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사지 북쪽 탑 서쪽 비스듬한 언덕에 묘한 형상의 돌기둥 하나가 서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변강쇠처럼 좀 통통한 사내의 옆모습이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뭉툭하면서도 약간 휜 머리통이 묘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우리나라 어느 지방에서나 드문드문 발견되는 전형적 남근석(男根石), 전설 속 변강쇠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저 삐뚜름한 머리가 향하고 있는 곳이 좀 묘합니다. 귀촌 5년차, 명촌, 길천, 등억 일대에 안 가본 곳이 없는 마초할배는 늘매라고 불리는 저 명촌 뒷산의 임도를 지나 말무재를 넘으면 골안못이 나오고 골안못 남서쪽 작은 고개를 넘어 '밤갓'이라는 산비탈에 거대한 조개형상의 묘한 음석(陰石), 그 형상이 너무 노골적이라 쳐다보기조차 민망한 조개바위 하나가 발랑 뒤집어진 것을 후리마을 원주민이자 객지친구로 전직 여교교장인 백성봉 교장과 같이 지난해 초 가본 적이 있는지라 마침내 무릎을 치며
“옳나구나! 간월사의 양석과 '밤갓'의 음석이 밤만 되면 저 말무재어름서 만나겠구나!”
간월산 골짝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공간의 로맨스에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한밤중에 꿈을 꾸었는데 노랗고 환한 불빛이 새어드는 어느 하늘가에서
“마초할배는 참 주책이야. 이제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것도 신경이 쓰여.”
밤갓에 있는 조개형상의 여근석의 넋두리에
“맞아. 사람이 늙으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든단 말이야. 그 시간에 제 병이나 다스릴 것을...”
간월자시의 남근석이 맞장구를 치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노란 빛이 비치는 곳을 한참이나 응시했습니다.
마침내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거기가 가로등불이 밤새 훤히 비치는 서재라 창을 열고 내다보니 불빛이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장독 몇 개가 간월사의 양석과 '밤갓'의 음석처럼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참 쓸데없는 생각을 다 했구나!'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꽤 오래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제대로 된 조개바위를 카톡에 올리려고 다시 지난 4월 밤갓을 찾았을 때 그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처음 그 돌을 발견하고 제가 사진을 찍을 때 덜렁한 코를 하늘로 들고 황소처럼 웃는 백 교장을 보고
“아니, 명색 여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지금 뭘 보고 웃는 거요?”
“아니, 교장 아니라 대통령이라도 나오는 웃음을 어찌하란 말이요?”
하던 기억이 떠올라 전에 백 교장과 같이 가서 찍었던 사진을 꺼내 대조하니 과연 그 조개바위가 앉았던 자리에 약간 땅이 파인 도굴(盜掘)당한 흔적이 나왔습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산 아래 사는 원주민 지주(地主)라면 너른 집에 꽃과 나무가 흔해 굳이 그 괴이한 음석을 옮겨 집안 분위기를 망치다 못해 무슨 동티가 날지도 모르는 짓을 할 이유가 없고...
어쩌면 요즘 임자 없는 산이나 국유지를 돌아다니며 산삼이나 상황버섯 같은 귀한 임산물을 채취하거나 오랜 세월 척박한 땅에서 바람에 시달려 메마르고 비틀린 나무를 괴목(怪木)이라며 수집하는 사람들, 무주공산의 국유재산을 제 것처럼 생각하고 마음대로 훼손시키며 누가 그걸 말리면 죽일 듯이 화를 내는 신종무뢰배들의 짓을 지도 모릅니다.
설마 그 무거운 바위를 단지 취미로 옮겨가지는 않았을 터, 어쩌면 기괴한 소장품을 수집하는 비뚤어진 부자, 졸부(猝富)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미리 주문을 받고 그 깊은 산속에 장비와 인부까지 동원해서 약탈(掠奪)해간 것인지 모릅니다.
자연이란 제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답고 당당하며 주변의 환경에 녹아드는 법입니다. 또 그 조그만 바위 하나를 중심으로 개미나 곤충, 들쥐 같은 작은 생명체들이 하나의 생존공학, 먹이사슬을 이루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 소중한 소우주(小宇宙) 하나! 그걸 캐간 사람은 돈을 챙기고 수집한 사람은 악취미를 즐길지 모르지만 그 돌의 존재와 내력을 알던 마을사람들, 그 숲에 살던 짐승과 그 바위에 앉아 울던 뻐꾸기들로서는 그런 재앙, 그런 상실(喪失)이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어느 유원지나, 위락시걸, 졸부의 정원에서 저 조개바위를 보신 분은 저(010-4550-5779)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농촌 출신답게 정의감과 뚝심 하나는 끝내주는 명촌 길천 바닥의 두 노인네 저와 백성봉 교장이 증인이 되어 그 돌의 고향을 밝혀 꼭 제 자리로 다시 옮겨와 간월사지 남근석의 허전한 상실감을 채워주고 싶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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