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29)연꽃, 불등(佛燈)과 꽃상여, 그리고

이득수 승인 2020.05.28 23:32 | 최종 수정 2020.05.29 00:03 의견 0
우리집 수조에 핀 수련(睡蓮)
우리집 수조에 핀 수련(睡蓮)

연꽃 바위의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연꽃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올해는 윤사월이 있는 데다 코로나19 때문에 초파일을 윤달로 미루어 유독 오래 가로와 오솔길에서 부처님오신 날의 축등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혹 대나무 테두리에 울긋불긋한 채색한 연꽃을 붙인 불등(佛燈)을 보았는데 요즘은 거의 다가 덜 익은 수박을 연상시키는 파랗고 붉은 플라스틱 등(燈)을 매달아 아득히 넓고 포근한 광대무변의 부처님 마음이 손상되는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은 연꽃을 두고 어둡고 오염된 진흙 속에서 너무나 밝고 황홀하며 자비로운 불심(佛心)의 꽃이 피어난다고 하며 연꽃을 불교 또는 불심, 심지어 부처님의 상징으로 여기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연꽃의 그 붉고 흰 꽃잎과 파란 이파리가 빚어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경탄을 금치 못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꽃을 보며 불심을 느끼기보다는 꽃상여가 나갈 때의 그 애련한 아름다움과 연연한 슬픔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열일곱 가장 예민하던 음력 정월 한 겨울에 제 아버지의 상여(喪輿)가 눈에 발이 푹푹 파묻히는 앞세메 진장골짝을 거슬러 올라 붉디붉은 진장만디의 황토흙을 파고 아버지를 묻던 날의 기억을, 상복앞섶에 빨간 황토 흙 한 삽을 받아 관 위에 뿌리던 순간의 뜨거운 눈물을, 성토를 하고 성분(成墳)을 하고 마지막 그 화려한 연꽃이 주렁주렁한 상여를 태우던, 연꽃보다도, 상여보다도 더 붉고 찬연한 불꽃을 기억하면 지금도 그 꿈결처럼 찬란한 슬픔, 그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집 가까운 곳에 조금만 암자가 있어 제 연배의 비구니 학승(學僧)이 거처해 우리 가족과 사이를 트자 몇 권의 불서와 함께 수련(睡蓮)을 몇 뿌리 주어 우리 내외가 플라스틱 수조를 사다 정성을 들여 물과 진흙에 마른오징어 거름을 주어 작년부터 이태 연속 꽃을 피웠습니다. 

옛 선비들의 글을 보면 그들도 국화니 모란이니 연꽃이니 나름대로 좋아하는 꽃들이 있는데 그 예를 들면 도연명은 자그마한 꽃송이가 은하(銀河)같은 꽃무리를 이루어 짙은 향기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국화를 좋아하고 화려함과 풍성함을 기리던 성당(盛唐)시절 당명황, 현종의 궁정을 출입하던 이백은 양귀비와 그 일당인 괵국부인, 한국부인을 풍성한 모란에 견주며 칭송했던 것입니다.

연꽃을 닮은 바위
연꽃을 닮은 바위

그런가 하면 드물게 부처님의 꽃 연꽃을 기린 선비가 있었으니 바로 천하명문 <애련설(愛蓮說)>을 쓴 무숙(茂叔) 주돈이(周敦頤)입니다. 사실 주돈이는 송나라의 대표적 유학자로 그 심오한 동양철학의 결정체 <음양오행설>을 가장 일목요연하고 알기 쉽게 태극도설(太極圖說)로 정리한 분입니다. 그는 문인이기보다는 아주 심오한 철학자, 서양으로 치면 거의 플라톤 급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가 일개 화초인 연꽃을 들어 <애련설>을 썼다는 일은 참으로 특별한 기호(嗜好)이라 할 것입니다.

연꽃의 특징을 절묘하게 설파한 애련설의 요지를 올립니다.(원문생략)

애련설(愛蓮說) / 주무숙

수륙초목(水陸草木)의 꽃에 대한 사랑할 만한 것이 무척 많다. 진(晉)의 도연명(陶淵明)은 홀로 국화(菊花)를 사랑했고, 이당(李唐) 이래 세인들은 모란(牡丹)을 매우 사랑했다. 나는 홀로 꽃이 어니(淤泥)에서 나와 물들지 않고, 청련(淸漣)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통하고 겉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정정하게 깨끗이 서 있고 멀리서 바라볼 수 있되 설완(褻翫)할 수 없음을 사랑한다.

   ...이하 생략...

 해설

  1. 이당(李唐): 당(唐)나라의 시조 이연(李淵)에서 따온 말로 우리나라의 조선을 이조(李朝)라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임.
  2. 어니(淤泥): 진흙. 환경법에 자주 나오는 오니(汚泥)와 비슷한 개념.
  3 .청련(淸漣): 맑고 잔잔한 물결, 물너울.
  3. 설완(褻翫): 버릇없이 데리고 노는 것. 함부로 대하면서 즐기는 것.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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