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4 : 봄날은 간다 - 김소월은 과연 행복했는가?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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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8 16:05 | 최종 수정 2021.05.0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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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과 두보, 왕유와 도연명, 또 서양의 라아너 마리아 릴케와 우리의 김소월과 윤동주, 시가 아름다울수록 시인의 삶이 피폐하고 서러운 것은 무슨 조화일까요? 심지어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성내지 말라>던 푸시킨까지 어이없이 요절(夭折)을 하는 판에 말입니다.
소월도 사람인 이상 그가 어떻게 태어나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다갔느냐를 알아보면 그 역시 서럽고 외로운 한국인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천생시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904년, 지금부터 117년 전에 태어난 김소월이 불과 18세가 되는 1922년에 진달래꽃을 발표했다는 것을 보면 과연 그는 타고난 천재시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범하는 오류, 시인은 처음부터 가난하고 불행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광산업을 하는 유복한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관서지방의 명문인 오산학교에서 민족의 지도자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을 교장으로, 안서(岸曙) 김억 시인을 스승으로 받들며 민족정신과 시심을 키워나간 행운아입니다. 그리고 부잣집 자제답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식민지의 부자가 다 그러듯 한 때 친일주의자로 의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시를 써나가던 한창시절에 그는 관동대지진으로 야기된 조선인 박해를 피해 고국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할아버지의 광산업이 기울어 이중고에 빠집니다. 이후 신문사지국을 운영하는 등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지만 힘에 붙여 고향 곽산으로 돌아가 34세의 젊은 나이에 아편을 먹고 자살하고 맙니다. 펜만 손에 잡으면 지고지순의 시가 쏟아져 나오는 유리구슬처럼 영롱한 그의 가슴은 불행히도 수수깡처럼 연약해 이 땅의 보통사람이면 이미 이골이 났을 반만년이나 숙달된 생활고 하나를 못이겨 세상을 등졌으니 그게 바로 시인의 한계인 모양입니다.
우리 어릴 적은 물론 지금도 문학하는 사람은 배를 곯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쩌면 우리 시의 선구자인 김소월이 생활고로 자살하면서 생긴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 조금도 때 묻지 않고 순수하고 천진한 그 나이에 그가 현실과 타협해 맘에 없는 시를 쓰지 않고 차라리 아편을 먹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후세들에겐 다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너무 오래 산 시인들이 어용문인이 되어 권력에 야합을 하거나 문단의 실세로 갑(甲)질을 하며 추하게 늙어가는 것(심지어 성희롱을 일삼으며)을 보며 혀를 차다가 시도, 삶도 맑고 투명해 한없이 애틋한 그리움으로 남은 소월의 시를 보면 곧바로 마음이 맑아지니까 말입니다.
봄만 되면 진달래가 피고 김소월이 떠올라 우리는 서럽습니다. 그러나 그 서러움이 있어 한없이 감미롭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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