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22)간월사 남쪽 석탑
이득수
승인
2020.05.19 01:55 | 최종 수정 2020.05.19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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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간월사 남측석탑은 비스듬한 언덕 위에 독립적으로 우뚝 서 있어 비로소 탑다운 느낌이 듭니다. 비록 뒤쪽 언덕에 모텔의 불빛이 번뜩이기는 하지만.
자, 그럼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주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남쪽 3층 석탑을 사진으로 차근차근 한 번 살펴보기로 할까요? 우선 파란 철제 펜스 뒤로 꽤 든든한 기초가 놓이고 누런빛과 회색의 층층 화강암 기단 위로 마치 불국사의 석가탑처럼 좀 밋밋하고 단순한 느낌의 반듯한 탑신이 보이는데 재미있는 건 층층이 매우 정교한 동물상을 돋을새김(陽刻)해 어찌 보면 다보탑의 느낌마저 나 저 탑 하나로 석가탑, 다보탑이 다 연상되니 한꺼번에 경주불국사를 다녀온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선 기초공사가 토공(土工)을 보면 자잘한 돌 지대석(地臺石으로 꼼꼼하게 잘 채워 다지고 그 위에 넓은 하기단(下基壇)과 좁은 상 기단까지 완전한 기단의 전형(典型)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상기단 앞쪽에 하나, 1층 탑신에 두 마리의 동물상을 돋을새김(양각(陽刻)으로 우아하게 새겨놓은 것으로 보아 저 멀리 외부에서도 잘 보이는 이 남탑을 이 절을 대표하면서도 어딘가 좀 소홀해 보이는 석조여래좌상전에 비해 꽤나 공을 들인 탑, 어쩜 이 절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구성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거기다 1층에서 3층까지 탑신을 덮은 옥개석(屋蓋石)에도 정연한 줄무늬를 새겨 한층 정교한 맛을 풍깁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남탑 발치에 커다란 옥개석 하나가 떨어져 나뒹구는 것으로 보아 3층 탑신 위에 본래 두 개의 옥개석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무너지면서(또는 인공적으로 훼손되면서)탑의 상층부를 이루는 철주와 그 가운데 매달린 승로반(承露盤 인간세상의 오염이 없는 천상의 음료 이슬을 받아 마시려는 돌 접시)와 그 위에 엎는 동그란 복발(伏鉢)에 수박등처럼 둥글고 밝은 보륜(寶輪)과 보륜을 덮는 지붕 보개(寶蓋)에 맨 꼭대기의 둥근 구슬 보주(寶珠)까지가 두루 갖춰진 화려한 석탑이 그만 족두리를 쓰지 않은 신부처럼 얼굴 부분만 겨우 남은 모습입니다. 지금은 그 흔적이나 사진조차 없어 몹시 아쉽습니다.
산 아래 화천마을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여름 저 아래 화천뜰에서 논을 매던 농부가 허리를 펴고 뒤 돌아보면 간월사지의 탑 그림자가 꽃내에 비쳤다고 하는데(서라벌 무영탑無影塔 전설처럼) 아마도 숲속이 아닌 언덕 위에 우뚝 선 이 남쪽 탑인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관광단지로 개발되어 논을 매는 농부도 없고 건물에 가려 탑 그림자가 비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간월사지의 특징 중 하나는 경내전체가 비스듬한 자연 상태와 숲을 유지하면서 전체로 포근한 느낌이고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일군(一群)의 바위틈으로 봄빛은 어찌 그리 다정히도 파고드는지 온갖 들풀과 잡초가 우거져 한 나절쯤 쑥을 뜯기에도 더 없이 좋은 곳입니다.
한동안 부지런히 쑥을 뜯다 허리가 아프면 고개를 들어 저 산뜻한 남쪽 석탑도 가끔 바라보며 그 승로반과 보륜과 보주까지 다 갖춘 그 화려한 석탑을 연상하며 한 나절쯤 시간을 보내기도 좋을 것입니다.
단톡방 '미인천하'와 '청우회', '여보산악회'와 초가집회 보살사모님들께 '강력추천'하는 바입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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