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리(平里) 선생의 명촌리 일기 (30)인도소식 짠짠짠4
이득수
승인
2020.05.31 22:40 | 최종 수정 2020.05.3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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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인도소식 짠짠짠>과 <토곡소식 짠짠짠>을 몇 번 보내드렸는데 코로나19가 지구전체를 삼킨 올해 봄 마침내 인도소식도 아니고 토곡소식도 아닌 <격리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말씀 드린 대로 무려 14억 명이나 되는 저학력의 국민을 크로켓에나 쓰는 무지한 막대기로 다스리는 인도의 무디수상이 무려 7주간의 전국민 자가격리를 선포 후에도 확진자가 1만 명을 돌파하자 마침내 <무기한의 도시폐쇄>를 결정했답니다. 고국 한국은 어느덧 코로나19가 많이 수그러지고 각종 경기를 무관중으로 시작한 소식을 듣던 뉴델리의 교민들이 마침내 귀국하기로 결심하고 정부에서 내준 전용기를 타고 귀국함으로서 모처럼 부강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회사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우리 아들은 돌아올 수가 없어 며느리와 두 아이만 떠나보내고 졸지에 홀아비가 된 채 자가격리 상태로 재택근무를 하느라 밥이나 제대로 챙겨 먹는지 걱정입니다.
거기다 이제 8, 9세의 두 아이가 그 복잡한 검사절차를 거쳐 종일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에 닿자말자 다시 또 검사를 받고 한눈을 팔거나 바람 한 번 쏘일 틈도 없이 나라에서 내어준 자동차로로 부산으로 토곡의 제 아파트에 격리되어 또 2주를 보내게 되었답니다. 제가 명촌리에 오고 병이 나서 간병 차 아내가 올라온 뒤 무려 5년간이나 비워둔 집을 비로소 제대로 한 번 사용하게 된 셈인데 같이 귀국한 동포들 중 아파트가 통째로 기다리는 집은 우리 며느리 일행뿐이라고 하니 그것 참...
아무튼 지금 2주 자가격리에 들어간 아이들과 어미는 갑갑해서 어쩌나는 우리의 걱정과 달리 한국 땅에 온 것만으로 숨구멍이 트이고 창밖으로 수영강과 해운대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아이들 할머니인 제 아내는 손녀들을 못 만나서, 또 바로 이웃 아파트에 사는 고종사촌 현서가 바로 턱밑에 둔 친구를 못 만나 안달이 났습니다.
언양 지방 속담에 <보고 못 먹는 것이 장(場)의 떡>이라고 아무리 먹음직하고 배가 고파도 돈이 없으면 못 먹는다는 가난했던 우리네 삶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이건 번연히 제 집에 두고도 손녀들을 만날 수 없다니 문명과 풍요의 극을 달리는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 무슨 횡액이란 말입니까? 거기다 지금 명촌별서의 뜨락에는 보리수와 오디가 붉게 익어 아이들이 따먹기 딱 좋은 형편이라 머리 허연 영감이 한 둘 따 먹어보니 이 맛있는 걸 그냥 썩힌다 싶어 세월이 무심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어제는 보건소에서 검사결과가 음성이라는 통보를 해주고 동사무소에서 생수와 라면, 아이들의 군것질감을 바리바리 실어다 주어 제 아내가 손녀들을 위해 준비한 아이스크림까지 냉장고가 비좁을 정도라고 하니 며느리와 아이들은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수시로 또는 직접 방문해 격리수칙을 지키는지 확인을 하는 바람에 세 사람의 숨 막히는 감옥살이는 어쩔 재주가 없답니다.
그동안 아이 할머니인 아내가 빈 아파트를 정리하고 먹을 것을 채운다고 고생을 했고 가까운 데 사는 제 딸도 날마다 직접 얼굴은 못 봐도 전화로 이것, 저것 챙기고 있습니다만 저는 전화로 주로 인도의 아들이 밥을 잘 챙겨먹는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가 하나의 단순한 전염병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재해, 재앙이며 국난이라는 생각이 다 듭니다. 사람의 행복이 별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이 한 집에 모여서 사는 것이라는 가장 단순한 원리가 이렇게 절실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태어났지만 직접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저로서도 70평생에 이렇게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난리는 처음인 것입니다.
제 집에 있는 할아비인 제가 이럴진대 졸지에 이국 땅에서 홀아비가 된 아이들 아비는 또 얼마나 외롭고 힌든 시간을 보내야 할까요? 어서 이 잔인한 봄이 가고 여름이 와 코로나가 물러간 싱싱한 녹음의 계절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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