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오후 1시 반쯤 하동 악양면에서 청암면 묵계로 넘어가는 회남재 좀 못 미쳐 ‘너른마당’에 도착하였다. 회남재는 남명 조식선생께서 악양이 절경이란 말을 듣고 찾아오다가 힘들어 되돌아가셨다고 해 불리기 시작한 고개라고 한다. 너른마당에서 길 따라 250m 아래에 박현호 화백의 작업실이 있다. 처음 방문하는 이곳은 귀촌한 부부가 생활하시는 가정집이었다. 탁 트인 너른 마당을 가졌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같았다.
하루 전날 김애숙 대렴차문화원장께서 “찻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전화를 하셨다. 김 원장님의 안내로 구석진 파라솔 아래에 앉아 준비해간 다구를 펼쳐놓고 찻자리를 만들었다. 스무 명가량의 방문객이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주인 내외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장님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시다 퇴직하셨고, 사모님은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하셨다.
올해 우전을 한 통밖에 만들지 못했는데, 그중 한 봉지를 들고 가 우려내었다. 참석하신 분들이 번갈아 가면서 우려내는 차를 드시고 가셨다. 한 여성분이 아는 체를 하셨다. 대전에서 허브티를 연구하고 모임을 갖고 계신다는 조 선생님이란 분이었다. 얼마 전 필자의 마을 앞 동네인 용강마을의 화타한의원장님의 출판기념회에 필자와 갑장으로 부춘마을에서 토담펜션을 운영하며 ‘달빛강정’을 만들어 판매하는 공상균 시인과 참석한 적이 있다. 필자가 공 시인의 트럭을 타고 화개로 내려오려고 하는데 역시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어느 낯선 여성이 “화개까지 태워달라”고 하여 함께 승차하였다. 코로나19 탓에 마스크를 하여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그때 그 여성분이라고 인사를 하였다. 김애숙 원장님과 친분이 깊고 차를 좋아하여 종종 대전에서 내려오신다고 하였다.
조 선생님께서 오늘 찻자리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수국이 필 무렵 오후에 갖는 찻자리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마당 가운데 쪽 여성들이 많이 앉아계시는 곳에는 수국을 비롯해 예쁜 꽃들이 테이블에 꽃꽂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늘 차모임 이름이 ‘수국차회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라고 하셨다.
오늘 찻자리 이후 음악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하였다. 음악을 담당하실 분이 필자의 찻자리에 오시어 차를 드셨다. 부산에서 오신 분으로 원래 성악이 전공인 음악교사였으며, 지금은 목회활동을 하는 목사님이라고 하셨다. 필자보다 두 살 위로, 성격이 시원시원하셨다.
그 분이 다른 자리로 가시고 일명 ‘이슬차’를 만드시는 이 선생님이 앉으셨다. 필자의 앞집인 관아수제차의 사장님 동생이라고 하였다. 악양이 고향으로 목압마을에 고시공부하러 왔다가 차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의 관아수제차 건물도 자신이 지어 형님께 드렸다고 하였다. 제주도로 가 차를 만들고 있으며, 여기서 가까운 곳에서 차를 만들며 차에 관한 교육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좀 지나자 화개제다 설립자인 홍소술(91) 어르신의 장남인 홍순창(62) 박사님이 오셨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필자가 차를 우려내 찻잔에 차를 따르는 걸 보시더니 “차를 찻잔에 감질나게 담아야 사람들이 많이 마신다”고 이야기하셨다. 마침 어느 여성분이 오시어 함께 차를 마셨다. 악양이 고향으로 68세이고 서울에 사시며, 남편분이 한의사라고 하셨다. “원래 종교가 불교였는데, 기독교로 바꿔 교회에 다닌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올해 목포대학교 박사과정 입학해 차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석사논문은 차를 통한 기독교 선교활동을 주제로 썼다”고 설명하셨다. 그러자 홍 박사님은 ‘저도 차를 주제로 석·박사 논문을 썼다“고 하셨다. 두 분이 공감영역이 많으신지 이야기를 한참 나누셨다.
음악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저쪽에서 음악회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한 분이 오시어 “함께 자리를 하시죠?”라고 해 그쪽으로 갔다. 이슬차를 만드시는 이 선생님 앞에 앉았다. 아주 작은 잔에 이슬차를 우려 정말 병아리 눈물만큼 주셨다. 끓인 물이 아니라 일반 생수로 차를 우렸다. 지난 해 5월 하동야생차박물관 마당에서 열린 야생차축제 때 필자는 이 선생님으로부터 이미 이슬차를 얻어 마신 적이 있는데, 그 분은 필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 선생님이 대나무 속에 찻잎을 넣어 만든 발효차를 대전에서 오신 그 여성분이 우려주셨다. 이 선생님은 “kg에 5000원짜리 가장 큰 찻잎으로 만든 차인데 맛이 괜찮죠?”라고 물어 필자는 “맛이 좋다”고 답하였다.
색소폰으로 음악을 들려주시는 목사님은 노래 한 곡을 연주하시곤 “최근에 제 부친이 96세로 소천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목사님이어서 그런지 여러 교훈적인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게 여러 곡의 음악을 들은 후 오늘 차모임 행사가 막을 내렸다.
일이 있는 분들은 가시고 남은 분들만 기념촬영을 했다. 여성분들이 많아 화려한 차모임에 필자는 뜻하지 않게 참석하여 찻자리를 편 하루였다. 이 댁의 사장님은 “조만간 집사람과 목압마을의 목압서사에 차 한 잔 마시러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역사·고전인문학자, 교육학박사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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