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옹(進翁) 시인의 간월산 산책 (30)고인돌? 그냥 행복한 상상의 오후

이득수 승인 2020.06.01 23:26 | 최종 수정 2020.06.01 23:48 의견 0
언양읍 서부리 남방식 고인돌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전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거대한 고인돌이라 하니 참고 바랍니다.
울주군 언양읍 서부리 남방식 고인돌과 언양 간월산 발치에 뒹구는고인들 비슷한 무덤덤한 바위들.

저는 등산을 하다 동그란 솔보대기가 웅크리고 키 작은 굴밤나무가 간신히 매달린 산비탈에 솔쇠, 억새, 개솔쇠가 나부끼고 칡넝쿨이 얼크러진 어딘가 스산하고 꾀죄죄하고 오종종한 골짜기를 만나면 문득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곤 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어릴 적 나무를 때 밥을 할 때 너무나 헐벗은 야산을 헤매며 소를 먹이고 불을 땔 수만 있다면 나무 뿌리든 꽃대(진달래) 뿌리든 가리지 않고 캐 까둥구리(전라도말로 고주백이)라는 나무를 하던 보릿고개의 가난과 소년티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은 점심으로 토종닭 백숙을 넉넉히 먹고 커피와 과일에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음에도 누이와 아내에 친구까지 한가로이 쑥을 뜯는 평화로운 절터에서 나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두런거리는 언덕을 보면서 왜 또 눈물이 돋는 건지, 아무 것도 기릴 것도, 뽐 낼 것도 없이 그냥 널브러진 공터와 바위와 뒷산과 하늘, 그리고 정든 내 누님과 아내와... 

그 익숙한 광경이 어느새 날 유년(幼年)의 골목길을 데리고 가고 거기에서 가장 천진(天眞)하고 여리며 가난했던 감성(感性)을 되살린 건지, 왜 이렇게 편안한 날 자꾸 눈물이 돋는 건지, 나는 왜 일흔에도 어린아이를 못 벗어나는 건지...

그간 간월사지를 소개하려 대여섯 번 현장을 방문해 구석구석 돌아보고 머나먼 신라시절 이 절을 짓던 사람과 조석으로 예불을 드리던 스님과 남부여대(男負女戴), 남루한 삶의 보따리를 이고와 크고 작은 소원을 빌던 대중들, 그 긴 세월 해마다 피어나던 꽃과 지저귀던 새와 솔가지를 흔들며 울부짖던 바람을 떠올리다 어느새 이 비스듬한 언덕이 마치 고향마을이나 되는 듯 친숙해지며 온갖 유년(幼年)의 기억과 함께 그 때 마주하던 그 꾀죄죄하고 오종종한 골짜기나 야산기슭에 닿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능선위의 하늘마저 아주 편안하게 다가와 마치 손으로 잡으면 커튼처럼 부드러운 촉감을 느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몰래 풀썩 새파란 풀밭에 주저앉는 순간

소풍 나온 아이처럼 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 두 누님과 아내(오른쪽).

        아, 저 크고 작은 바위들, 오손도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간월사지 경내의 맨 위 울타리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크고 작은 바윗돌들이 마치 손바닥속의 공깃돌처럼 따뜻한 감촉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 내 몸이 어린 시절에 꿈꾸던 무시무시하고 커다란 괴물로 변신한다면 저 바윗돌들을 공깃돌처럼 <살구받기>나 하며 놀겠지... 
하고 또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펴다
       아, 맞다. 고인돌!
그 중 한 둘이 틀림없이 고인돌일 거라는 엉뚱한 생각에 빠졌습니다.

지석묘(支石墓)로 불리는 고인돌(DOLMEN)은 탁자처럼 받침돌이 있는 북방식과 받침이 없는 남방식이 있고 우리나라는 두 가지 양식이 다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남 순창을 비롯해 화순과 순천 등에 고인돌공원이 있을 만큼 남방식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합니다. 그만큼 예로부터 살기가 좋은 땅이라 아주 좁은 골짜기까지 소규모의 부족이 터를 잡고 살아가며 서로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돌무덤을 짓기 시작한 것이지요. 
 
고인돌공원을 더러 구경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고인돌, 그것 참 별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펑퍼짐한 야산에는 어디에 가나 한 5t에서 근 100t에 이르는 바위들이 널브러지고 그 중의 일부가 밑에 사람을 묻은 고인돌이며 집단적인 단지로 조성되어 고인돌공원이 된 곳도 많습니다. 쌔고 쌘 바위와 돌, 둥글거나 모가 나거나 검거나 희거나 돌과 바위를 이룸에 조건이 없듯이 고인돌이 되기에도 별 제한이 없것 같습니다. 제가 함부로 고인돌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지만 누가 함부로 그건 절대로 고인돌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공식적인 고인돌이 되려면 학계의 고증이 있어야 되겠지만 가까운 언양읍 서부리에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남방식 고인돌(커다란 초가집만 함)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만큼 이만한 고장이면 역시나 고인돌이 있을 만합니다.

쑥을 뜯다 쉬는 간월산의 세 봄 처녀들(3.13)
쑥을 뜯다 쉬는 간월산의 세 봄 처녀들(3.13)

믿거나 말거나 우리가 고인돌이 많은 나라이고 그 살기 좋은 땅에서 살고 또 이 만큼 자유로운 상상에 젖는 것만 해도 행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자유로운 영혼이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밋밋한 언덕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다 마침내 무덤덤한 바위덩이를 고인돌이라며 혼자 우기고 빙긋 웃는 사이에 제 두 누님과 아내는 마치 소풍 나온 소녀들처럼 몰려다니며 숲에 사인 북쪽 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깔깔거리라 볕 좋은 양지쪽에서 쑥을 뜯다 다시 모여 사진도 찍으며 참새처럼 조잘거립니다.

덧없는 세월 속의 무심한 하루, 저 부드러운 간월산의 초록 능선위에 펼쳐진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한 조각, 머무는 것은 머무는 대로 떠도는 것은 떠도는 대로 모두가 포근하고 정겨운 오후, 이 일흔 살 머리 허연 사내가 두루뭉술한 바위덩이 하나를 보며 고인돌을 연상하든, 날마다 넘치는 감성에 빠져 오늘도 애먼 시 한 구절 떠올리다 잊어버리든, 정든 사람이 옆에 있고 평온이 샘물처럼 고이는 오후, 간월사지 순례의 마지막 날인 오늘이 바로 저 먼 불국토의 <욕계(慾界) 제2천(天)>처럼 그리운 마음이 꽃으로 피고 손만 맞잡아도 향기가 난다는 그런 하루인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도와 천주교도와 가끔 절에 가는 보살이지만 무덤덤한 바위덩이를 혼자서 고인돌이라고 우기는 백두옹(白頭翁)과 더불어 놀다보니 하나같이 꽃이 되고 새가 된 누님들과 아내, 그들이 모두들 꽃으로 피어나는 행복한 오후, 그게 다 이 땅 간월계곡을 지켰던 부처님과 불심의 공덕이겠지요.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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