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5 : 봄날은 간다 - 만약 김소월이 여자였다면

이득수 승인 2021.04.08 16:20 | 최종 수정 2021.05.01 21:24 의견 0
서울 왕십리에 있는 <왕십리> 시비와 김소월 흉상 ⓒ세종경제신문

김소월의 시를 가만히 읽다보면 <진달래꽃>, <금잔디>, <초혼> 등 거의 모든 시가 매우 여성적인 감각으로 쓰여 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천생여자로서의 가냘픔과 애잔함이 풍기는 가락들, 억지로 그가 남자임을 알 수 있는 시는 겨우 <엄마야, 누나야> 정도 일뿐. 요즘 철없는 청년들이 연애를 할 때 여자 친구에게 이구동성으로 꽃길만 걷게 해준다고 하는데 그게 벌써 근 100년 전에 김소월이란 가녀린 여인(?)의 죽어도 아니 눈물을 흘린 <영변약산 진달래꽃>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소월 시(詩) 해설을 보니 문득

"민요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라고 나오고 있는데 아니, 이게 무슨 풍뎅이 불 끄는 소리란 말인지, 그냥 님을 잃은 여인처럼 애잔하고 슬픈 가락이지만 한 순간에 만인의 심금을 울리는 가장 한국적인 시라고 하면 될 일이지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시의 율격은 삼음보격을 지닌 7·5조의 정형시로서 자수율보다는 호흡률을 통해 자유롭게 성공시켰으며, 민요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독창적인 율격으로 평가된다. 또한, 임을 그리워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의 목소리를 통하여 향토적 소재와 설화적 내용을 민요적 기법으로 표현함으로써 민족적 정감을 눈뜨게 하였다."

라며 사자가 풀 뜯어먹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해설자, 평론가는 그냥 쉽고 간단한 것을 괜히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먹고사는 사람들인지. 그냥 애닲다고 하면 될 일을, 그냥 그립다고 하면 될 일을...

김소월

만약 소월이 여자였다면 갸름한 얼굴에 비녀를 꽂은 쪽진 머리가 맵시는 있지만 매우 가녀리고 애잔한 느낌이 날 것 같습니다. 굳이 그림으로 따지면 그냥 바라보기만 하면 눈물이 돋을 것 같은 장욱진 화백의 <빨래터>에 앉았거나 아이를 업고 걸리면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 또 6·25때 부산으로 피난을 왔다면 자갈치난전에 생선함지를 놓고 앉아 도무지 부끄럼을 주체하지 못해 고개를 외로 꼰 여인, 한 다섯이나 일곱쯤 아이를 낳아서 고생고생 키우는 그런 조선의 여인일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내 시의 조상(祖上)이 되고 화석(化石)이 되어준 시의 할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 빛나는 봄의 발칙한 <소월타령>을 마칩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