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0 : 봄날은 간다 - 솜망이 꽃 전설(傳說)

이득수 승인 2021.04.14 19:36 | 최종 수정 2021.05.01 21:21 의견 0
솜방망이꽃
솜방망이꽃

작년에 벼를 심지 않은 묵정논에 노란 솜방망꽃 두 송이가 피었는데 땅이 기름져 그런지 꽃의 크기나 모양, 향기가 유난히 좋아 개나리, 민들레, 황매화, 죽장화, 생강꽃 같은 어떤 노란색의 봄꽃보다도 한층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옛사람이 꽃이나 나무의 이름을 지을 때 다 나름대로 그 뜻이 있을 텐데 하필이면 왜 이 꽃을 <솜방망이처벌>이란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솜방망이꽃으로 지었는지, 이 아름다운 꽃이 무슨 죄가 있나 하고 생각하다 문득 어떤 광경 하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한 5백년이나 천년쯤 전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을 것입니다. 등말리의 박씨네 처녀하나가 바들못 둑에서 나물을 캐는데 명촌리 아랫마을 김씨네 총각이 슬금슬금 다가와

“갑순아, 나물 뜯나?”
“예. 갑돌이오빠.”
“그런데 앞산에 뻐꾸기는 왜 저렇게 우는 걸까?”
“...”

못둑에 나란히 앉아 괜히 실없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처녀가 답이 없자

“우리 새목등에 흰철쭉 보러갈까?”

하며 목덜미가 발그래진 갑순이의 댕기끝을 슬쩍 잡아당기더니 이번에는 옆구리를 슬슬 찌르며

“오빠가 물포구(보리수) 따다 줄까?”

슬그머니 손을 잡으려는 순간

“싫어. 이 손 놓아!”

하면서 손에 쥔 노란꽃 한 송이로 갑돌이의 팔목을 탁 쳤는데 그게 바로 솜방망이꽃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갑순이의 앙탈은 솜방망이였을 것입니다. 한바탕 <나 잡아 봐라>가 벌어진 그해 봄이 가기 전에 동네혼사가 벌어지고 이듬해 봄에는 아이도 하나쯤 태어나고...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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