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순례 이야기(6) 5일 차 -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용서의 언덕’ 구경하다 자갈길 내려와
티토 일행 만나 숙소서 파스타 해 먹어
오늘 하루 24.1km, 전체 90.2km 걸어

조해훈 승인 2024.11.09 15:20 의견 0
팜플로나 알베르게를 떠나기전에 주인아저씨(왼쪽)와 보조를 해주는 노르베르트(75) 아저씨와 함께 필자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다른 순례자]

팜플로나에서 하루를 푹 쉬고 나니 컨디션이 좀 나아졌다. 오늘도 역시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먹었다. 커피에 작은 토스트 2개 등 이었다. 그렇게라도 먹고 나니 훨씬 몸이 나은 것 같았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기 전에 주인아저씨(65)와 일을 도와주는 노르베르트(Norbert·75) 아저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다. 이틀을 잤는데, 그사이 정이 들었다. 두 분은 필자의 건강과 무사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를 빌며 안아주었다. 서로 포옹을 하면서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살아온 삶의 무게가 느꼈다. 무척 고마웠다.

팜플로나 돌문 안으로 들어서니 주거용 아파트가 쭉 늘어서 있었다. [사진= 조해훈]

아침 7시에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아직 밤처럼 어두웠다. 알베르게에서 길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순례길이 성문(城門)처럼 생긴 큰 돌문으로 이어졌다. 돌문으로 들어가니 마치 중세의 어느 성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동래부의 부민(府民)들이 왜적의 침입 등으로부터 안전을 기하기 위해 부산의 동래성 안에서 주로 살았듯 팜플로나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팜플로나 시민들이 생활하는 아파트가 예상보다 많았다. 골목도 미로처럼 복잡했다. 쓰레기를 차(車)로 치우는 환경미화원들이 고생을 하고 계셨다. 자그마한 카페가 문을 열어 순례자들을 받고 있었다. 필자도 커피를 한 잔 주문해 서서 마셨다. 그렇게 아파트 길을 벗어나는데 시간이 제법 소요되었다. 앞서가는 순례자들이 더러 있었다. 팜플로나 도심지를 빠져나가는데 1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도시를 완전 벗어나자 날이 조금씩 밝아졌다.

팜플로나 시가지를 벗어나니 왼쪽에서 해가 떠올랐다. [사진= 조해훈]

대여섯 명의 외국인 순례자들이 큰 소리로 떠들고 웃으며 앞서서 갔다. 도심을 벗어나 도로 옆길을 따라 걷는데 가는 방향의 왼쪽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동쪽인 우리나라보다 서쪽인 스페인은 해가 한참 늦게 떴다. 해가 올라오니 날씨가 좋았다. 하늘엔 뭉게구름이 뭉실뭉실했다. 이어 산티아고 길 양옆으로 갈아놓은 밭이 펼쳐졌다. 밭 하나가 적어도 몇만 평은 될 것 같았다. 아무리 트랙터 등 기계로 밭을 간다고 하지만 저 큰 밭을 가는 농부의 고생이 클 것이다. 30분쯤 걸으니 본격적인 흙길의 소로가 이어졌다. 필자가 셀프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뒤따라오던 외국인 순례자들이 한껏 웃으며 손을 치켜올리며 자신들도 찍어달라며 퍼포먼스 같은 걸 했다. 말 한마디 않고 걷던 필자도 즐거워 덕분에 웃었다.

길가에 죽은 순례자의 무덤임을 알려주는 십자가와 다른 순례자들이 소지품을 걸어놓았다. [사진 = 조해훈]

그렇게 10여 분 걸어가니 길 오른쪽에 돌무덤 같은 게 나타났다. 그런데 아래쪽 돌 위로 작은 돌들을 10개 넘게 올려놨다. ‘재주도 좋네. 마치 김해에 허황후가 인도에서 올 때 가지고 왔다는 돌을 포개놓은 것(파사탑)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을 쌓은 형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거기서 또 한 30분가량 더 걸어가니 이번에도 길 오른쪽에 십자가 형태로 무덤을 만든 게 있었다. 이름까지 적혀 있는 걸로 볼 때 순례하다가 죽은 모양이리라. 여러 사람이 애도를 하면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십자가 위에 걸쳐놓았다. 필자는 자그마한 돌을 주워 쌓으며 잠시 묵념을 했다. 이때 시간이 오전 10시쯤이었다.

십자가 무덤 옆에 나무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지나가는 순례자가 “사진 찍어 드릴까요”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니 마을이 나타났고, 작은 카페가 있어 순례자들이 커피와 빵 등을 사 바깥에 앉아 먹었다. 필자도 커피를 한잔 마시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10시 25분쯤이었다. 스페인의 컵라면이 있었다. 필자는 커피와 컵라면 두 개를 사 한 개는 커피머신의 뜨거운 물을 받아 불리고, 다른 한 개는 가방에 매달았다. 저녁에 먹을 심산이었다. 속에서 컵라면은 받을 것 같았다. 스페인에 와 처음 먹는 이곳의 컵라면은 ‘REEVA’였다. 맛이야 한국 라면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래도 뜨거운 국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수프를 다 넣고 짭짤하게 국물까지 다 마셨다. 입에서 “아, 좀 살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용서의 언덕'에서 순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컵라면을 먹은 후 좀 쉬었다 일어나 다시 걸었다. 이때가 오전 11시 15분쯤이었다. 마을을 벗어나니 10분쯤 뒤에 들판 길이 이어졌다. 길 양옆으로 넓은 밭을 잔뜩 갈아놨다. 무얼 파종하려고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10분쯤 더 가니 오르막이었다. 자갈밭이었다. 계속 걸으니 풍력발전을 하는 큰 기계가 소리를 내며 왼쪽 산언덕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다. 낮 12시 5분쯤 언덕에 올라섰다. 이른바 ‘용서의 언덕’이라는 곳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많은 기대와 생각을 하게 하는 언덕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봉우리’ 같은 곳이었다. 철판으로 걷는 순례자들과 말을 탄 순례자들의 형상을 여럿 만들어 언덕에 쭉 진열해 놓았다. 순례자들은 그 형상들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용서의 언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마다 그 의미가 조금씩 달랐고, 사람 수만큼 나름의 의미가 많은 것 같았다. 필자도 ‘용서’란 단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맞은 편에 마치 우리나라의 독립문 형상 비슷하게 만들어놓은 곳 앞에서 쉬고 있었다. 팜플로나를 벗어나기 직전에 만난 유쾌한 외국인 순례자 중 리더격인 분이 필자의 옆에 앉았다. 오면서 몇 번 그 일행과 대면하고 눈인사를 했었다.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1962년 생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해 스페인으로 이주해 40년을 살았고, 지금은 스위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테니스 교사입니다. 이름은 알베르토 티토입니다”라고 했다. 필자도 간단하게 소개를 한 후 “이름은 조(JO)’입니다”라고 했다. ‘해훈’이라는 한글 이름이 어려워 성만 소개했다. 티토는 자식으로 하나 있다는 딸이 테니스를 치는 사진을 보여줬다.

그 언덕부터 자갈밭의 내리막이었다. 낮 12시 10분쯤에 내리막길에 내려서자 무슨 발굴을 한 후 안내판을 세워놓은 것 같았다. 티토는 성격이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다. 운동을 해서인지 몸도 근육질인데다 인물도 좋았다. 내려오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

필자가 “함께 움직이는 분들은 모두 일행입니까?”라고 물어보니, “모두 산티아고 걸으면서 만났습니다”라고 했다. 일흔쯤 되어 보이는 키가 작은 여성분께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셨다. “저는 포르투갈에서 온 아나라고 합니다”라며 소개를 하셨다. 계속 내려오면서 하늘을 보니 온통 구름이었다. 오후 1시쯤에야 평지에 도착했다. 트랙터가 밭에 일을 하러 가는지 길을 따라 가고 있었다. 오후 1시 반쯤 ‘우테르가(UTERGA)’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의 어느 집 울타리에 순례자의 사진과 배낭이 걸려있고 여러 신발에 선인장과 식물이 심겨있다. [사진= 조해훈]

마을 길을 따라 걷는데 어느 집 울타리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진과 배낭이 걸려 있고, 여러 신발에 선인장과 식물이 심겨 있었다. ‘주인의 감성이 보통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 깨끗하고 예뻤다. 오래된 돌담 앞 벤치에 마을의 나이 지긋한 여성분이 앉아 쉬고 계셨다.

다시 양옆으로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지대가 높다 보니 저 멀리 바라보이는 산들은 훨씬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후 1시 40분쯤이었다.

푸엔타 레 레이나 성당 위로 구름이 물결처럼 보인다. [사진= 조해훈]

그렇게 한참 비슷한 모양의 들판 길을 걸으니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4.5km’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오후 2시 30분쯤이었다. 곧이어 집 몇 채를 지났다. 이어 포도밭과 사료용으로 심은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마침내 오후 3시 50분쯤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했다. 성당이 보였고, 성당의 첨탑 위로 구름이 마치 물결처럼 주름져 있었다. ‘스페인의 구름이 멋있다는 말이 저런 걸 두고 한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르게는 성당에 딸린 건물이었다. 티토의 일행이 인근 카페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리 와서 합류합시다”라고 해 합석했다. 모두가 유쾌하고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이 자리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가브리엘(39)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아가씨인 클라라, 그리고 티토와 바르셀로나에서 온 다윗(39)이 함께 했다. 이들은 사진을 찍을 때도 티토가 “포토”라고 말하면 각자 포즈를 유쾌하게 취했다.

푸엔타 레 라이나의 카페에서 외국인 순례자들과 합석했다. 사진 왼쪽부터 필자, 가브리엘, 클라라, 티토, 다윗

좀 있다가 이탈리아 총각으로 구렛나루를 멋있게 기른 안드레아(31)와 바르셀로나 아가씨인 마리나가 합류했다. 안드레아가 “오늘 숙소에서 티토가 저녁식사를 준비할 건데 함께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티토가 직접 요리합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훌륭한 요리사입니다”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마트에 식료품 재료를 사러 갔다. 바로 마트로 가지 않고 다리를 건너 강을 구경하면서 갔다.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숙소 식당에서 티토가 요리했다. 숙소마다 사정이 다른데, 이 숙소는 요리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티토는 “파스타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 필자는 “좋아합니다”라고 했다. 티토가 한 파스타 요리가 정말 맛있었다. 필자는 오랜만에 맛있게 식사했다. 재료비 등 계산해 각자 4유로씩 냈다. 그렇게 식당에서 밤 10시까지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곳이든 알베르게는 밤 10시면 자동으로 불이 꺼진다. 뜻하지도 않게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의 오후와 밤을 그렇게 보냈다.

숙소에서 저녁식사로 티토가 요리한 파스타를 먹으며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다윗, 안드레아, 루카, 가브리엘, 필자, 마리나, 클라라, 티토. [사진= 알베르게 주인]

오늘 팜플로나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24.1km를 걸었다. 생장에서 푸엔테 라 레이나까지 총 90.2km를 걸은 것이다. 거리 계산은 ‘Camino Ninja’ 앱을 참고로 한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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