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12 : 봄날은 간다 - 새가 날아든다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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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5 11:17 | 최종 수정 2021.05.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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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산골을 <꽃피고 새가 우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산 아래 살아보면 새가 우는 소리를 듣는 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까막까치나 참새, 비둘기와 직박구리 같은 몇 종의 텃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새들이 가을만 되면 따뜻한 강남으로 월동을 하러 떠나기 때문입니다. 또 매나 올빼미, 황조롱이 같은 은밀한 포식자 맹금류는 울거나 기척을 내지 않고요.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이나 손님이 온다고 길조(吉鳥)로 여기는데 산 아래 살아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산뜻한 입성과 달리 친구라곤 빛바랜 검정외투 한 벌에 목소리도 거친 까마귀 밖에 없는 까치가 번식기에 마을에 나타나는 낯선 사람을 보고 자기의 알이나 새끼가 있는 둥지근방으로 오지 말라고 경고음을 낼 뿐인데 그걸 사람들이 손님이나 좋은 소식이 온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조석으로 대하는 이웃영감이나 애견 마초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고 조심도 없지만 밭에 옥수수씨앗을 뿌리든지 쓰레기장에 먹을 것을 버리면 귀신처럼 찾아와 먹고 가다 가끔씩 마초에게 혼이 나는 경쟁상대일 뿐...
우리가 보통 새가 지저귄다고 하는 것은 강남 갔던 철새들이 돌아와 저마다 짝짓기를 위해 수컷이 높은 소리로 유혹을 하고 암컷이 낮은 소리로 화답을 하며 둥지를 짓고 알을 품어 새끼를 기르면서 열심히 벌레를 잡아다 먹이며 나누는 대화로 초창기에는 구애의 연가(戀歌)이지만 나중에 새끼들이 커서 먹이구하기에 지칠 때쯤은 고달픈 신세타령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추석을 전후로 제비를 비롯한 철새들이 모두 떠나가면 숲은 적막에 빠지고 간혹 들리는 새소리는 돈키호테처럼 나대는 장끼가 인기척에 놀라 화려한 날개와 날카로운 목소리로 경고음을 내는 것이고 좀 깊은 산에서 똑딱똑딱 들리는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는 소리도 사람이 가까이 가면 이내 신경질적인 따르르딱딱 따르르딱딱 경고음으로 변하고 맙니다.
지난주 오후였습니다. 골안못을 돌아 좀 깊은 말무재 계곡으로 두릅을 찾아 들어가는데 문득 낯선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거짓말 같은 새소리를 유심히 들어보니 자주 듣는 새소리도 아니고 새소리 자체가 곱거나 다정하지도 않으면서 누구를 부르는 듯한 톤이라 혹시 휘파람새가 아닐까 하고 또 함부로 이름을 지으며 웃었습니다. 한참이나 골짜기를 헤매다 돌아오는 길에 이번에는 또 낮선 새소리가 하나 들려왔는데 훨씬 낮고 차분했습니다.
처음 운 놈이 암컷을 부르는 수컷이고 두 번째가 화답을 하는 암컷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맞을 수도 있지만 터무니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울창한 숲속에서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는 새소리를 들으며 함부로 그 모습이나 이름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여간이 아닌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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