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41 봄날은 간다 -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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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3 16:14 | 최종 수정 2021.05.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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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구밖에 살지 않는 명촌리 사광마을 등말리 골티골짝, 명촌별서가 있는 우리 동네에 집집이 장미가 만발했습니다. 안주인의 취향에 따라 화단의 생김새는 달라도 붉게 타오르는 정염을 거부할 수 없어 텃밭의 고추와 마늘은 물론 작약과 수레국화, 엉겅퀴까지 절로 고개를 숙이며 여왕의 당도를 반기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제가 이사 올 때 꿈꾸던 <샤갈의 마을>이 이루어진 것도 같은데 명촌리 전체의 막내가 열 살이 넘어버려 어린이가 없는 마을이라 다시 세발자전거를 타는 어린아이가 나타나기까지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흥얼거리다 멋쩍은 생각이 들어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오래된 가사의 조각을 하나 찾아내었습니다. 오늘 저녁 주말 연속극이 끝나면 데크에 조명등을 밝히고 아내와 차를 한잔 마시며 불러보려고, 아니 불러줄려고요.
영사운드의 등불입니다.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고요히 타오르는 장미의 눈물
하얀 외로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회상의 먼바다에 그대 배를 띄워요
창가에 홀로앚아 등불을 켜면
살며시 피어나는 무지개 추억
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정답게 피어나는 밀감빛 안개
황홀한 그리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회상의 종소리를 그대 들어보아요
창가에 홀로앉아 등불을 켜면
조용히 들려오는 님의 목소리
님의 목소리 님의 목소리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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