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38 봄날은 간다 - 꿀풀과 이니스프리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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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0 18:28 | 최종 수정 2021.05.1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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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언양지방에서 많이들 먹었던 꿀풀을 소개합니다. 논둑이나 산기슭이나 무덤가, 특히 약간 찌질하게 물기가 많은 곳에 잘 자라는 저 자주빛 꽃을 따서 하얀 꽁지부분을 빨면 달달한 맛이 나서 심심풀이 삼아 자주 빨아먹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길을 가다 저 꿀풀을 보면 어릴 적처럼 다시 꿀을 빨아먹기보다는 영국의 예이츠란 시인이 쓴 <이니스프리 호수섬> 이라는 시의 ‘아홉 이랑의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소리 윙윙대는 숲 속에 홀로 살리라.’라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에도 아마 이 꿀풀이 있었을 것 같은, 지구의 반대쪽 영국, 그것도 호수 속의 작은 섬에 한국의 벽지 언양과 똑 같은 식물이 자란다는 생각이 이 감상적인 시인의 감성을 자극한 거지요.
그렇지만 인터넷에 이니스프리를 검색하면 전부 이니스프리를 상품화한 상업광고 뿐이라 예이츠란 이름을 검색해야만 시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나 이제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가련다.
거기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집을 짓고
아홉 이랑의 콩밭 갈며 꿀벌도 치며
벌소리 윙윙대는 숲 속에 홀로 살리라.
그러면 거기 평화가 있겠지.
안개낀 아침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때 까지
그곳은 밤중조차 훤하고 낮은 보라빛
저녁에는 홍방울새 가득히 날고.
나 이제 가련다. 밤이나 낮이나
호수가에 나직이 물 찰삭이는 소리
가로(街路)에서나 회색 포도(鋪道)위에서나
내 가슴속 깊이 그 소리만 들리누나.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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