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0 봄날은 간다 - 속새풀
이득수
승인
2021.05.04 18:03 | 최종 수정 2021.05.04 18:08
의견
0
사진은 시골의 논둑에 많이 자라는 속새풀입니다. 보리 골에 많이 자라 아무리 뽑아도 자꾸 자라나 밭 매는 아낙들이 <독새>란 이름을 지은 모양입니다만 표준말 속새풀보다 <독새>가 훨씬 어감이 살갑습니다.
잎과 줄기가 모두 싱싱한 초록색인데 주황색 꽃이 피기 시작하면 질겨서 소도 먹지 못합니다. 봄나물이나 쑥을 뜯기엔 너무 늦은 4월 하순쯤 동네 처녀들과 아이들은 무논갈이에 지친 소를 위해 쇠죽에 넣을 이 독새를 베러 나갑니다.
청보리밭에 하얀 나비가 날고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는 오후 한나절을 날아가는 새를 봐도 웃는다는 사춘기 처녀들은 독새풀 한 줌씩을 걸고 낫을 던져 땅에 바로 꽂히는 사람이 몽땅 가져가는 <낫치기>를 하거나 새집을 찾고 하다못해 최무룡, 김지미와 엄앵란, 신성일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다 해가 질 때쯤 허겁지겁 바구니를 채우곤 했답니다.
조영남이 부른 번안곡 중에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라는 구절이 있는데 서양노래지만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꽤 울림이 깊습니다. 이 새파란 독새풀에 주황색의 작은 꽃이 피면 갓난아이 적 포대기나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융(絨)의 폭신한 감촉이 살아나며 가장 그리운 고향의 기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