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7 : 봄날은 간다 - 송화(松花), 구름이 되어

이득수 승인 2021.04.28 15:08 | 최종 수정 2021.05.04 07:55 의견 0
밝얼산 기슭 송화가루가 마치 산불 연기를 방불케 한다. [사진 = 이득수] 

오늘도 무심히 골안못에 산책을 나가는데 웬 노인 하나가 마초를 보고 아주 못 마땅한 눈길을 보내는 바람에 잔뜩 마음이 상해 못 둑에 올랐을 때입니다.

방금 호수 건너 밝얼산 기슭에 웬 노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산불인가 싶어 깜짝 놀랐지만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아 안심을 하고 혹시 황사가 심해 그런지 살펴보아도 한 곳에서만 집중으로 피어올라 바람을 타고 흐르는 것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한참이나 곰곰이 살펴보던 제가 문득 무릎을 쳤습니다. 그건 바로 수많은 소나무에서 노란 송화 가루를 일제히 뿜어 올려 제법 센 바람을 타고 구름처럼 떠가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시골에 태어나서 70평생에 처음 보는 광경,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올려도 될 만한 장관을 찍게 되어 참으로 가슴이 뿌듯해지며 마초로 인한 상심도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연근해와 심해에 이르는 지구상의 모든 산호초(사실은 동물)가 1년에 딱 한 번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려 일제히 폴립이라는 작은 알과 정자를 안개처럼 5대양에 빼곡히 쏘아 올려 동시에 수정을 시켜 파도를 따라 전 해역을 떠돌며 새로운 산호(珊瑚)를 착상시킨다고 읽었습니다.

사실 솔방울이 맺히기 전 소나무꽃은 모양도 향기도 다 보잘 것이 없는데 그 끝에 달린 노란 송화가루가 저렇게 산호초처럼 일제히 바람에 날아 동그란 솔방울을 탄생시키는 신비한 장관을 제가 목도한 것입니다.

살다보면 별 일을 다 본다고 하는데 명촌리에 들어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경험입니다. 오늘 하루는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습니다.

平里 이득수
平里 이득수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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