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8 : 봄소식 - 씀바귀와 봄의 진객 표고버섯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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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9 14:11 | 최종 수정 2021.05.0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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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엔 냉이나 달래 못지않게 많이 캐던 나물인데 요즘은 너무 쓴맛이 나서 그런지 별로 찾는 사람도 없이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경상도에서는 씬냉이라고 부르는데 이른 봄까지 자주 빛의 동그란 잎으로 월동을 하고 날이 풀리면 금방 새파랗게 자라납니다.
마주 보는 두 개의 길쭉한 잎이 가위와 닮아 ‘가시개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한겨울 동안 땅속에서 조심스레 뻗어가는 동그랗고 긴 뿌리나 잎이 모두 그 이름처럼 첫 맛이 너무 쓰서 금방 정이 가지 않지만 뿌리나 잎에서 우유처럼 하얀 진액이 나오는 것을 보아 아마 영양가도 꽤나 높을 겁니다.
옛날에는 사카린이나 신아당을 듬뿍 넣고 나물로 먹으면 차츰 달콤하고 향긋한 뒷맛으로 입맛을 돋우기도 했습니다. 또 위장에 좋다고 일부러 씀바귀만 찾는 사람도 더러 있답니다.
이 씀바귀의 한자가 ‘쓰다, 괴롭다’의 의미인 고(苦)입니다. 인고(忍苦), 산고(産苦), 병고(病苦) 등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다 뭉뚱그린 바로 고생(苦生)의 고(苦)자이지요. 얼마나 쓰서 그런 글자를 썼겠냐싶지만 고진감래(苦盡甘來)란 말이 있듯이 위장이 약한 분들은 한 번 장복(長服)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지난해 비가 안 와 통 재미를 못 보던 표고버섯이 올해는 봄비가 잦아 소복하게 돋아났습니다. 초봄에 나는 첫 물 버섯으로 하얗게 등딱지가 갈라진 투명한 버섯이 백화고로 불리는 최상급 버섯입니다. 딸과 손녀가 신기한 표정으로 한 소쿠리 채취했습니다.
사위도 안 준다는 첫물 정구지를 기꺼이 주겠다는 제안에 우리 김 서방이 봄 도다리와 아나고(붕장어)와 개상어회를 사와서 정구지 생채와 표고버섯을 곁들인 봄기운 가득한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딸네 식구가 돌아가고 나서 이만하면 제 노년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절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렸습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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