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4)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2장 서촌댁 유복자

이득수 승인 2022.01.03 17:28 | 최종 수정 2022.01.07 13:28 의견 0

2. 서촌댁 유복자 ①봉당골 서촌댁 내력

처서가 지나자 마구뜰로 불리는 덕천역의 마구뜰(馬位田)에 나락이 패고 진장만디, 봉당골 밭의 고구마도 뿌리가 들기 시작해 진작 보리양식이 달랑거리던 서촌댁 굴뚝에도 자주 연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진 뒤에 반쯤 마른 개똥쑥대, 따북대로 피우는 모기불과 달리 고구마를 삶는 연기는 단번에 다섯 아이를 키우는 홀어미 서촌댁 식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게 했다.

역시 먹어야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라 포도청나리나 포졸도 먹어야만 살았다. 먹어야 살고, 먹는 것이 사는 것이었고, 먹을 수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었고, 먹을 것이 있어 입을 다시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이었다.

“얼라는 조심해서 만져야 된다. 할매하고 상할매 심바람도 부지런히 하고 매사 눈치껏 행동해야 된다. 그리고 남정네들을 조심해라. 서서 오줌 누는 인간들은 나신 치맛자락만 보면 짐승이 된다. 알았제?”
“야.”

대답은 찰떡 같아도 늘 불안한 것이 홀어미가 딸아이 건사하는 일이었다. 거기다 키도 작고 몸매도 가늘지만 어깨에서 허리를 거쳐 엉덩이로 흘러내리는 뒤태가 늘 간들거리는 귀남이는 묘하게도 사내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무엇인가가 있어 어미는 늘 불안한 것이었다.

올해 열여섯 살이 되는 큰딸 귀남이는 버든마을 제일의 대농인 종갓집에 애보기로 보내기로 했다. 입 하나 줄이기 위해 웬만한 집안이라면 시집보낼 나이가 된 열여섯 꽉 찬 처녀를 마지못해 보냈건만 그나마 아침을 집에서 먹고 점심 한 끼를 얻어먹는 것이 전부였다. 저물도록 아이를 보다 정작 저녁 때는 집으로 돌아와 제 집밥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돌을 지난 아이가 떨어지지 않으려 해 하는 수 없이 종갓집에서 저녁을 먹고 초저녁에 아이를 잠재우고 돌아오게 되니 저녁 한 끼는 더 벌었지만 다 큰 애기를 밤길에 내놓는 꼴이라 요즘은 서촌댁이 저녁마다 골목에 서서 기다렸다가 데리고 오는 형편이었다.

며칠 전엔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종갓집 담을 돌아 대밭뒷길로 접어드는 살구나무그늘에 숨었던 동네 머슴 하나가

“봐라, 귀남아! 우리 이바구 쪼깨 하자.”

혼자 돌아오는 귀남이의 손을 덥석 잡으려는 순간

“누고! 어떤 불한당 같은 놈이 남의 처자 손을 잡을라카노?” 서촌댁의 걸걸한 목소리가 커다란 그림자를 앞세우고 득달같이 달려들자 한걸음에 도망치고 말았다. 마을의 어떤 사내보다 덩치가 큰 서촌댁, 그러니까 봉당골의 눈밭에서 늘 굶주리고 살던 복성이에게 갑오년 한겨울에 문득 나타나 다섯 아이를 낳아준 근본을 모르는 처녀, 키가 팔대장승만큼 큰 그의 처는 마을의 어느 사내보다도 힘이 센 아낙으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남이가 골목길을 돌아 팔랑거리는 머리채가 보이지 않자 서촌댁은 비로소 “후우-”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돌아섰다. 그까짓 동네머슴 나부랭이가 얼씬거리는 것쯤은 제 때 혼을 내주거나 일이 영 잘못 되어 배라도 불러오면 찬물이라도 떠놓고 예를 올려버리면 오히려 입 하나라도 줄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열다섯이 된 종갓집의 둘째 아들이 제 막내를 놀린다며 애기 업은 귀남이의 치맛자락을 졸랑졸랑 따라다닌 다는 것이 영 맘에 걸리는 일이었다.

갑오년에 녹두장군이 일어나 조선 천지를 뒤집어 흔든 이후 한양의 황제도 얼이 빠져 이리저리 헤매고 왜놈과 되놈은 물론 코가 크고 눈이 새파란 온갖 잡종이 횡행하여 이미 반상이 무너졌다지만 이 외진 시골마을에서는 아직도 썩어빠질 양반뼈다귀의 기세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동네 머슴과는 달리 만약 애보는 집의 도령에게 당한다면 상것이 제 먼저 꼬리를 쳤다고 발명도 못하고 쫓겨날 테니 공연히 몸만 버리고 그 위에 밥벌이마저 놓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아이를 보느라 경황이 없더라도 여자인 이상 깜빡 잊고 옷매무시가 흐트러져 속살이 나오거나 잠든 아이 옆에 함부로 드러눕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였어도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었다.

“선출아, 선출아!”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서촌댁이 큰아들을 부르며 아랫방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

해가 중천에 떠올랐건만 방안은 한밤중이었다. 큰 아들 선출이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지발 하고 눈 좀 떠라. 그라고 일 좀 하고 밥값 좀 해라. 집안에 장남이라는 것이 동생들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나?”
“...”

마지 못 해 일어나 앉았지만 눈가에 눈곱이 덕지덕지했다.

“봐라. 야야, 정신 좀 차려라. 니 누부랑 동생들이 다 밥벌이를 하러 나갔는데 명색 장남인 니만 손 묶어 논 사람처럼 꼼짝 안 하문 우짜노?”
“...”
"하다못해 밭에 가서 풀을 뽑던지, 새빗도랑에서 중태기를 잡든지 복걸에서 까재나 징거미를 잡던지 뭐든 묵고 살 방도를 해야 할 것 아이가?”
“...”

대답 대신 우후, 입을 크게 벌려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픽 쓰러졌다.

“일나라. 일나라. 밥 처묵고 잠만 자면 우짤끼고? 누가 평생 니 목구멍을 채워줄꼬?”
“...히, 힘이 없다. 밭에 나갈 저, 정도 없고...”
“뭐라꼬? 누는 힘이 펄펄 넘치나? 못 묵어 까라지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뭔가 움직여야 묵고 살 꺼 아이가?”
“나는 일이 겁난다. 나는 힘이 없다.”

눈을 감아버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약골로 타고나기는 영판 지 애비를 그렇게도 빼박았노? 아이고 내 팔자야!”

서촌댁이 쾅, 방문을 닫고 축담에 주저앉았다.

그랬다. 갑오년 그 난리 통에 지리산의 소문난 명포수인 아비는 범과 곰을 잡던 화승총을 둘러메고 동학당 남접에 들어가 선봉에 섰다고 했다. 열아홉 꽉 찬 나이가 되도록 아직 시집을 못 간 부처손이를 지켜내라고 두 살 많은 오라비 곰쇠(熊鐵)를 남겨두고 떠나며

“내 너희들 시집, 장가가서 손주 한번 안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는구나. 만약 내가 이대로 죽고 돌아오지 못 한다면 너희는 지리산을 내려가되 되도록 멀리멀리 동쪽으로 가서 변성명(變姓名)을 하고 살아라. 시국이 분분하면 걸식을 하는 것이 살아남기 좋을 것이고 경상도 말씨가 힘들면 벙어리 행세도 좋다.

내 천출인 머슴과 부엌데기의 아들로 태어나 백정의 딸과 야반도주해 지리산에 들어온 지 스무 다섯 해, 이 숲에서 다섯 명의 아이와 아이어미를 땅에 묻은 건 내가 수많은 짐승들의 목숨을 뺏은 업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게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단 한 번이라도 사람대접을 받고 사람처럼 살아보는 후천개벽의 길에 나선 내가 설령 죽더라도 너희들만은 괄시 없고 눈물 없는 세상에 살게 해 주고 싶었다. 설령 녹두장군의 후천개벽의 큰 꿈이나 내 작은 포부가 허사가 되어 내 시체가 들판에 흩어져 들개의 밥이 되어도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눈을 감을 것이다.

내가 일단 가담을 하게 되면 몇 안 되는 총잡이로 반드시 선봉에 설 것이라 여간 대운이 아니라면 얼마 못 가서 저승사자에게 잡혀갈 것이다. 그렇지만 곰쇠든 부처손이든 절대로 이 애비의 시신을 수습하느라고 찾아 나서지 말거라. 나는 이미 지리산, 덕유산 할 것 없이 평생을 천지강산을 떠돌던 사람이라 죽어서라도 그 혼백이 답답한 널에 갇히고 묘에 묻히기보다는 비에 젖고 안개에 풀리고 이슬과 달빛에 씻기기도 하면서 이 골짝 저 골짝 넘나드는 바람에 실려 천지강산 떠도는 것이 더욱 편안하고 제격일 터, 굳이 이 못난 애비의 묘를 쓰기보다는 지나가는 바람이나 안개나 겨울한철 이불처럼 세상을 감사는 함박눈, 싸락눈, 진눈깨비를 모두 아비의 숨결이나 손길이라 생각하여라.

재삼 부탁인데 내가 살아서 돌아오기 전에는 절대로 찾아 나서지 말거라. 그리고 좋은 짝들을 만나서 아들딸 많이 낳고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렇게 뚜벅뚜벅 산모롱이를 돌아간 아버지는 다시 기척이 없었고 두어 달 지나 소문이나 들으려고 장터목으로 갔다 온 오라비 곰쇠는 아무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하면서 지난번 황토현 싸움에서 키가 팔대장승 같은 전라도 포수 한 사람이 선두에 서서 관군을 수없이 사살하다 적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고 했다. 하마터면 그 총에 죽을 뻔한 관군의 장수가 치를 떨면서 수급을 베고 화승총을 수습해서 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그게 아버지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 아무 근거도 없는 헛소문일지도 모른다면서, 우리 아버지는 용력도 남다르지만 몸이 재빨라 아마도 살아계실 것이라고 미련을 가지며 확실한 소문을 듣는다고 부처손이가 아무리 말려도 부득부득 60리 산길을 걸어 구례장터까지 갔다 온 오라비는 소문이 틀림없다면서 이제부터 남매가 살아갈 길을 의논하자고 했다.

먼저 아비가 웅담과 호피를 팔아 모은 돈을 묻어놓은 곳을 아니까 우선 둘이 굶지 않을 정도로 돈을 지니고 떠나되 너무 많이 지니면 오히려 도둑이 붙거나 포졸의 의심을 받을 수도 있으니 약간씩만 지니고 가기로 하고 나중에 터를 잡은 뒤에 모두 가져가 전답과 가옥을 장만하기로 했다.

아비가 그렇게 신신당부하였지만 성정이 이름처럼 곰 같은 곰쇠는 아비의 목 없는 시신을 수습한다면서 부처손이더러 먼저 경상도 동해안 방향으로 떠나게 했다.

부처손이가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이십 전의 처녀로 겁이 나서 혼자 갈 수가 없다고 오빠와 동행할 것을 간청했지만 구례, 남원, 화개와 장터목 할 것 없이 지리산기슭의 장마당마다 이미 지리산의 왕포수의 슬하에 키가 엄청 큰 남매가 있다는 소문이 떠돈 지 오래 된 마당에 너와 둘이 같이 가다가는 포졸에게 잡혀서 곤장을 맞고 생목숨을 잃기가 십상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키가 한참 더 큰 누이에게 이 세상에 힘으로 너를 해칠 사내는 없을 것이니 모쪼록 몸조심하고 특히 입조심을 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너나 나처럼 덩치 크고 억센 사람이 아닌 엔간한 사내, 그러니까 얼굴과 손이 희고 성질이 유(柔)한 사내를 만나면 제발 좀 나긋나긋 곰살궂게 굴어 사랑을 받고 가시버시의 연을 맺어 아들딸을 많이 낳고 살라고 했다.

그러면 이것으로 오빠와도 끝이냐고 묻자 ‘그런 걱정은 말아라. 그 황토현이라는 곳에 가서 비록 목은 없더라도 특별히 키가 큰 시신에 대해서 알아보고 시신을 찾으면 찾는 대로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술 한 잔 부어 올려 자식도리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 둘은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이냐고 묻자 일이 끝나는 대로 키가 엄청나게 큰 처녀의 행방을 물어 쫒아 가면 설마 못찾을 리도 없지만 설령 만나지 못하면 이듬해 을미년 단옷날에 밀양 영남루(嶺南樓)에서 만나기로 하고 둘은 헤어졌던 것이었다.

그런 오빠와의 약속처럼 손이 희고 성질이 유한 사내를 만난 것이 바로 귀남이와 태어나자 말자 홍진으로 죽은 귀숙이, 선출이, 재출이, 또출이, 기출이의 육남매만 만들어 놓고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하고 죽은 봉당골의 조그만 사내 복성이었던 것이었다.

그러고서 또 17년. 이제 방안에는 지 애비를 꼭 빼닮은 키가 작고 힘이 없는, 그러나 얼굴과 손이 희고 성질이 유한 큰아들 선출이가 빈둥대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슬며시 방문을 닫은 서촌댁이 날이 작고 자루가 긴 가래를 들고 들로 나섰다. 바야흐로 이삭이 하얗게 패기 시작하는 논에 물은 충분한지, 혹시 우리구멍이나 방천이 나서 물이 새지는 않는지 궁금해서였다. 또 혹시 벌써부터 그 얄미운 참새 떼들이 덮치지나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을아낙 몇이 빨래를 하다 흘낏 쳐다보고는 다시 빨래에 열중하는 앞새매를 모르는 척 지나쳤다. <계속>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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