 신 대표님은 조부님과 증조부님이 조선 말기에 조정의 관리를 하셨으며, 부친은 일제시기에 만주에서 생활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모두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셨기에 각자의 전문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방면에 해박하시다. 특히 신 대표님은 세상 경험이 많으시고 아시는 게 많아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걸쳐 이루 말할 데 없이 박식하시다. 오늘 차회 장소 섭외도 신 대표님이 하셨다.
김 선생님은 “사람들과 차 모임이 좋아 왔다가는 길이 즐겁다”며, “최근에 청남대 가까운 곳에 텃밭을 하나 마련했는데, 앞으로 차씨를 좀 심어볼 생각”이라고 언급하셨다.
차회를 하는 화봉당 마당에 전 집주인의 묘가 그대로 모셔져 있는 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다들 긍정적으로 입을 떼셨다. 집주인도 “어른 한 분 모시고 살고 있으니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고 할 정도였다.
일이 많으신 부춘다원의 여봉호 명장님이 마지막으로 오셨다. 친구가 찾아온다는 걸 약속이 있다고 거부하고 서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여 명장님은 부드럽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편이다. 올해 85세로 원부춘마을의 고향집에 혼자 살고 계시는 부친에 대한 이야기와 어릴 때 모친께서 큰 찻잎을 말려 두었다가 감기나 몸살기가 있을 때 돌배 등을 함께 넣어 끓인 ‘잭살’ 찻물을 마시면 거짓말처럼 싹 나았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하는 가운데 백 회장님이 “차사모 회원이 현재 6명인데 오늘 사천의 김현복 선생님만 불참하고 5명이 참석하셨다”고 멘트를 하셨다. 오후 3시 넘어 시작한 차회가 오후 7시가 되어도 여전히 덕담과 환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집 사모님이 공간 중간 테이블에 저녁 식사를 마련하셨다. 찰밥은 백 회장님이 준비하셨지만, 사이 미역국을 별도로 끓이시고 문어회를 내놓으셨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모두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필자도 “집에 있을 때도 늘 습관처럼 차를 마시지만 이렇게 차회를 할 때처럼 한 템포 쉬는 듯한 기분은 느끼지 못한다”고 언급했다.
식사를 한 후 다시 차를 마시다 오후 8시 되어서야 자리를 파했다. 이 집은 본채 한옥과 아래채 한옥, 그리고 모임을 할 수 있는 한옥으로 구성돼 있다. 오늘 차회는 모임 공간에서 가졌다. 다음 날 차회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다들 헤어졌다. 회원들은 차를 좋아하고 차회를 통해 일상의 긴장을 풀며 덕담 나누는 걸 좋아하는 공통점 외에는 공통영역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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