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51)- 목압마을 '물 담당자'로서의 소임

높은 곳에 위치한 취수지 수시로 올라가 점검

조해훈1 승인 2020.08.10 13:34 | 최종 수정 2020.08.10 14:57 의견 0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장마가 그치질 않는다. 오늘이 87(금요일)인데도 비가 내린다. 주변 사람들은 아열대성기후의 스콜처럼 비가 내린다는 말들을 한다. 정말이지 그런 것 같다. 스콜처럼 비가 쫘악 내렸다가 그치고, 조금 있다 또 비가 쫘악 쏟아진다. 그러다보니 하루라도 말짱한 날이 없다.

지난 해 연말 필자가 사는 목압마을의 대동회 때 마을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물 담당을 자임했다. 이곳은 도시처럼 상수도가 아니라 산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물 담당자인 필자는 수시로 물을 취수하는 산에 올라가 제대로 물이 관을 통해 마을로 잘 내려가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곤 주변을 청소하고, 낙엽이나 잔돌 등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점검을 하고 제거한다.

목압마을의 식수를 취수하는 장소. 해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목압마을의 식수를 취수하는 장소. 해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최동환 마을 이장님은 걱정이 되다보니 자주 전화를 하시어 어제 비가 왔는데 한 번 올라가보셨느냐?”고 물으신다. 비만 내리면 올라가서 점검을 해야 하는 구조이다.

목압마을의 식수를 취수하는 곳은 국사암에서 산으로 1km 조금 못 될 정도로 한참을 올라간 지점에 있다. 제법 해발이 높다. 작은 폭포가 소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아주 사납다. 일반인들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보니 길이 제대로 없는 데다 대나무 등이 우거져 항상 낫을 들고 다니며 쳐주어 길을 내야 한다. 낮에도 어둑하여 가끔 무섬증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길이 거의 끊어진 지대를 지나다 계곡으로 미끄러져 애를 먹기도 했다. 게다가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는 곳이어서 지팡이와 낫을 필수적으로 들고 가야한다.

국사암에서 취수지로 올라가는 길. 대나무가 우거져 낮에도 어둑하다.
국사암에서 취수지로 올라가는 길. 대나무가 우거져 낮에도 어둑하다.

취수하는 시설은 3m가량의 시멘트 수로를 거쳐 파란 물통에 일단 물이 모이도록 돼 있다. 물통의 중간쯤에서 파이프를 통해 마을로 내려가는 시스템이다. 물은 내려가 3개의 물탱크에 저수된다. 먼저 가장 위쪽에 있는 국사암의 물탱크에 담겨 이 절이 사용한다. 다음으로는 마을의 맨 위쪽에 위치하여 양봉을 하는 정병헌 씨 집과 그 아랫집인 윤도현 씨 집 등 3가구에 공급된다. 그 다음 물탱크는 목압마을 전체 가구가 식수로 사용한다. 목압마을은 다 합쳐야 30가구가 채 되지 않을 만큼 작은 동네이다.

오늘 8일 토요일. 또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주민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민박철이니 특히 신경 좀 써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장님 전화를 받으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퍼붓는 비를 맞고 올라갔다. 낮인데도 취수지점까지 가는 산속 길이 왜 이리 어두운가. 산이 깊고 대나무가 우거져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필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국사암에서 올라가는 길이 짧기나 한가. 또 무섬증이 들었다.

사실 취수되는 시설이 좀 원시적으로 돼 있다. 낙엽 등이 흘러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돌을 뒤적여보고 시멘트 수로의 끝부분에 있는 쇠망을 확인해 낙엽 등이 붙어 있으면 떼어낸다. 점검을 하고 물이 파란 통에 잘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내려왔다.

오늘 9일 일요일 아침. 취수지로 가는 길에 대나무와 잡나무 가지들이 비바람에 넘어져 있는 곳이 많아 낫으로 베고 치우면서 올라갔다. 계곡 옆 산비탈을 타야 되는 곳이 있다. 가장 난코스이다. 이곳을 지나다 또 미끄러졌다. 계곡의 바위에 부딪혔으나 다행히 다리와 팔 등에만 타박상을 입었다. 머리가 부딪혔다면 큰 일 날 뻔하였다.

그런데 취수지가 문제가 아니다. 엊그제 7일 금요일 필자가 서울에 다녀온 밤부터 화개장터와 화개공용터미널 인근에 물이 차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그 일대가 물에 잠겨 통행은 물론이고, 엉망진창이다. 마을 스피커에서는 밤낮없이 피해 없도록 조심하고 물가에 사는 주민들은 대피하라고 지시한다.

화개공영터미널 앞 복구 현장. 인근 가게들의 집기 등이 터미널 마당에 나와 있다.
10일 오전 화개공영터미널 앞 복구 현장. 인근 가게들의 집기 등이 터미널 마당에 나와 있다.

화개에서 바깥으로 통행이 불가능하였다. 화개에서 하동으로 나가는 지방도가 침수됐다는 재난문자를 어제 몇 차례 받은 터였다. 오늘 9일 일요일 낮 12시 진주시청 인근에서 서부경남에 거주하는 국제신문 퇴직기자들 점심 모임이 있어 가야되는데 걱정이었다. 오전에 화개로 내려가니 물에 잠긴 가재도구며 물건들 바깥으로 꺼내느라 주민들과 상인들, 당국에서 나와 구슬땀을 흘리고 계셨다. 팔 걷어붙이고 함께 도와드리고 싶었으나, 미리 약속된 데다 필자가 오늘 밥을 사는 자리라 어쩔 수 없었다.

10일 오전 화개장터 복구 모습.
10일 오전 화개장터 복구 모습.

화개공영터미널 인근과 화개장터의 복구 현장 모습 사진을 몇 장 찍어 진주로 향했다. 화개에서 하동으로 나가는 길이 아직 완전 개통이 안 돼 일부 구간에서는 둘러가도록 되어 있었다. 도로 아래 차밭 등은 여전히 물에 잠긴 곳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동으로 가는 도중 취수지에 올라가 점검하시라는 이장님의 문자메시지가 또 왔다. 오늘 낮에 집을 비우는 탓에 이장님 연락이 올 줄 알고 미리 아침 일찍 올라갔던 게 잘 했다 싶었다. 이장님께 , 이장님. 좀 전에 갔다왔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니 이장님이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답을 하셨다.

어찌하다보니 이 글을 사흘에 걸쳐 쓰게 됐다.

<역사·고전인문학자 mass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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