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3 : 봄소식 - 민들레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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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7 15:31 | 최종 수정 2021.05.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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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부른 동요에 <길가에 민들레 노란 민들레 우리 아가 저고리도 노란 민들레>란 가사가 있어 민들레는 봄에 피는 귀엽고 앙증맞고 가녀린 꽃 정도로 알고 있는데 실은 이 민들레가 지상의 모든 식물과 동물을 포함한 생명체의 으뜸인지도 모른답니다.
<아이를 잘 낳은 여자>이자, 또 <뮌헨의 노란민들레>의 주인공인 재독 종이인형공예가 김영희 씨가 낯선 이국땅에서 오롱조롱한 자식을 먹이기 위해 정원의 민들레를 캐서 나물로 무쳐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생명력이 왕성해 지구상 어떤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민들레는 영양은 물론 약성도 좋은 훌륭한 나물거리입니다. 그러나 맛이 너무 쓴 탓으로 동양에선 잘 먹지 않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식당에서 아예 민들레 샐러드를 주문할 정도로 보편화 된 모양입니다. 그런 민들레가 힘의 원천이 되었는지 그 아련한 동심을 유발하는 종이공예의 대가 김영희씨는 다시 새파란 벽안의 청년을 만나 금발의 아이를 낳고 다시 민들레를 뽑아 나물을 무치고...
민들레는 노란 민들레와 하얀 민들레 2종이 있는데 하얀 민들레가 토종으로 약성이 높답니다. 작은 솜사탕처럼 맺힌 홀씨의 날개를 타고 바다너머까지 비행하는 외래종 노란 민들레가 한라산 백록담에 까지 진출할 정도로 지표를 석권, 요즘은 하얀 토종민들레를 구경하기가 무척 힘들고 용케 구해다 심어도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민들레의 한자명은 포공영(蒲公英)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웅(英雄)이란 말은 식물의 으뜸인 꽃뿌리 영(英)과 동물의 으뜸인 수컷(雄)을 합성한 말로 식물은 민들레가, 동물은 사내가 으뜸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그 영웅의 어순(語順)으로 보아 민들레가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앙증맞은 소녀가 솜사탕처럼 둥근 민들레의 씨방을 후우, 불어대는 그 동화적이고 목가적인 정경의 홀씨는 하필이면 비염이 있는 사람의 코털 속에 터 잡기를 좋아해 알레르기에 약한 저를 봄마다 괴롭히고 있습니다. 우리 집 흰 민들레가 피면 다시 한 번 올리겠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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