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24. 또 다시 지주의 횡포(2)

추석을 지난 뒤 며칠 뒤였다.

“언니야, 추석 잘 씼나?”

“그래. 너거는?”

“정신없어 혼이 났다. 무려 5박 6일 하고 서울아이들이 올라갔다.”

“그래 욕봤구나.”

“응. 그런데 언니목소리가 와 그러노?”

옆에 있는 열찬씨가 듣기에도 평소의 활달한 목소리와 확연히 달랐다.

“언니야, 어데 아푸나?”

“아이다.”

“그럼 서울며느리하고 또 마음이 상했나?”

“아니.”

“둘째 승관이가 또 돈을 터잤나?”

“아니.”

“혹시 형부하고...”

“아무 일 없다.”

“시어마시나 시누이하고 갈등을 했나?”

“아니.”

“그럼 와 그라는데?”

“...”

“좌우지간 만나자. 추석을 쐤는데 밥이나 먹어야지.”

“그라든지.”

하고 열한 시가 다 되어 연산로터리로 데리러갔는데

“이서방 추석 잘 씻능교?”

집 앞에서 기다리던 미혜씨의 얼굴이 푸석해

“처형 얼굴이 와 그렁교? 꼭 추석 거꾸로 신 사람처럼.”

“그렇지 뭐.”

“형부는?”

“송신해서 내가 나가라고 했다. 집에서 내 눈치 보지 말고 친구만나서 밥이라도 먹으라고.”

“와? 같이 가지.”

“그럴 기분이 아니다.”

“언니 어디로 갈까? 바우석쇠집이나 칠암에 아나고집이나?”

“명절에 기름진 음식 많이 먹었으니 횟집에 가자.”

하고 별 말이 없이 잠잠하게 반송고개를 넘어 송정해수욕장으로 접어들어 비로소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자

“어허, 시원하다. 역시 바다가 좋아.”

한참이나 차창 밖을 응시하던 미혜씨가

“이서방요!”

부르는 어조가 평소와는 달라

“와요? 오늘은 되게 심각하네.”

하며 고개만 뒤로 반쯤 돌리는데

“갑장은 오래 사소. 나는 인자 텄소”

“터다니?”

“내가 취장암에 걸렸단 말이요.”

“뭐? 췌장암!”

열찬씨와 동시에

“취장암이라고 그거 되기 힘든다던데.”

영순씨가 소리치더니

“아이겠지. 처형이 그리 건강하고 씩씩했는데 그럴 리가 있나?”

“그래 뭐가 잘못 되었겠지.”

부부가 도리질을 하는데

“의사가 헛말을 하겠나? 사진이 거짓말을 하겠나?”

미혜씨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대화가 끊어져 해동용궁사 앞을 지나고 대변을 지나 다시 기장으로 빠져나올 때까지 끝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잠잠하다가 차가 다시 일광역을 거쳐 이동항을 지날 때

“처형이 하도 잘 먹고 잘 놀고 씩씩하게 투병을 잘해 나는 자궁경부암쯤은 거뜬히 이기고 무난하게 장수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래요. 담당의사도 통탄을 하는 것이 이번 검사만 잘 나오면 자궁경부암 완치로 치료종결을 선언하려 했는데 딱 5년 되던 달에 터졌다고.”

“처형은 또 이겨낼 겁니다. 나는 암에 걸려 처형처럼 잘 먹고 잘 놀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은 첨 봤어요. 어떤 때는 남자인 나보다도 더 사내다워요.”

“그렇지만 몸에 병 지니고 이기는 사람이 있나?”

“그래 의사는 뭐라 카덩교?”

“일단 항암치료는 해보자 카더마는...”

“그래 치료를 하면?”

“완치는 어렵고 경과가 좋으면 한 1년 산다더라.”

“뭐라!”

내외가 동시에 탄식을 하는데

“뭐 그만하면 잘 안 살았나? 마흔이 안 되어 일에서 손을 떼고 이적지 20년 넘게 놀고먹었으니. 참 원 없이도 먹었고 한없이도 놀았다.”

“그래도 남은 형부나 가족들은...”

“너거 형부는 내가 없어도 훌라도 치러 댕기고 가끔 관광버스를 타고 남의 여자와 춤도 추지만 약아서 큰돈은 안 쓰고 잘 살 거다. 매몰찬 큰 며느리와 정이 안 가는 서울아이들도 저거 아부지 돈 잘 버니까 신경도 안 쓰고 서울사람이 되어 잘 살 낀데 우리 승관이, 나이 마흔이 넘어 아직 장개도 못 가고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로 몰린 우리 둘째가 걱정이다.”

“암만 그래도 부부만 하겠나? 그래 형부는?”

“검진결과를 듣고 한숨을 푹푹 쉬면서 밤새 잠을 못 자더라. 그래서 아침 먹자말자 내가 훌라 치러 가라고하자 ‘시방 내가 훌라 칠 기분이 되겠어?’ 하는 걸 그럼 병든 내가 서방이 대가리 처박고 죽 상을 하는 걸 보는 기 낫겠나며 호통 쳐서 내보냈지.”

“그렇구나.”

목적지 칠암의 <꺼먹동네>앞에서

“언니야, 암환자한테 회가 안 좋다는데?”

영순씨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오늘까지만 묵자. 항암치료 들어가면 묵고 싶어도 못 묵는다.”

하고 주문을 하는데 보통사람이면 아나고 1관에 넷이 넉넉히 먹는다는데 셋이서 1관을 시키고도

“영순아, 우짜꼬? 가서방이 회를 잘 자시니까 아나고를 반관 더 시킬까, 잡어를 시킬까?”

하고 바라보는데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음식을 적게 시켜 아직 배도 덜 부른데 음식이 달랑거리는 거라는 언니의 성격을 잘 아는 영순씨가

“그럼 잡어 작은 거 한 사라 더 시키지.”

하고 자리에 앉아 음식이 들어오자

“자, 이서방, 한잔 하소!”

상추에 잡어를 한 쌈 싼 미혜씨가

“갑장은 우리 영순이랑 오래오래 재미있게 살다오소.”

하고 입에 넣어주는데

“처형, 당장 죽는 것도 아인데 와 이라요? 그라다가 전 처럼 또 5 년 이상 버티면 우짤라꼬?”

“체력이고 재수고 그 기 한 번이지 우째 판판이 행운이겠소.”

하며 쌈을 싸더니

“우리 어릴 때 초상이 나면 ‘외할배는 죽어도 소고기국밥은 달다.’ 더니 죽을 날 받아놓고도 아나고회는 맛있네.”

하고 씩 웃었다.

[그림=서상균]


부지런히 식사를 해 어느 듯 회 접시가 거의 비어갈 때쯤 열찬씨가 소주를 한 병 더 시키자

“당신도 마 술 좀 어지간히 잡수소. 언니 아픈 거 보고 술 마실 정신이 있나?”

“무신 소리고? 이서방이 잘 마셔야 나도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지.”

하는데 매운탕이 들어오자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은 묵자. 오늘따라 와 이래 입맛은 땡기는지 모르겠네.”

하며 또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는데 따르릉 열찬씨의 전화가 울렸다.
“그래. 박장로. 알아는 봤나?”

하는 순간 영순씨가 열찬씨에게 나가서 받으라는 신호를 해 일어서려는데

“와? 우리가 남이가? 마 그냥 받으소.”

미혜씨가 주저앉히는 바람에

“그래 말해봐라.”

“예. 옛날 도산할배 집터 대지가 157평, 평당 70만원이고 텃밭이 155평 평당 60만원 합계가 대충 2억 몇 백만 원인데 쪼깨 깎으면 한 2억 안쪽에.”

“그래 땅은 반듯하나? 도면은 봤나?”

“예. 땅 두 필지가 감자를 비스듬하게 잘라놓은 것 같지만 합쳐놓으면 거의 직사각형에 가깝게 반듯합니다.”

“그래 잘 됐네.”

“예. 외삼촌 맘에 듭니까?”

“드나마나 돈이 자래야 될 건데...”

하다

“너 외숙모하고 의논 좀 해보고.”

하고 전화를 끊는데

“영순아, 너거 땅 사나?”

“아니. 돈도 없으면서 저 영감쟁이가 안 그래쌓나?”

“엔간하면 사 줘라. 나는 이서방이 적은 나이도 아닌데 월내 오리의 허허벌판에 혼자 움막집 지어놓고 사는 거 보기 안 좋더라. 암만 글을 쓴다 해도 몸도 편하고 옆에서 마누라가 지켜주어 심신이 다 편해야지.”

“그러게. 나도 돈만 되면 자기가 그렇게 언양, 언양 들먹이는 고향에 땅 사주면 얼마나 좋겠노? 거기다 셋째 시누이집 옆인데.”

“그래 쪼가리 함 맞춰봐라. 기본재산 있겠다, 연금 나오겠다, 아이들 둘 다 돈 잘 벌겠다, 우째 해도 하겠지.”

“아이다. 언니야, 손에 쥔 돈이 있어야지.”

이어 전망 좋은 찻집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굳이 영순씨가 돈을 내고

“언니야, 미안하다이. 언니 몸 아파서 정신없는데 이런 이야기해서.”

“아이다. 나도 우리 갑장이 공기 좋은데서 편안하게 글 쓰는 것 보고 싶다. 할 판이면 망설이지 말고 서둘러라. 집사고 땅 사는데 빚 안지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한번 저지르면 어떻게든 다 해결이 되고 그래서 목돈을 벌게 된단다.”

“...”

“내가 한 1년 더 산다니까 얼른얼른 서둘러라. 그래야 내가 너거 새 집에 하루 밤을 자고 다문 냉장고나 세탁기라도 하나 넣어주지.”

하는 미혜씨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당신 간도 커요. 우리 입장에서 그만한 돈이 어디 있소?”

“뭐 이리저리 긁어모아보는 거지.”

“당신 혹시 내 모르는 돈 있소?”

“없다. 퇴직금 탈 때 당신이 통장에 돈 꼽히는 거 보는데서 갈랐다 아이가?”

“그래도 쪼깨 있는 눈치네.”

“그간에 쫌생이 짓하고 모는 돈 쪼깨 있다.”

“얼마나?”

하고 손가락하나를 세워 보이는데

“그만큼은 안 된다. 한 6,7백.”

“그거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 보자아, 2억에서 조금 깎아준다니 한 1억 9천 잡고...”

영순씨가 이마를 찌푸리며 곰곰 생각에 잠기는데

“우리 퇴직금 남은 것이 전부 얼마나 되노?”

“은행이랑 새마을금고, 신협 여기저기 다 빼면 한 1억 2천.”

“당신 생활비통장은?”

“돈 천만 원 넘는다.”

“그럼 내 돈까지 1억4천 잡고 땅값 1억9천에 취, 등록세 등 부대경비 돈 천만 원 잡으면 한 5,6천이 모자라네.”

“마, 생각 접읍시다. 돈 5,6천이 어데 아아이름이가?”

“그래도 일단 다음 주에 땅을 한번 보러가자. 지금은 대밭이 있어 그런데 옛날에 집터라 양지바르고 우물도 있고 살기 좋은 곳이란다. 누님이.”

“아이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해외여행이나 엔간히 다닐 걸 그랬지?”

“뭘? 여행도 한때라고 그 때 안 가고 현서 태어났으면 돈이 있어도 못 갔지.”

“그래도 이렇게 돈이 아쉬울 줄 알았나?”

“뭐, 그까짓 돈 한 2,3천 가지고.”

“아이고 배포도 크네.”

하고 일식씨가 메일로 보낸 도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봐? 명촌리 287의 1번지 대지가 요거고 287의 2번지 전이 요건데 가운데 비스듬한 경계는 아마 골티골짝 빗물이 흘러가는 자연개울일 거야. 전체로 땅이 평평하제?”

“내사 봐도 잘 모르겠네.”

하고 다음 일요일 또 명촌으로 가서 누님집 앞 4거리에 주차를 하고 전에 본 땅을 찾아가는데

“우째 오셨어요? 혹시 땅을 사시려고요?”

대밭그늘에 놓은 컨테이너 박스 앞에 앉았던 동년배의 뚱뚱한 사내하나와 홀쭉한 50대 하나가 아는 체를 하더니

“저 대밭 밑에 땅을 보는 모양인데 이 일대서 가장 중심지라 땅값이 꽤나 비쌀 텐데요.”

하는데 문득 생각이 떠오른 열찬씨가

“부산 연산동 사는 이열찬입니다.”

악수를 청해

“울산 사는 임아무갭니다.”

“울산 사는 박아무갭니다.”

인사를 하고

“사장님은 땅이 어딘데요?

묻자

“저는 요 위에 깎아 논 땅 260평.”

“저는 저 밑에 밭 340평.”

“그렇습니까? 두 분은 살 때 얼마씩이나 주고 샀습니까?”

“우리는 4,5년 전에 좀 싸게 샀지만 그간 택지개발 한다고 경비도 들어가고 뭐...”

하며 말을 흐리더니

“여기 땅 나온 것은 우째 알고?”

“예. 저 위에 2층집이 우리누님 집이지요.”

“그러면 박장로님 외삼촌이란 분이군요.”

“예.”

“땅을 사서 오시면 좋지요. 사장님이 먼저 집을 지으면 여기저기 다른 사람도 집을 짓고 땅값도 올라가고.”

임사장이 반색을 하는데

“건축허가조건이 까다로워 아직 아무도 집을 지은 적이 일이 없는데...”

“뭐. 그거야. 조건은 안 맞으면 맞추면 되는 거고.”

하고 전 가족이 몽땅 교회에 가고 없어 일식씨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고 한참 만에 전화가 와서 교회일로 바빠서 갈 수는 없고 땅이 마음에 들면 흥정을 해주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당신 생각은 어떻노? 마음에 드나?”

“내한테는 와 물어보는데? 당시 눈에 사고 싶어서 안달을 하는 것이 다 쓰여 있는데.”

“그런가?”

“이럴 때 돈이 좀 있으면 좀 좋을까? 내가 남편도 자식도 다 무난한데 딱 돈이 좀 모자란단 말이야.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최곤데 말이야.”

“열두 가지 복이 다 있는 사람이 어데 있노?”

“그런가?”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