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7 봄날은 간다 - 나 문득 신선이 되어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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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8:04 | 최종 수정 2021.05.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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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틀 내리던 봄비가 멎자 산과 들이 한층 새파랗게 음영을 더 해가며 바람이 한층 싱그러워졌습니다. 황사도 미세먼지도 송홧가루도 없는 깨끗한 공기와 상쾌한 바람, 아카시아꽃잎이 떨어진 오솔길에는 빨간 산딸기가 익어가고 근래에 돌아온 뻐꾸기울음소리가 정겨웠습니다.
아직 청년기라 오늘따라 노란 털빛과 검은 입주변이 한층 반들거리는 마초를 데리고 골안못 못둑에 올라가니 새파란 호수를 둘러싼 소나무와 잡목림과 낙엽송 숲이 서로 닮은 듯 다른 초록을 뽐내고 멀리 말무재 너머 간월산 봉우리가 아스라해 선경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못둑 아래를 돌아보니 모내기가 한창인 얼룩덜룩한 들판과 마을이 오밀조밀 펼쳐지고 국도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새삼 여기가 인간세계임을 알렸습니다. 못둑 하나 위의 선경과 아래의 인간세계의 경계를 저와 마초는 매일 가로지르는 셈이고 삼각뿔처럼 생긴 호숫가 산책로를 돌아오면 한동안 신선세계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셈이 됩니다.
옛날 깊은 산속에서 약초나 캐면서 불로장생을 꿈꾸며 느긋이 살아가는 은둔자들을 적송자(赤松子) 또는 포박자(抱朴子)라 부르며 신선으로 취급했는데 그 대표적인물이 갈홍(葛洪)이란 사람입니다. 또 화려한 왕궁에 맛을 들여 양귀비의 찬양시나 지은 시선 이백이나 위정자와 뜻이 맞지 않아 산에 들어간 상산사호(商山四皓)니 죽림칠현(竹林七賢)이니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짝퉁 신선이라 할 것입니다.
못둑의 맞은편에 이르러 반대쪽으로 파란 호수를 찍어 사진을 보니 호수위로 무지개처럼 아스라한 낯선 다리가 놓여 자신이 문득 축지법(縮地法)을 쓰는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훨훨 날며 노는 기분이 다 들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한 구름다리, 한가운데 휴게소까지 갖추어진 저 아스라한 다리는 누가 어떻게 놓았을까요? 정답은 지금 한창 줄기가 벋고 있는 칡의 새순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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