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사지 금당터 조금 못 미쳐 왼쪽 비탈진 언덕에 크고 작은 바위가 두런두런 자리 잡고 크고 작은 노송 사이로 아주 단정하고 편안한 석탑이 하나 보입니다. 금당의 앞을 좌우로 지키던 두 3층탑 중의 하나로 북쪽에 있어 북쪽 탑으로 부르기로 합니다.
이 탑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노송과 바위와 잘 어울려 절로 하나의 풍경, 저절로 불심이 일어나는 선경을 연출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불국사의 다보탑이나 석가탑, 심지어 동로마 비잔티움과 당나라사이를 오가던 캐러밴(隊商)이 동서양의 건립양식을 혼합해 세운 중국서안(西安)에 있는 대안탑은 물론 신라의 감은사지, 장항사지 등의 온갖 폐사의 탑, 또 운주사의 천불천탑에 캄보디아의 해골탑까지 다 보았습니다.
그 많은 탑들이 대체로 절간의 앞이나 전망이 트인 공간에 당당하게 자리 잡아 불공과 염불의 대상이 되는 데 비해 저렇게 바위와 나무 속에 숨은 듯 고요한 탑은 처음 봅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불심이 있고 불법을 읽은 사람이라면 저 조그만 탑이 엄청난 규모에 높은 대웅전에 갖가지 부속시설과 암자에 말사까지 거느린 명산대찰(名山大刹)과 수백 명의 승려와 대중들의 행렬보다도 더 오롯이 불법의 향내가 풍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우리는 왜 절마다 탑을 세우는지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도어로 파고다로 불리는 탑(塔)은 인간은 저 아득히 높은 하늘, 거기 해와 달과 별이 인간세상을 내려다보며 그 성쇠를 주관하며 구름이 흐르고 무지개가 걸리는 그 신비의 영역을 자신이 도무지 도달할 수가 없음에 실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새처럼 훨훨 나는 꿈을 꾸며 그 현실적 표출이 바로 높다란 장대 끝에 새 모양을 매단 솟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솟대'가 그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의 소망이라면 '탑'은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의 상승(上乘)욕구를 나타낸 것입니다. 우선 평평하게 땅을 고르고 단단한 기단을 세우고 반듯한 석재나 목재 또는 벽돌로 한층, 한층, 주로 3층이나 5층이지만 드물게 황룡사 9층탑이나 경천사 같은 다층탑을 세워 거기에 향을 피우고 염불을 하며 우리 저속한 인간의 간사한 마음을 씻고 영원한 평화와 화목, 부처의 땅 피안의 세계를 꿈꾸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동양의 탑은 병든 남편이나 아들딸의 안녕과 출세를 비는 여성적이고 정적인 기복(祈福)행위라면 보다 활동적이며 육식의 공격성을 가진 서양의 유목민족들은 마침내 하늘과 신의 영역에 도전해 스스로가 거대한 '바벨탑'을 세워 하늘에 오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여호와의 진노로 하루아침에 각자의 언어가 달라져 여러 민족으로 갈라져 반목과 전쟁을 일삼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만.
사찰을 겉으로 보면 거대한 절간과 입구에 버티고선 무서운 사천왕상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사찰의 중심은 대웅전에 모신 부처이고 그 으뜸가는 부속물이 바로 인간의 소망을 담은 탑인 것입니다. 그 소중한 요소인 탑이 하늘을 향해 아득히 솟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고요히 숲속에 안주하여 주변과 잘 녹아드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이는 무슨, 무슨 종으로 분파를 하고 불경의 해석을 달리하여 광대무변의 불법이기보다는 사찰과 교세를 확장하고 신도를 늘려 더 큰 절을 짓고 더 화려한 가사를 탐내는 화상(和尙)이 아니라 비록 가난하고 무지하더라도 세상과 이웃을 사랑하여 자기 사는 세상을 극락정토로 만들고 정성스런 염불과 기도로 자신이 소박한 부처가 되려는 그 정토(淨土)사상이나 염불종(念佛宗)의 소박한 불교관이 왜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정리하면 사찰은 대웅전과 본존불이 그 주체라면 으뜸 가는 종물(從物)은 바로 탑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드물게 주체인 절이나 부처보다도 종물인 탑이 더 멋지고 알려진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석굴암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부처 자체가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경우이고 불국사는 석가탑, 다보탑이 오히려 대웅전보다 더 알려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로 아주 특별히 탑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지리산의 산 중턱에 자리잡은 고찰 법계사(法界寺)의 3층 석탑입니다. 대웅전 뒤 언덕 산신각 가는 구비의 비뚜름한 바위 위에 어떻게 아직도 안 떨어지고 버티는지 볼 때마다 아슬아슬 애간장을 태우는 삼층석탑의 모습이 참으로 신기한데 그렇게 긴긴 세월을 잘 버티는 게 바로 부처님의 가피(加被)인지...
아무튼 저는 지라산 천왕봉을 네 번 올랐는데 해발 1915미터의 정상보다는 오로지 법계사 3층 석탑을 보고 그 앞에서 손을 모으고 마음을 씻은 것에 늘 가슴이 뿌듯하고 법계사만 지나면 그 높은 산도 숨이 차지 않고 하산하여서도 한동안 심신이 다 가뿐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과 이치는 다 같은 건지 북탑에 함께 간 아내와 누님들도 좀 별다른 느낌을 받았는지 소풍간 어린이처럼 탑 주변을 돌아보며 풍경에 녹아드는 것이 참 보기가 좋았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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