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19)장미꽃이 핀 들창문을...
이득수
승인
2020.05.14 15:09 | 최종 수정 2020.05.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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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은 '꽃의 여왕 장미'가 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 년 내내 꽃이 떨어지지 않는 명촌별서지만 지금은 5월의 한가운데라 여왕 장미를 호위하듯 여왕보다 더 예쁜 갖가지 꽃이 피어나 장미의 눈부심이 묻힐 정도입니다. 이런 날은 아주 옛날 도미라는 가수가 불렀던 〈청춘 부라보〉의 가사를 저도 몰래 흥얼거리게 뵙니다.
장미꽃이 피는 들창문을
단둘이서 바라 보며는
장미꽃이 피는 저 언덕길을
즐거웁게 걸어 가며는
어드메서 들려오는 사랑의 노래
그 누구가 불러주나 행복의 노래
바람결에 쏟아지는 연분홍 테프
꽃잎처럼 날러서 온다네
청춘도 한때 사랑도 한때
다 같이 잔을 들고 부라보, 부라보
그렇습니다. 봄이 와서 행복한 건지, 꽃이 피어 즐거운 건지 굳이 따질 것 없이 우리는 하늘이 맑고 햇볕이 따스하고 온갖 꽃들이 가득한 축복(祝福), 오늘 하루를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집 화단 '파우스티나의 뜰'에는 무려 20여 종의 꽃이 피었지만 후덕한 제 아내를 닮아 그 중 풍성한 꽃 7종과 꼬마딱지 세 손녀를 닮은 앙증맞은 꽃 세 종류를 같이 소개할까 합니다.
먼저 지구상 모든 꽃의 여왕인 붉은 장미를 비롯해 여왕을 시샘하는 노란 장미에 저 역시 세상 어느 꽃에 뒤지지 않을 만큼 풍성하고 아름답다고 자처하는 자주색 작약에 우리 집 특산 토종 철쭉(밝얼산 기슭에서 제가 캐다 심은 지 4년 만에 만개)에 아프리카에 나타난 차디찬 북구라파 처녀처럼 써늘한 눈매에 머리채가 치렁치렁한 보라색의 독일 붓꽃과 부처님 오신 달의 상징으로 부처님의 뒤통수를 닮았다는 하얀 불두화(佛頭花)에 그 부처님을 싣고 갈 꽃수레를 장식할 보라색과 흰색의 수레국화도 한창입니다.
그리고 이 마을이름이 명촌리인데 그 '명'자가 보통 생각하는 밝을 명(明)이 아닌 바로 새가 운다는 울 명(鳴)자 명촌리입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꽃이 만발한 날은 새 역시 여러 종류가 아주 밝고 정답게 지저귑니다.
여러분은 산에만 가면 늘 새가 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새들은 매나 황조롱이 같은 맹금류의 위협에 늘 노출되어 있어 참새나 비둘기 같은 텃새는 일년 내내 소리, 소문 없이 그냥 조용조용 살아갑니다. 우리가 산기슭에서 여러 종류의 새소리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것은 주로 5월에서 6월 사이로 강남에서 월동한 여름철새들이 무리지어 들어와 바야흐로 짝짓기를 하고 둥지를 지어 알을 낳기 위해 동시다발로 울어대는 한 두 달 사이입니다. 겨울산은 언제나 맑고 투명한 고요가 지배할 뿐 새소리가 일절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온갖 꽃 들이 다 피고 온갖 새들이 다 우는정말로 아름다운 봄날, 그야말로 백설희의 〈봄날이 간다〉의 그런 봄날인 것입니다.
제 아내의 세례명을 딴 '파우스티나의 뜰'을 저는 그래도 선비가 사는 집답게 파우원(破憂園, 근심걱정을 잊어버리는 뜰)로 짓고 언제 국한혼용의 표지판도 세울 생각입니다만 늘 구상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여러분들도 저 꽃들을 보며 코로나19나 경기침체 등 세상의 모든 애로사항을 다 잊으시기 바라며 꽃 이름과 함께 차례로 사진을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1. 계절의 여왕 붉은 장미(薔微)
2. 여왕보다 예쁜 시녀 노랑 장미
3. 자줏빛 작약(芍藥)
4. 보랏빛 독일 붓꽃
5. 신토불이 철쭉
6. 부처님 모습 불두화(佛頭花)
7. 부처님을 싣고 갈 수레국화 2색(보라와 흰색)
8. 한국여성이 개량했다는 <미스킴 라일락>
9. 보랏빛 야생화 봉삼(아주 희귀한 꽃임)
10. 너무나 앙증맞은 일본 찔레꽃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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