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2 : 봄날은 간다 - 나보기가 역겨워 떠나간다고

이득수 승인 2021.04.05 14:52 | 최종 수정 2021.05.01 21:26 의견 0
신불산 진달래 [사진 = 이득수]
신불산 진달래 [사진 = 이득수]

올해도 신불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봄이 와서 진달래가 피는 것인지, 진달래가 피어서 봄이 오는 건지, 이 땅의 봄은 붉디붉은 진달래가 삼천리강산을 덮어가는 시리도록 붉은 그리움의 꽃불인 것이다.

진달래가 피는 봄이면 웬만한 한국인은 김소월을 떠올리고 <진달래꽃>의 한 소절을 읊조리게 된다. 골안못을 돌며 밝얼산 가득한 진달래꽃을 보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하며 읊어보다 문득

이런? 이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에 웬 <역겹다>는 거칠고도 비린 단어가 다 들어간 것일까?

하고 집에 돌아와 한글 사전을 찾아보니 <역겹다>는 매스껍다, 혐오스럽다, 라는 뜻으로 주로 음식 맛이나 냄새가 맞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역(逆)자가 한자로 거꾸로 라는 뜻으로 원하지 않는 맛이나 냄새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역겹다는 말은 아무래도 좀 심한 말인 것 같아요. 그냥 좀 불편하거나 성가시거나 멋쩍다 정도로 하면 될 것을 굳이 경상도 사투리로 <앵꼽다, 고일받다> 등 단어만 떠올려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그런 단어를 택하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역겨운 단어를 썼음에도 <진달래꽃>의 울림이 더 없이 좋다는 것이라는 겁니다. 만약 고등학생의 백일장에 그런 단어를 썼으면 단번에 낙방을 할 단어가 소월이 씀으로서 마냥 울림이 좋아져 모든 한국인이 그게 제 이야기인 양 누구는 떠나가는 사람이 되고 누구는 <죽어도 아니 눈물을 흘리는>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내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라>라고 할 내용을 <죽어도 아니 눈물을 흘린다>는 말은 도대체 그게 흘린다는 말인지 아닌지, 세상에 도대체 <아니 눈물>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래도 신기한 것은 <역겨워>가 있어 사람마음을 진달래꽃이 가득한 고갯길로 끌어드리고 <아니 눈물>을 흘려 괜히 슬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소월만이 쓸 수 있는 시, 소월만의 진달래꽃인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소박데기 아낙의 버선 짝처럼 보이기도 하는 우리나라는 그렇게 여인들의 한이 많아 한(恨)반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건 어쩜 진달래꽃의 땅이기도 하고 김소월의 땅이기도 해서 그런 것일 겁니다. 외로운 시인의 고향 평안도 영변과 약산에 핀 진달래가 정주, 곽산과 삼수갑산을 거치고 진두강을 건너 함경도와 강원도 경상도와 전라도를 거쳐 제주섬까지 붉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가기 전에 이 땅에 태어난 최고의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한번 읊어보기 바랍니다. 시를 덧붙입니다.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平理 이득수 시인
平里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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