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24)독새풀과 낫치기

이득수 승인 2020.05.21 15:55 | 최종 수정 2020.05.22 23:53 의견 0
독새풀

사진에 보이는 풀이 독새풀이라는 잡초입니다. 지금 묵정밭에 대충 심어놓은 엉개나무를 아예 숨도 못 쉬게 덮쳐가듯  뻗어가는 기세가 너무 거세 보리농사의 성패는 저 독새풀을 얼마나 알뜰히 매느냐에 달렸지요.

제가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엔 일곱 살 많은 제 누나 금자를 비롯해 군자, 광자 '자야트리오'가 있었는데 마을 어른들 말로 '말만한 처녀들이 맨날 고래이(고나리)떼'처럼 몰려다녔습니다.  그들이 18, 19세가 되던 봄, 양력 5월이면 쑥이나 나물이 세어져 별 할 일이 없자 소나 염소를 먹일 독새풀을 뜯으러 매일 대소쿠리와 낫을 들고 나섰습니다. 키가 제법 자란 보릿골에 들어가자마자 낫과 소쿠리를 팽개치고 그냥 깔깔 웃으며 '최무룡과 김지미', '신성일과 엄앵란'은 물론 허장강, 이예춘, 황해 같은 조연까지 일일이 들먹이다 <찔레꽃>이나 <동백아가씨>를 불렀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해가 설핏하면 

“아이구야, 풀 안 뜯어 가면 다리몽디 뽀사지는데...”

하며 셋이서 황급히 풀을 베다 두어 빨때기(아름)를 베고 나면 얼굴은 예쁘지만 성격이 사내처럼 괄괄한 광자 누님이

“인생살이 뭐 별거 있나? 우리 풀 한 빨때기 씩 태우고 낫치기 하자.”

하고 셋의 풀을 가득히 모으고 서너 발 떨어진 곳에 금을 긋고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정하여 낫을 던져 먼저 꽂히는 사람이 풀을 다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낫으로 벤 풀을 소쿠리에 담아...

어머니가 엄해 제일 간이 작은 우리 누님은 키도 작고 팔도 짧아 늘 게임에 져서 왈바리 광자 누님이 의기양향하게 집에 가고 나서 저와 누님은 한참을 더 풀을 뜯어야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평리(平里) 선생

가끔씩 각자의 집에서 쌀을 훔쳐와 장에 팔아서 읍에 새로 생긴 양과점에서 모찌라고 부르는 생과자와 나마가시(카스텔라)를 사 먹는데 우리 누님은 쌀을 못 낼 때도 많았습니다. 그 때 모찌랑 유과, 비과를 싼 빠각거리는 비닐포장을 우리는 '빠딱종이'라고 불렀고 이름표를 넣은 통 같은 부드러운 비닐은 '풀쪼름'으로, 희고 딱딱한 플라스틱을 '뿔'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생각해도 교육수준이 낮은 촌사람들이 참으로 적확(的確)한 이름을 지어내어 우리의 한글의 쓰임새가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누님은 갓 스물에 시집을 가고 나머지는 3, 4년 뒤에 시집을 갔는데 아이 다섯을 낳고 고생주머니를 찬 우리 누님보다 두 사람은 훨씬 여유롭게 잘 산다고 했습니다. 그 '광자누님'이 당뇨를 오래 앓다 작년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독새풀을 보니 그 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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