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이어온 〈간월산 산책〉이 필자의 의욕과잉으로 여기저기 너무 멀리 끌고 다녀 언양사람이 아니고는 다소 따라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꼭 특정 시설이나 사건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간월산 기슭을 산책하다 마주친 아주 작은 풀 한 포기나 새 한 마리, 또는 무심한 바위를 통한 느낌도 가끔 싣고 때로는 제 기억의 창고 깊은 곳에 오래 묻어둔 이야기도 꺼내 보며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까 하니 계속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에 보이는 석물(石物)은 주로 궁궐이나 왕릉에 호위용으로 서 있는 문인석(文人石)입니다. 얼굴이 좀더 우락부락하고 가슴에 홀(笏)이 아닌 칼을 든 무인석(武人石)도 있어 보통 문무 한 쌍을 이루는데 여기는 좀 특이하게 문인석 둘이 짝을 짓고 있군요. 이와 유사한 석물로 이정표 역할을 하는 돌장승(石長生)도 있고 통도사 석장생처럼 주로 경계 표시용은 아예 장생이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여기에다 돌부처는 물론 석조사천왕이나 해치(獬豸)상처럼 경계와 장식, 주술적 요소를 띤 것도 있고 사람이나 동물 비슷하게 생긴 돌(주로 검정색)을 세워놓고 '벅수'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런 석물전체를 또한 벅수라고 통칭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는 불교나 석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이 '벅수'를 통하여 바보, 천치, 축구, 등신, 병신 같은 세상의 모든 '바보'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각이 모자라거나 언행이 서툰 사람을 보통 '바보'라 부르고 그와 유사한 개념으로 경우에 따라 벅수, 천치, 축구, 등신, 병신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기초단어가 되는 '바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우선 '바보'라는 단어는 한자(漢字)가 없으니 그 자형(字形)을 살피거나 유래를 추측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럼 순수한 우리말의 쓰임새로 그 답을 찾아야 하는데 우선 바보의 '보' 자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발의 '보' 자는 떡을 잘 먹는다고 '떡보', 울기를 잘 한다고 '울보', 또 활을 잘 쏜다고 '활보'라 부르고 신체적 특징에 따라 '곰보', '째보', '먹보'로 부르기도 하고 흥부를 흥보라 할 때처럼 이를 한자와 결합해서 쓸 때는 주로 보통의 사내라는 뜻의 보(甫)자를 붙입니다.
그렇다면 '떡보'의 예에 따라 우리는 우선 밥을 잘 먹어서 '밥보'가 발음상의 편의에 따라 '바보'가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히 경상도지방에는 '밥 장군이 일 병신'이라고 밥을 많이 먹으면서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을 비꼬는 속담이 있는데 이처럼 밥(投入)에 비해 일(成果)이 미진한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는 것이 상당히 일리(一理)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며느리까지 '입 아픈 며느리는 두고 눈(손) 아픈 며느리는 쫓아낸다.'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노동과 식량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던 시절에 가장 무능하고 부족한 사람이 바로 밥만 많이 축내는 '바보'인 것입니다.
그럼 등신(等身)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무슨 일에 얽매이거나 급한 일도 없이 그저 느긋하게 사는 사람, 그러면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고 하고 때로는 '산부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화를 낼 줄 모르는 무능함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지요.
'등신(等身)'은 옛날 부처를 만들 때 석가님의 실제 몸매와 같은 크기로 만드는 것을 등신불(等身佛)이라 하는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세월이 흘러 고명한 스님의 사리를 담아 추모하는 부도(浮屠-묘탑 또는 사리묘탑)를 만들 때 역시 그 스님의 몸피와 같은 크기로 만드는 것을 등신(等身)이라 했는데 철없는 상좌가 생전에 그렇게 엄하고 무섭던 노스님의 부도에 손가락질을 하거나 욕을 해도 아무 말을 안 하니 그걸 '등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벅수'도 이와 비슷하게 유래된 말인데 돌부처나 장승은 사람들이 눈을 흘기거나 발길질을 하고 지나가던 개가 영역표시로 한 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도 일체 말이 없으니 역시 바보취급을 받을 수밖에요. 심지어 사진의 오른 쪽 문인석처럼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돌부처의 코를 갈아 물에 타서 마시면 배태(胚胎)를 한다는 속설 때문에 돌멩이로 문질러 돌가루를 떼어가도 아무 말이 없었으니 '세워 놓고 코 베어 간다.'는 속담이 다 나오고요.
이밖에 '천치(天癡)', '병신(病身)'이라는 말이 있는데 '천치'는 타고날 때 지각이나 판단력이 없는 사람으로 요즘말로 지적장애인 또는 저능아를 말하고 '병신'은 곱사, 절름발이, 조막손이처럼 신체기능이 비정상적인 지체장애아를 말함인데 요즘은 교통사고등 사고로 다친 사람을 포함해 모두다 장애인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또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을 '소 새끼'나 '벽창우(碧昌牛)'로, 지능이 낮은 사람을 '닭대가리', '새대가리'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그렇지만 모든 동물 중에 가장 기억력이 떨어져 낚싯바늘에 걸렸다 요행으로 빠져나오던 붕어가
“야, 큰일 날 번했다. 내가 다시 지렁이를 무나 봐라!”
하고는 단 3초 후면 까마득히 잊고 다시 미끼를 문다는데 그 붕어는 너무 단순하고 귀여운 데다 맛까지 좋은 횟감이어서 그런지 그런 모욕적인 칭호는 없군요.
그 밖에 '축구'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짐승 죽은 귀신이란 뜻의 '축귀(畜鬼)'에서 온 말 같습니다. 짐승이란 말 자체가 저능과 무능을 뜻하는데 거기다 손발도 없는 귀신 '축귀'라니 오직 만만한 존재이겠습니까?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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