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의 제목 '찔레꽃'은 한국인이라면 삼척동자라도 그 이름과 모습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한국 가요사(歌謠史) 100여 년에 가장 많이 불러온 노래, 봄만 오면 생각나는 꽃, 그 하얀 꽃이 피면 떠오르는 어머니와 친구와 고향마을... 그래서 KBS 최장수 프로그램 <가요무대>에서 무려 250회나 불려 애창곡 순위 1위를 차지한 노래 제목인 꽃, <찔레꽃>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피는 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봄만 되면 삼천리강산을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 그렇게 이 나라 산기슭을 가득히 채워 순하고 다정하지만 늘 가난하고 눈물 많은 백성으로 살아온 민족의 정서를 담아 아련한 그리움으로 번져가는 진달래꽃이겠지요.
그렇게 가난한 농부의 지게나 농가아낙의 머리와 꽂히면서 배고픈 아이들의 군것질감이 되기도 하는 진달래가 지고 꽃과 잎이 한결 크고 번듯한 철쭉이 뻐꾹새 오는 산기슭을 불태우며 능선까지 번질 때면 산골처녀의 미소처럼 맑고 풋풋한 찔레꽃이 피어나 들판과 도랑둑을 하얗게 번져갑니다.
진달래와 찔레꽃은 그렇게 이 땅을 대표하는 꽃으로 반만년 이 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눈물, 사랑과 이별의 바탕색이 된 것입니다.
한때 해외유학이 대세가 되며 졸지에 국민가요가 된 이미자 <기러기 아빠>에
산에는 진달래, 들엔 개나리
산새도 슬피 우는 노을진 산골엔...
의 가사를 저는 오래 전부터
산에는 진달래, 들엔 찔레꽃,
동백꽃 붉게 피는 외로운 섬마을...
라는 식으로 조금 바꾸어 육지를 대표하는 두 꽃과 함께 바닷가 사람들의 외로운 심정도 좀 달래야 될 것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들판 가득 찔레꽃이 피어날 때면 가난한 보릿고개의 농가는 모두 하루하루 먹느냐, 굶느냐의 죽고살기의 위기에 빠집니다. 진성이란 가수의 <보릿고개>에 나오듯 초근목피인 쑥을 뜯고 송기를 벗기고 칡을 캐는 것도 부족해 아무 근기(根氣)도 없는 진달래꽃 잎을 씹어보다 그도 없으면 그냥 찬물을 마셨습니다. 밀기울밥이나 보리개떡도 없어 어서 보리가 피고 그 꽃이 떨어진 자리에 <물이 잡혀>, 풋보리라도 찧어서 문설주를 잡고 주린 먼 산을 바라보는 영양실조의 마른버짐이 가득한 7남매, 9남매를 먹여야 하는데 저놈의 풋보리는 어떻게 어영부영 물이 잡히지 않고 칡을 캐러 산에 들어간 아이아비는 오늘도 빈 지게로 돌아오는지...
그 찔레꽃 피는 흉년의 봄날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김동리의 <찔레꽃>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제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려 각색하면
가난한 농가의 맏딸인 열일곱 순이는 9남매 11식구의 입 하나를 줄이기 위해 조그만 더 참아 풋보리에 물만 잡혀도 넘길 보릿고개에 어린 동생들이 굶어죽을까 봐 재 너머 사는 밥은 먹고살 만한 배냇병신 총각에게 보리쌀 몇 말을 받기로 하고 찔레꽃이 가득히 핀 봄날 달랑 헌 속곳이 들어있는 보따리 하나를 들고 서럽게 꽃잎이 날리는 들판과 떨어진 꽃잎이 흘러가는 도랑을 건너 재 너머 마을로 시집을 갑니다.
자신도 열일곱 어린 나이로 그렇게 시집을 와 먹느니 굶느니 해마다 아이를 낳아 가난한 농가 아홉 자식의 어미가 된 친정어미는 딸의 손에 들린 그 가난한 보따리에 큰딸에 대한 애련한 사랑은 물론 저 어린 것이 어떻게 모진 시집살이를 이겨낼지 걱정을 가득히 담다 마침내 자신이 하얀 찔레꽃이 핀 들길을 조그만 보퉁이 하나 들고 시집을 가는 심정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손을 흔듭니다. 아직 어린 딸은 차마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고개를 넘어가고...
그렇게 서러운 시간이 지나 한 열흘 뒤쯤 풋보리를 빻자 절구가득 찐득한 풋보리의 물이 새파란 이파리와 수제비처럼 엉긴 풋바심으로 남은 열 식구가 허기를 채우며 위기를 넘깁니다. 그 보름 남짓의 보릿고개를 못 넘겨 꼭대기 집의 혼자 사는 할머니가 굶어죽고 홀어미를 모시고 사는 순갑이, 끝갑이형제는 너무 배가 고파 보리쌀 한 말에 마지막 남은 두 마지기와 초가집을 악덕지주에게 넘기고 서울로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고 효자 말득이아비는 병든 아비를 살리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복실이를 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릿고개를 다 넘기고 이제 바야흐로 모내기가 시작될 무렵 마을 제일 큰 부잣집 상머슴, 서른 한 살 억만이가 살구나무에 목을 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여자의 손목을 한 번 못 잡아보다 그 해봄 논을 갈다 쑥을 캐는 순이에게 보리개떡 하나를 갖다 주며 은근한 눈빛을 주고받아 올가을 새경을 받으면 장가를 들려 했는데 그만 순이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말입니다.
이야기가 좀 신파적입니까?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일제말기와 해방직후에서 6.25를 거쳐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느 마을에나 흔히 있던 이야기로 70대 초반인 제 큰 누님들이나 고모이모들이 직접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이렇게 마냥 슬픔에 젖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늘의 주제는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찔레가 붉은 색 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이상해 재작년인가 제가 명촌리 일대는 물론 제 부모님 산소가 있는 진장만디까지 두루 살펴보았지만 열이면 열, 모든 찔레꽃은 그냥 눈부실 정도로 희었으며 단 한 곳 아주 약간 분홍빛을 띤 곳이 있었는데 그것도 보통사람은 느낄 수 없어 누가 붉다고 우겨서 한 참이나 들여다보아야 약간의 붉은 기운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럼 그렇게도 눈부시게 하얀 찔레꽃을 작사가는 왜 붉게 핀다고 했을까요?
제가 곰곰 생각해보니 고향을 떠난 지 오래 된 사람이 꿈이나 회상 속에서 보는 찔레꽃은 어머니나 고향, 정든 연인의 애틋한 그리움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가장 황홀하고 아련한 보랏빛으로 채색이 되고 그래서 붉은 그리움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그 하얀 찔레꽃도 꿈속에서는 붉디붉은 그리움이 되는 모양 같았습니다.
지금 산과 들에는 찔레꽃이 한창입니다. 대부분 사료용의 귀리를 심는 들판에 간혹 노랗게 보리가 익어가고 그 밭둑에 찔레꽃이 나부낍니다. 여러분은 그 찔레꽃이 눈부신 들길을 한 번 찾아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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