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3) 2일차 -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

몸 아파 하루 더 묵고 싶다 하자 "안 됩니다"
입맛도 없어 아침, 점심 모두 커피로 때워
내리막길서 다리 풀려 넘어져 온몸 타박상

조해훈 승인 2024.11.01 10:47 | 최종 수정 2024.11.01 10:54 의견 0
이른 아침,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로 가는 순례길 옆 풀밭에서 어미소와 좀 자란 송아지가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는 가족이 함께 있는 게 좋아보인다. [사진= 조해훈]

어젯밤에 자정 넘어까지 잠을 들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감기몸살약을 가져오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아파 견디다 못해 가져온 두통약을 두 알 먹었다. 약 때문인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새벽 3시쯤 깼다. 필자 위의 2층 남자와 필자의 자리 옆 침대 1층의 남자가 코를 심하게 고는 바람에 깼다. 신기하게도 머리가 덜 아프고 콧물과 기침도 좀 멎었다. 몸은 탈진 상태라서 그런지 힘이 하나도 없고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대로 가만히 누워 있었다. 6시쯤 되니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짐을 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필자도 일어나 어젯밤에 먹은 두통약 두 알을 미리 먹었다. 다른 약이 없어 방법이 없었다. 화장실에 가 양치를 하고 고양이 세수를 한 후 돌아와 짐을 쌌다. 그리곤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직원들이 벌써 나와 있었다. 간단한 등산용품을 진열해 팔고 있었다. 비에 노이로제가 생겼는지 비옷을 보자고 했다. 비가 오든 오지 않든 비옷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크기가 작았다. 필자는 윗옷 크기가 100인데 아마 90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직원이 “남은 게 이것 하나밖에 없다”라고 했다. “작아도 괜찮으니 그냥 주세요”라며 구입했다. 어제 비바람이 몰아치는 피레네산맥을 비옷 없이 넘다 보니 비옷부터 눈에 들어왔다. 그리곤 “오늘 하루 더 묵을 수는 없습니까?”라고 물었다. 몸 상태로 보아 오늘 하루 도저히 20여 km를 걸을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원은 “그건 안 됩니다. 아침 8시 전까지는 한 명도 빠짐없이 나가주셔야 합니다”라고 했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곤 등산화를 신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앞서 순례자들이 걸어 나가고 있었다.

필자가 어제 핸드폰이 꺼진 상태에서 성당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지 못하고 도로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길을 따라 걸었다. 콤포스텔라까지 790km라고 적힌 입간판이 보였다. 길가 오른 쪽에 카페가 하나 보이고 순례자들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필자도 들어갔다.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커피라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신 후 나와 도로 건너편에 마트가 있어 들어갔다. 사과 두 개를 샀다. 그런 후 마트 옆 순례길로 접어들어 길을 걷기 시작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로 가는 순례길 옆 목초지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카페서 나온 시간이 오전 8시 18분이었다. 오전 8시 53분, 목축지 길로 접어들었다. 양이 아닌 말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날씨가 흐렸다. 비가 며칠 계속 내려서 길에는 물웅덩이가 많았다. 목축지가 이어지다 몇 채의 집이 있는 마을을 지났다. 오전 9시 36분이었다. 길가 쪽으로 장작을 많이 패 쌓아놓은 게 보였다. 저 많은 장작을 해 와 한 개 한 개 도끼로 패었을 주인을 생각했다. 필자도 산골에 살지만 나무를 해와 저렇게 장작을 만들어 쌓아놓는다는 게 얼마나 부지런해야만 가능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가 집 옆에 장작을 패 담장처럼 쌓아놓았다. [사진= 조해훈]

또 목축지가 나타났다. 어미 소와 어느 정도 자란 송아지가 풀을 뜯고 있었다. 사람은 말할 것이 없지만 동물도 혼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는 가족이 함께 있는 게 좋아 보였다. 오전 10시 6분, 드디어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이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그들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비가 여러 날 내려 땅은 축축하겠지만 먹을 풀이 풍성하니 행복할 것 같았다. 그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어 셀카로 찍었다. 어제 산맥을 넘으며 빗물 때문에 안경을 벗어 옷에 넣었는데 찾지를 못했다. 그래서 현재 안경을 쓰지 않고 걷는 중이다.

순례길 옆 밭에 커피와 맥주를 파는 허름한 카페. 필자는 여기서 점심으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사진= 조해훈]

이제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오전 10시 30분, 도로를 만났다. 표식은 그 길을 버리고 다시 산길로 안내를 해 접어들었다. 스틱을 짚으며 걷고 있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순례자들이 모두 앞서서 가버렸다. ‘어쩌면 저렇게 로마 병정처럼 잘 걸을까?’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뒤에서 “쿵! 쿵!”거리며 따라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비켜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산길을 혼자 걸어가는데 텃밭 같은 게 나타났다. 그 가운데 허름하게 임시로 지은 집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다. 그런데 입구에 커피를 판다고 적혀있었다. 한적한 숲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대상으로 커피를 파는 모양이었다. 오전 11시 27분, 안으로 들어가니 다른 순례자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는 인근 주민인 듯한 어르신 두 분이 맥주를 마시고 계셨다. 필자는 커피를 시켰다. 설탕을 달라고 해 겉을 뜯어 모조리 다 넣었다. 아직 다른 음식은 속에서 받지 않았다.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이다. 조금씩 천천히 마셨다. 휴식도 취하면서 몸을 좀 추슬러야 했다. 커피를 마시고 나니 컨디션이 좀 나아진 듯했다.

순례길 옆에 있는 텃밭. 마늘과 배추, 상추 등 우리의 작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 조해훈]
어느 집대문에 배달해 놓은 바게트. [사진= 조해훈]

바깥으로 나와 조금 걷다 보니 시골집이 한 채 있고 옆에 텃밭이 있었다. 철망 바깥에서 텃밭 안을 살피니 마늘과 배추, 상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한국의 텃밭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작물의 크기가 조금 컸다. 마을로 접어드니 어느 집 대문에 바게트가 걸려 있었다. 바게트를 배달해 먹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을에 주차해 둔 차 중에서 기아차와 현대차가 보였다. 마을을 지나면서 천천히 걸었다. 할머니와 함께 걷던 시커먼 개가 필자를 보곤 쫓아왔다. 할머니는 개를 불렀으나, 개는 필자에게 다가와 몸을 세우곤 안기듯 했다. 겁이 좀 났으나 할머니가 다가오고 계시어 개를 쓰다듬어 주었다. 보기완 달리 순했다.

한 순례자가 길가에 반쯤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50분, 한 순례자가 길옆에 놓인 통나무에 기대 쉬고 있었다. 바닥에 깔개를 깐 채 반쯤 누워 있었다. 필자가 “어느 나라에서 왔습니까?”라고 물으니, “모로코에서 온 여행작가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몇 마디 나누다가 필자도 저렇게 반쯤 누워 쉬고 싶었다. 하지만 깔개도 없고 남들 보기도 뭐할 것 같아 그냥 통나무에 앉아 쉬었다. 누워 한숨 자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쉬다 일어나 걷는데 뒤에서 걸어오는 분들이 있었다. 한국 분들이었다. 목사님 부부와 지인 두 분이라고 했다. 목사님 부부는 8년 전에도 산티아고를 걸으셨다고 했다. “혹시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 몰골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어서였다. 다른 여성분이 “너무 피곤해 보이고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 조심해서 걸으세요”라고 걱정을 해주며 먼저 가셨다. 사진을 보니 하루 사이에 살이 쏙 빠져 있었다.

순례길에서 만난 목사님이 찍어주신 필자의 모습. 지치고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그분들이 먼저 가시고 또 혼자 스틱에 의지해 느릿느릿 걸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힘이 없다 보니 내리막길에서 다리가 풀리면서 꼬여 넘어지면서 미끄러졌다. 오른쪽에 스틱을 짚고 있어서 왼쪽 팔꿈치에 상처가 크게 났으며, 왼쪽 무릎이 넘어지면서 돌에 부딪혀 무척 아팠다. 배낭을 메고 있어서 머리는 다치지 않았는데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마침 뒤따라오던 다른 순례자가 필자를 일으켜 세웠으나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나지를 못했다. 그 순례자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기도 해 “고맙습니다. 좀 이렇게 앉아 있다가 일어설 테니 먼저 가십시오”라고 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픔 같은 게 밀려들었다. 그렇게 한참 앉아있다가 스틱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스틱이 휘어져 있었다. 얼마나 스틱에 온몸을 의지한 채 푹 넘어졌는지 강한 티타늄으로 된 스틱이 휘어지다니? 여하튼 겨우 일어서 걸었다. 이제 필자의 뒤에는 정말 다른 순례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휘청대며 천천히 걸으며 도로로 내려섰다. 둥글게 굽이지는 도로 옆에 푸드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쉬기도 해야 했고, 커피를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했다.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목사님의 사모님과 함께 오신 여성분이 오시어 옆 테이블에 앉으셨다. 사모님은 ”선생님, 그렇게 힘이 없어 보이시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며 걱정을 해주셨다. 그분들은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는 길을 따라 내려가셨다. 필자 혼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힘은 없어도 쉬고 나니 마음이 좀 안정되었다. 이때가 오후 2시 43분쯤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 천천히 내려갔다. 집 몇 채가 나타났다.

그렇게 천천히 1시간 반가량 걸으니 오늘 목적지인 주비리에 도착했다. 오후 4시 반쯤 되었다. 앱 지도를 보고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먼저 도착하신 목사님 일행이 등록하고 계셨다. 필자도 등록을 마친 후 2층 룸으로 들어갔다. 목사님 일행의 침대 옆이었다. 너무 피곤한 데다 온몸이 아파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 1층에 누웠다. 어쨌든 오늘 론바스사예스에서 주비리(Zubiri)까지 21.5km를 걸었다. 어제 생장에서 시작하면 오늘 주비리까지 총 45.7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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