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9 봄날은 간다 - 뱀딸기 익어가는 들길에 서서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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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8:50 | 최종 수정 2021.05.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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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어느 새 산책로 풀 섶에 빨간 뱀딸기가 익었습니다.
우리 어린 시절 하도 많이 먹던 거라 저도 모르게 대여섯 개를 따서 게걸스레 먹는데 수분이 많아 상큼하면서도 달큼한 맛, 덜 여문 씨앗의 씹히는 맛이 옛날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요즘 먹을 것이 많아진 아이들은 절대로 이런 걸 먹지 않습니다. 제 손녀들도 예쁘고 신기하다고 바라보기는 해도 먹을 생각을 않고 그 어미들도 혹시 그걸 제가 먹일까 조심스레 쳐다보는 눈치고 냉장고에 며느리와 딸이 사다준 한라봉과 멜론, 키위에 망고까지 그득한 아내도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나 왜 이제야 이 들길에 섰는지, 아무도, 가족마저도 관심이 없는 기억속의 뱀딸기에 병든 몸을 함몰시키고 회한에 젖었는지 흐린 하늘 너머 신불산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어서 가자고 주변을 빙빙 돌던 마초는 마침내 저만큼 대밭뒷길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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