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1 : 봄소식 - 금낭화, 오동나무꽃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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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9 12:54 | 최종 수정 2021.05.0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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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은 복주머니를 여러 개 매달아 낭창낭창하는 흔들리는 금낭화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누구나 금방울이나 복주머니의 금낭을 떠올리련만 굳이 개불알꽃이란 희한한 이름을 지어준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도 꽤나 짓궂은 구석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초록빛 잎사귀와 분홍빛 꽃술, 휘늘어짐 모습이 아름답기만 한데 하필 개불알꽃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저도 수캐라고 함부로 나대다 마침내 중성화 수술을 당한 우리 마초를 닮은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 개불알꽃을 한참 바라보니 어쩐지 저 건너편 화단의 여중생처럼 청순한 흰 라일락꽃과 그 옆의 새댁처럼 활짝 핀 분홍빛 박태기콩 꽃을 자꾸만 흘낏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귀퉁이에서 머리를 하얗게 풀어헤친 할미꽃이 그 모습을 보고 허허 웃는 것만 같기도 하고...
여러분은 오동나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보통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의 상서로움과 옛날 대갓집 딸이 시집갈 때 혼숫감이던 <오동나무 장롱>을 떠올릴 것입니다. 또 나이가 지긋이 든 분들은 얼마 전 작고한 가수 최헌의 <오동잎>이란 노래도 기억할 것이고 언양지방 노인데들은 <오동나무 열매는 왈각달각 하고요 큰애기...>로 시작되는 언양의 속요(俗謠)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로 잎이나 목재로 또는 열매를 떠올리는 이 오동나무가 뜻밖에도 매우 아름다운 자줏빛 꽃이 핀다는 사실은 잘 모르실 겁니다. 사진에서 보듯 거대한 나무전체가 하나의 꽃동산이 된 저 진자주 빛 오동나무꽃을 보면 단순히 아름답기보다는 매우 우아하면서도 의젓하고 품격 높은 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자세히 보면 치명적인 은은함 이 불러오는 고혹적인 관능미(官能美)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사진은 철이 조금 지나 많이 퇴색되지만 갓 피어난 자줏빛 오동나무꽃은 마치 러시아의 대 소설가 도스토에프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사내들을 마비시키는 동토(凍土) 러시아의 미인들이나 전성기 로렌초가의 숙녀들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직접 한번 보시면 흠뻑 빠질 것입니다.
우리 집 3년생의 오동나무가 내년에는 제발 꽃이 피기를 기대하며 그 때 또 한 번 올리겠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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