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보기보다 치밀하네. 나는 그간 아무래도 돈이 한 3,4천은 부족할 것 같아 당신이 나 몰래 숨겨둔 돈 몇 천이 있는 줄 알았어.”
“내가 무슨 돈이 있겠어? 아무튼 당신 말대로 6천을 융자받기로 하지.”
24. 또 다시 지주의 횡포(7)
그날 저녁
“그래 인자 자금계획이랑 향후계획이 좀 감이 잡히는군.”
하며 몇 시간이나 컴퓨터 앞에서 끙끙거리는 열찬씨를 보며
“영감, 뭐 하는데?”
들여다보던 영순씨가
“아이구, 골치야, 그까짓 땅 조금 사면서 무슨 계획서가 이리 거창해?”
“무슨 소리? 그런 큰일을 치르면서 아무 계획도 없이 해?”
“하긴 그렇기는 하지만 일자무식 아지매들도 땅 사고팔고는 그냥 돈 놓고 돈 먹기로 돈만 많이 벌던데?”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돈을 벌려고 투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건데 신중히 해야지.”
“평생터전이라? 그럼 우선 컨테이너 놓고 농사짓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집을 지어 들어간단 말이야?”
“우리 현서 다 키워놓고 그렇게 해야지. 내가 45년간이나 부산천지를 헤매면서 신불산 밑으로 돌아가는 꿈을 이루는 건데.”
“아무튼 고생 많소. 식자우환이라더니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일부러 사서 하네.”
하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당신 은행이고 신협이고 적금통장 몽땅 가져와 봐!”
“왜? 얼마나 돈이 있는지, 언제 만긴지 알아야 자금계획을 세우지.”
“하긴.”
하면서 통장을 한 뭉치 꺼내주는 영순씨를 보고
“빌려준 돈은 성준이 집 700만 원 뿐인가?”
“그렇지. 그런데 잘 받아질 지가 걱정이야.”
5층에 사는 성준이 아빠는 세관에 다닌다고 했는데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월급의 절반을 다달이 압류당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영순씨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다 쓰고 갚기를 반복했는데 지금은 월 2%를 주기로 하고 700만원을 빌려갔다는 것이었다. 벌써 20년쯤 전에 연산4동 연일시장 앞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는 정석이와 한 반 아이 영주엄마에게 당시로서는 거금인 500만원을 빌려주고 떼이게 되자 어느 날 퇴근한 열찬씨 앞에
“우짜꼬? 당신이 나가라면 나가고 있으라면 있을게.”
방금 보따리를 사서 집이라도 나가려는 영순씨를 보고
“왜? 무슨 일인지 말이나 해 봐?”
물어보니 장사가 안 된다고 몇 달 전부터 이자가 안 들어오던 영주엄마가 지난 밤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좀 검기는 해도 갸름한 미인 형에다 성격도 시원시원 붙임성이 있고 특히 눈매가 서글서글한 영주엄마는 어릴 적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몹시 절었다. 그래도 키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우렁 사내다운 영주아빠랑 영주와 밑에 동생하나를 두고 열심히 살았는데 운전을 하다, 노동을 하다 공장이나 남의 집의 일을 도우며 여러 직업을 전전하지만 한 번도 진득하게 견디지 못 하는 남편 때문에 늘 이집, 저 집 찾아다니며 급한 대로 얼마간 돈을 빌리고 갚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감당을 못 하고 도망을 친 것이었다.
“우짜겠노? 이미 터진 일. 당신이 나간다고 돈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라문 우짜노? 다시 보따리 풀고 같이 살까?”
“씰 데 없는 소리. 어서 저녁이나 주라. 배고프다.”
하고 소태 같은 밥을 씹으며
“우리는 500인데 전부 1억이 넘는다니까 나중에 시장사람들이 어디선가 찾아내고 머리를 뜯고 난리가 날 테지만 당신은 그러지 마. 갚을 수 있는 여력이 되면 어련히 갚을까 봐.”
하고 넘어간 데는 열찬씨가 명촌의 금찬씨에게 당시 공무원 월급 10만원의 열배가 넘는 거금 100만원을 소를 산다고 60만원을 주고 다시 땅을 받는다고 40만원을 더 주고 명목상 땅 한 마지기 200평을 담보로 계약서를 썼지만 매형 수진씨가 저 세상에 갈 때까지 돈 한 푼을 갚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않았다. 그 돈만 있었어도 훨씬 더 넓은 전셋집에 살고 적어도 5 년 이상은 더 빨리 조그만 슬레이트집이나 작은 평수의 아파트나 연립주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말 한마디 하거나 내색 한 번 않고 견디어준 영순씨의 깊은 속내가 고마워서였다.
“내년 6월말에 정년퇴직한다면서?”
“그래 말은 그 때 준다는데 빚이 어데 우리 집만 있겠나?”
“내 느낌에 주기는 줄 것 같다.”
“느낌이라니?”
“성준이 아버지 눈빛이나 거동을 보면 세관에서 직급이 높은 정규직은 아니고 단속원이든 뭐든 현장에 근무하는 사람 같은데 주말에 어디 따로 외출도 않고 늘 집에 붙어 있는 점, 또 순진하게 친구에게 보증을 서줄 정도면 사람은 양심 바르고 순한 사람 같아. 우리가 같은 정부미가족으로서 격의 없이 대해주기만 하면 자기도 최선을 다할 사람이야.”
“그래서 당신이 이자를 깎아주라고 한 거야?”
“그런 셈이지.”
작년 연말인가 월 2%씩 매달 14만원씩 꼬박꼬박 들어오던 이자가 몇 달이나 통장에 꼽히지 않자 영순씨가 찾아가서
“성준아, 너거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묻자
“일은 없는데 갈수록 살기가 어렵네. 가시나 하나 있는 거는 얼굴만 반들반들 한 기 직장은 댕기다 말다 제 시집갈 준비는커녕 매달 잡비나 뜯어 나가는 형편이고 늦둥이 성준이도 고등학생이 되니 학원비가 무지하게 들어가고...”
“그것 참! 힘 드는 거는 알지만 우리가 하루, 이틀 아는 사이도 아니고 명색 같은 공무원이라고 서로 믿고 의지한 세월이 얼만데?”
“그래 말입니더. 형님. 지금은 이리저리 휘둘려서 도무지 여력이 없고 내년 6월에 정년퇴직하면 그 때 퇴직수당 받아서 이자까지 갚을 게.”
“허허, 그것 참!”
하고 돌아와서 저녁에 퇴근한 열찬씨를 잡고
“여보 또 내가 보따리 쌀 형편이 되었다. 우짜꼬?”
울상을 짓는지라
“와? 이번에는 성준이집에 돈을 또 떼일 판이가?”
하고 자초지종을 물어
“많이 힘들 텐데 너무 궁지에 몰지 마.”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이렇게 하지. 이자를 좀 낮추기로.”
“어떻게?”
“원래 서로 돕는 차원에서 빌려준 거지 이자를 받으려고 빌려준 건 아니잖아? 또 그 이자로 우리 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하지만 살림 사는 입장에서 월 14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야.”
“그러니까 당신은 그간 몇 년 동안 잘 벌어먹은 것 아냐? 이자만 해도 원금의 절반이 넘게.”
“그건 그렇지.”
“설령 돈을 안 갚는다 해도 그렇게 화낼 일도 못 돼.”
“그러면 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야. 다달이 은행에 이자를 넣은 근거가 있으니까.”
“그래서?”
“우선 밀린 석 달 치 이자 42만원을 탕감하는 거야. 그리고 월 14만원의 이자를 10만원으로 해서 이달부터 다시 갚으라고 해 봐.”
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튿날 시키는 대로 하니 성준이 엄마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당장 이자 10만원을 입금했다는 것이었다.
근 두 시간이나 끙끙거리며
<명촌리 토지구입계획>
1.물건현황
★ 2필지 각각 992/8,895 김근순에게 소유권일부이전청구권 가등기
★2필지 모두 박순자, 유정숙, 신남숙에게 채권최고액 250,000천원에 근저당설정됨
2.구입절차
공부확인→현장확인→가격절충→계약(법무사입회)→대금지급→등기필증교부
3.장애요인(선결사항)
0.등기권리상 근저당및 소유권일부이전청구권 정리→매매계약시 법무사입회하에 일괄정리
0.경계불명확-구입후 별도 경계측량실시
0.대밭등 지목과 상이한 지상물정리-구입후 벌목및 정지
3.구입비용
0.287-1대 162*60=9,720
0.287-2전 155*53=8,215
계17,935-디스카운트300=17,635
0.계약시 반영(디스 카운트)할 점
-벌목, 정지경비-200
-경계측량경비-135
-대지만 구입하여야 함에도 2건 동시 매입
4.추가비용
1단계 885만원
0.측량-135
0.벌채, 정지-150
0.취득세, 등록세-500
(거래액 4.6% 단 농지원부 있으면 3.5%)
-전체 4.6%적용시 176,000*0.46=810만원
-전 157평 3.5%적용시 -783만원
★120,000적용시 552만원
110,000적용시 506만원
0.법무사비 및 등기수수료-50
0.소개비-50
나름대로 알고 있는 상식에 새삼 세무과에 전화를 걸어 세율까지 알아내어 비용을 산출하여 1단계 작업을 끝냈다.
그러고도 뭔가 미진해
추가자금소요
0.도로개설비용-?
0.측량:135
0.정지:150
0.펜스설치-150
---연말까지 필요한 돈 최소한 435만원
또
0.수도,전기-100
0.농막이전-100
5.단계별 자금소요 계19,700
1.구매대금 : 17,635만원
2단계: 측량, 벌목, 정지비용, 제세공과금 : 885만원
3단계: 도로, 울타리, 농막이전, 전기, 수도 :650만원
4단계:정화조, 화장실, 농막확장600
계획서를 작성하고 하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는데
“당신 안자요?”
“응, 자야지.”
“당신이 그래 미리 걱정한다고 어데 땅 사고 집 짓는 일이 그대로 되요? 일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그만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흘러가며 그때 그 때 알아서 하는 거지.”
“아니야. 아무 예측 없이 무대뽀로 밀어붙이면 십중팔구는 실패지.”
하면서도 영순씨까지 못 잘까 싶어 일단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와
6.자금조달 194,200
1.단계 184,000천원
0.예금인출등 :7,900만원
0.정석투자:4,000
0.농협대출: 6,000만원
0.가열찬 :500
2.단계추가확보 1,020천원
0.적금대출정산 300
0.성준이집 720
하룻밤에 기와집을 열두 채를 짓는다더니 별별 생각에 날이 훤히 밝았다. 영순씨가 현서를 보러 딸네집에 간 뒤에 다시
★예적금 인출내역
0. 성준이집 720
칸이 좁아 영순씨와 자신의 이름을 두자씩만 써넣으며 마침내 자금확보계획을 완성하고 다시
★잔금지급일 확보금액
예상계약금액 176,00-계약금기지급 10,000= 계약시 지참금액 16,600+@등기수수료등
준비금액 16,800(수표15,000, 현금300)
3.자금운용흐름
0.1단계확보184,000-토지구입176,000==잔액8,000+300적금정산분 이득수입채)=1,100
0.1,100-2단계885=215-3단계650=△435(성준이돈 담보 장모님 입채700+영서네500)=765-3단계지출600+@
0.3단계 정화조등 600지출 잔고165
★성준이집 720회수 장모님 빚 갚기
모든 일정과 계획을 완성하고 드디어
★적금정산일정
까지 작성하고 손을 털었다.
기왕 작심을 한 것 단번에 6천만 원을 대출 받아 중도금 날에 잔금까지 지불하고 장영희씨의 인감증명을 받아 넘기자 단 일주일 만에 등기필증이 날아왔다. 평수는 312평이었지만 필지 수는 자투리땅을 포함해 다섯 필지나 되었다.
이제 날씨도 추울 뿐 아니라 밭에 크게 거둘 작물도 없고 더더욱 힘들여 땅을 개간할 처지도 아니니 괜스레 춥고 외진데서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따신 밥 얻어먹고 작품을 하라는 영순씨의 권에 따라 주중에 하루쯤만 오리 밭으로 가기로 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