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 : 봄날은 간다 - 백모란 마침내 빛을 보다

이득수 승인 2021.04.12 11:15 | 최종 수정 2021.05.01 21:22 의견 0
명촌별서 화단에 핀 백모란
명촌별서 화단에 핀 백모란

올해 날씨가 좋아 그런지 지난겨울 <유박>이란 거름을 듬뿍 주어서 그런지 3년 내내 비실거리던 섬약하고 창백한 꽃 백모란이 새파랗게 잎을 피우며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더니 새로 돋은 새끼 모란까지 두 포기에서 무려 열개의 꽃송이가 활짝 피었습니다.

목련이나 백합이 싱그럽거나 순결한 느낌이라면 백모란은 가장 내밀한 백색으로 성장(盛裝)한 절정미인의 눈부심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모란에는 향기가 없어 나비가 찾지 않는다고 했지만 붉은 암술을 수술이 둘러싼 황금빛 화심(花心)에 몇 마리의 벌이 종일 꼼짝도 않고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꽃가루와 꿀은 풍성한 모양이었습니다.

거기다 옆에 있는 서양꽃의 왕자 붉은 튤립에도 조금도 꿀리지 않아 과연 김영랑이 그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아내가 오늘 같이 공기도 시원하고 달도 밝은 날 잔디밭에서 커피를 한잔 하자고 졸라 순순히 일어섰습니다. 모기를 심하게 타는 아내는 5월 중순쯤 모기가 나와 11월에 들어갈 때까지 잔디밭에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침 열나흘 날이 동그랗게 떠올라 무심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뜻밖에도 꽤나 선명하게 나왔습니다. 아마도 날씨가 좋아서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그새 화단의 백모란이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으려다 기왕이면 달도 같이 잡기로 했습니다. 전문가가 보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사진이지만 동그란 달과 하얀 모란이 있는 사진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처럼 백모란이 만개한 날, 그날은 참으로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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